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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나와 나 이전의 이야기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3학년을 다니다가 유학을 갔다. 가서 1학년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국내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남들보다 늦게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딴짓을 하다가 다시 대학원으로 박사 학위를 진학했다. 대학, 석사, 박사, 그 어느 하나 전공이 겹치는 것이 없다 보니 남들보다 오래 공부를 했다. 결국은 결혼할 시기도 놓치고, 40대 중반이 되었다.


나의 시간만 흘러간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내가 15살 때 췌장암을 너무 늦게 발견하여 6개월 시한부를 사시고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유학 가기 직전에 뇌졸중으로 다시 아기가 되셨고, 내가 졸업을 6개월 남긴 시점에 돌아가셨다. 학기 중이라 나는 조부상에도 한국으로 갈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들어갈 때 돌아가셔서 큰 기억이 없다. 외할머니는 내가 박사 학위를 하던 중 돌아가셨다. 말년에 치매로 고생하신 외할머니에게 나에 대한 기억은 '우리 공부 많이 한 손녀'였다.


엄마와 아빠의 시간도 흘러갔다. 내 기억의 30대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업을 하던 아버지는 이제 장기 출장도 어려운 70대가 되었다. 늦은 나이에 나를 낳아 초등학교 1학년 때 하는 엄마한테 업혀 달리기를 1등 하기 위해 밤마다 나를 업고 연습하던 40대 엄마도 70대가 되었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지만 친구를 주변에 많이 둔 정말 철없어 보였던 나의 남동생은 참한 여자와 결혼하여 딸 둘을 낳고, 책임감 있고 듬직한 가장이 되었다.


변하지 못한 것은 나 하나이다. 아직도 고집이 세고, 사회생활에 서툴며, 돈 벌기보다는 공부하는 것이 더 좋은 결혼 못한 노처녀에 자유 영혼이다. 미래에 대해 불안하지만 불행할 것이란 생각은 하기 싫다.


이 이야기는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시작이다. 나의 과거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졌고,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나를 찾아가며 찾을 것이다. 늦지 않게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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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