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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오 Jul 25. 2024

서른, 대기업을 뛰쳐나오다.

무계획 퇴사의 서막

퇴사는 눈치 싸움이다.


갈리다 못해 회사 밖으로 튕겨 나가는 사람이 넘쳐 나는데 그들의 업무까지 내게 돌아올 때면 가슴속에 품고 있는 사직서가 무척 간절했다. 퇴사 면담을 신청할까 말까 속으로 고민하다 보면 옆에서 죽는소리를 하는 팀원이 영 눈에 밟힌다.


그뿐인가.

당장 이번 달에 결제해야 할 카드값은 또 어떻고?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퇴사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힘겹게 삼키다 보면, 어느새 가로등이 켜진 퇴근길을 걷고 있었다.


서른.

앞자리가 3으로 바뀌면 어떤 식으로든 드라마틱하게 바뀌리라 확신했던 내 인생은 이전과 다를 바 없었고 주변의 친구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삼십 대를 허무하게도 맞이했다.

내 상황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일이 바쁘기는 해도 남들이 바라 마지않는 대기업에서 온갖 복지와 내 스펙치고 훌륭한 연봉을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람이 등이 따뜻하면 다른 생각을 품기 마련이라 당시의 나는 이 안온한 현상에 크나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매일 쳇바퀴 돌리듯 변함없는 하루와 열심히 재주를 부려봤자 왕서방 배만 불리는 이 회사 생활에 염증을 느낀 것이다.


출근과 동시에 일주일의 루틴이 빼곡하게 적힌 탁상 달력을 마주할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9시가 되기도 전에 울리는 전화에 긴 한숨을 쉬고 수화기를 들었다.


“어제저녁에 보내드린 메일 좀 확인해 주세요!”


도대체 왜 세상 사람들은 나 빼고 죄다 열정이 넘치고 부지런한 걸까? 거래처의 요청에 메일을 확인하고 15분을 입씨름하다 보면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업무 전화가 통화 중이라 휴대폰으로 걸었다는 말에 또 한 번 뜨거운 울화가 명치를 퍽퍽 두드렸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에 치여 사느니 돈을 조금 적게 벌어도 내 생활을 가져야겠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날 무렵, 팀원 모두가 맡기 싫다고 거절한 일이 고스란히 내 앞으로 쌓였다. 첫차 타고 출근해 막차로 퇴근하는 날이 3개월을 넘어가자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를 바라보며 이대로 저 도로 위에 머리를 대고 눕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출근이 지옥 같았고 소위 세간에서 말하는 MZ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건물에 들어서기 전부터는 한껏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그해, 업무 평가는 처참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의아하지는 않았다. 연차가 쌓인 직원을 우대하는 회사 분위기상 일을 열심히 했어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건 공공연한 규칙과도 같았다.


상여금 이야기로 신이 난 사무실 안에서 나는 한참 쌓여있는 업무 메일에 답장하기 바빴다. 점심시간이 20분가량 지난 뒤에야 마무리된 오전 업무에 드디어 마음이 후련했다. 회사 근처에서 만 원이 넘어가는 국밥으로 겨우 한 끼를 해결한 뒤 사무실로 돌아와 팀장님을 불러 세웠다.


단둘이 마주한 회의실의 공기는 무거웠다. 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는 “업무 조정은 못 해줘.”라고 선수 쳤다. 안다. 모두 바쁘다는 거. 내 양옆, 맞은편의 누군가가 이직 준비를 하느라 연차를 내고 면접에 다녀온 것도 알았다.


“팀장님.”


다시 말하지만, 퇴사는 눈치 싸움이다.

단호한 그를 향해 나는 가슴속에 내내 품었던 그 한 마디를 결국 뱉어내고 말았던 것이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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