서른, 암 환자가 됐다.
참 빠른 세상이다.
퇴사는 한 달 이내에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인수인계 자료를 만들어 놓고 그간 감사했던 분들께 인사를 다니다 보니 어느새 퇴사 당일이 되었다. 퇴사와 함께 내내 미뤄왔던 해외여행을 떠났다.
꿈만 같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건강검진에 이상 소견이 확인되어 전화를 주셨다는 그 말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서른이 되니 친구들도 안 아픈 구석이 없단다. 누구는 용종을 떼고 누구는 수술하고…. 제대로 된 검사를 위해 내원해달라는 안내에 바로 다음날 예약을 잡았다. 백수가 되니 시간도 여유가 있고 얼마나 좋던지!
“환자분, 갑상선에 결절이 확인되는데 모양이 조금 커서 세침검사를 진행할까 해요.”
세침검사.
친구가 했던 검사라 잘 알고 있었다. 그거잖아. 바늘로 찔러서 세포 떼다가 검사하는 거.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 싶어 오늘 당장 진행하겠다니 의사 선생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당장 검사실로 가자는 말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는데, 이상하다. 마취 크림을 내 목에 바르기 시작하신다.
“조금 따끔해요.”
“조금 따끔”이라는 표현은 어디 의학 서적에 실려있기라도 한 걸까? 선생님들은 언제나 “조금 따끔해요.”라는 말로 우리를 안심시키고는 방심한 틈을 타 무시무시한 의료기기를 들이밀곤 했다. 이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세침검사용 바늘이 그토록 커다란 줄 알았더라면 겁 없이 고개를 끄덕이진 않았을 텐데….
내 외마디 비명과 함께 떨어져 나간 세포는 일주일 뒤, “갑상선 암으로 의심”이라는 소견과 함께 되돌아왔다. 곧장 전문 병원을 찾아 정밀검사를 했다. CT며 MRI를 찍고 초음파로 다시 한 번 확인한 그날, 처음으로 ‘산정특례제도’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아직 수술로 검사를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딱 보기에도 암이란 거다.
퇴사한지 1개월도 되지 않아 갑상선 암이라고 하는 녀석이 내게 선물로 굴러들어왔다.
흔히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보면 의사 선생님의 침울한 얼굴과 함께 “암입니다.”하는 선고가 내려지고 주인공은 무너져 내려 흐느끼기 다반사인데 나는 너무도 와닿지 않는 단어에 “헉. 진짜요.”하고 멍청한 소리를 냈다.
“엄마. 나 암이래.”
아직 퇴사 소식도 모르던 부모님은 나의 암 소식을 먼저 듣게 되셨다. 우리 가족은 내 수술 당일까지도 우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
“갑상선 암은 착한 암이래. 죽는 것도 아닌데 너무 슬퍼하지 마.”
“착한 암이 어딨어? 암이 암이지!”
나름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 있어 엄마를 위로하려 말을 꺼냈다가 되레 혼만 나고 말았다. 내내 고향 집으로 돌아오라는 엄마의 절규를 뒤로 한 채 나는 서울 자취방 계약기간이 남았다는 핑계로 수술 당일까지 두문불출하며 갑상선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책을 독파했다.
괜찮다고 말은 했어도 내심 무서웠는지 수술 전날 결국 까만 방 안에서 주책 맞게 눈물이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회사를 계속 다녔을 거라며 지난날의 선택을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 산재 처리를 안 해줬을 게 분명하다는 직장 동료의 연락에 키득키득 웃으며 잠들었다.
수술 당일, 수술실까지 따라 들어올 기세인 엄마를 진정시킨 뒤 홀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가 차가운 수술대 위에 몸을 뉘었다. 그 좁은 수술실 안에 수많은 의료인이 복작거렸다. 나 하나를 위해 이토록 많은 의료인이 애쓴다는 사실이 무척 뭉클해 감사를 전하니 간호사 선생님께서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푹 주무시고 일어난다고 생각하세요.”
그 말씀에 또 주책 맞은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감사하…. 커어억.”
마취제의 효과는 굉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