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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오 Jul 27. 2024

진짜 하고 싶은 거, 그거 할래.

퇴사 3개월 차, 소설 계약에 성공했다.

번아웃.

이제는 우리 일상에 너무도 익숙해진 단어다. 우리말로 치환하자면 연료 소진 정도인데 인간에게 갖다 붙이기에는 너무도 가혹한 이 단어를 우리는 흔히들 앓고 있다.


나 역시 번아웃 증후군을 앓았다.

10여 년을 쉬지 않고 달려오고 이제야 조금 쉬어보려 했더니 뜬금없이 암까지 달고 살게 됐다. 물론 나는 아직도 내가 앓고 있는 이 지병이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대단한 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주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운이 나쁜 사람 중에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표현하면 딱 맞겠다.


목에는 큰 흉을 단 채 누워서 이제부터 뭘 해먹고 살면 좋을지 고민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대단한 스펙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 흔한 토익 점수나 자격증도 없고 오로지 운과 경력만으로 여러 기업에 근무해온 케이스였다. 사실 회사야 들어가려면 들어가겠지만, 당시의 난 더는 회사에 소속된 채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내내 시달리다 얻은 게 암이니 질릴 만도 하지.


하릴없이 인터넷을 들락거리던 내 메일함에 불이 들어왔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00 출판사입니다.]


몇 년 전, 단편으로 출간했던 소설의 출판사 PD님의 메일이었다. 이번에 서점 이벤트를 하면서 내 소설을 같이 올려도 괜찮은지 의사를 묻는 그 메일 한 통에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나의 유일한 특기는 소설을 쓰는 것이다. 이야기를 만들고 살을 붙여 상상을 눈앞에 펼치는 그 행위가 무척 좋았다. 중학생 때 이미 동인 행사에 개인 소설을 발표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2, 3종의 단편을 출간할 정도로 열정이 남달랐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활발했던 집필 활동은 발목에 직장인의 족쇄가 걸리는 순간부터 지지부진했다. 집에 돌아오면 뻗어서 잠들기 일쑤고 주말이면 움직일 힘도 없어 시체처럼 누워있기만 하니 창작 활동에 쏟을 에너지가 한 톨도 남아있지 않은 탓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꿈은 작가였다.

어쩌다 보니 흘러가는 대로 살게 되었지만, 궁극적인 ‘장래희망’은 언제나 작가였다. 소설을 쓰는 것은 특별히 잘난 게 없던 내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자랑이었다. 두루뭉술하게 책임을 회피하는 기술만 늘어난 회사 생활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살려 직업으로 삼는다면 잃어버린 자신감도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진짜 하고 싶은 거, 그거 할래.”


나는 불도저 같은 면이 있어 마음먹은 것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쳐 봐야 성미가 풀리는 사람이었다. 당장 무조건 한 편의 소설을 출간하고 싶어 단편 시장을 기웃거렸다. 초단편이라고 불리는 정말 짧은 소설을 출간해준다는 출판사 몇 군데를 추릴 수 있었다. 들뜬 마음으로 당장 작업에 착수했다. 오랜만에 써서 영 굳어버린 뇌와 손가락을 채찍질해가며 완성된 엉성한 한 편의 소설을 다섯 군데의 출판사에 투고했다.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내리 세 곳의 반려 회신을 받을 수 있었다. 소설이 출판사의 방향과 맞지 않아 출간이 어렵다는 형식적인 답변에 아닌 척해도 큰 상처를 받았다. 수많은 회사의 불합격 통지에도 흔들리지 않던 마음이 정말 좋아하는 일 앞에서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맥을 못 췄다.


고작 세 번의 거절로 이 길이 내 길인가 아닌가 궁상을 떨던 그때, 한동안 잠잠하던 메일함이 반짝 빛났다. 기대라고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은 채 연 메일함에 도착한 두 통의 답변을 보고 그만 소리를 꽥 지르고 말았다.


퇴사하고 3개월 차, 소설 계약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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