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가보니……
소녀는 이제 갓 열여덟 살이 되었다. 배를 가지고 있던 소녀의 집안은 가두리 양식장과 멸치잡이 배를 가지고 있는 말 그대로 동네 부잣집이었다.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할 때도 너무나 외진 어촌의 그곳은 일본이 전쟁 중인지 패망했는지도 알 수 없는 곳이었다. 건너 마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산을 하나 넘어 있는 그곳은 옛날부터 나라님이 되는 사람이 많아 대대손손 가난하든 부자이든 소위 말하는 ‘선생님’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다. 소녀는 오늘 앞으로 평생 살아야 하는 곳으로 향했다. 아무리 촌이라지만 일본은 긁어 갈 수 있는 만큼 긁어갔고 바닷가에서는 쌀 구경은 금광을 발견하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소녀에 몫으로 집에서 챙겨준 것은 잘 말린 멸치와 문어, 그리고 소 한 마리가 다였다. 소가 끌고 가는 수레를 머슴이 몰고 소녀와 소녀의 아버지는 건너 마을로 들어섰다.
“형제는 친누이가 있다고 하더라. 누이는 출가를 했다고 하네. 내 보니 크고 멀끔해. 글을 어찌나 잘 쓰는지 모르긴 몰라도 큰 사람이 될 것 같다. 고래잡이 배 큰 한 척이 있다고 하니 앞으로 굶을 일은 없을 것이다. “
아버지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상대의 이야기를 이제야 했다. 왠지 소녀만 잘하면 아무 문제없을 것이라는 환경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는 ‘잘 살아보겠노라’는 생각만 했다. 맏이인 소녀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다. 줄줄이 딸린 동생들은 모두 소녀의 몫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동생들로부터, 엄마를 대신해야 하는 의무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 홀가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비록 건너 마을이긴 해도 집과 멀어지는 것이 조금은 서운했다. 남들은 시집을 간다고 하면 자기 집 마당에서 혼인식을 한다고 하던데, 소녀의 집은 엄마의 부재로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소 한 마리, 그게 다였다. 소녀의 봇짐 속에는 속옷과 일할 때 입을 몇 가지 옷, 그리고 수저와 밥그릇이 들어있었다. 짐을 싸며 소녀는 엄마가 있었으면 좀 더 잘 챙기지 않았을까 싶은 서운함도 있었지만, 시집을 간다고 양장의 귀한 옷과 한 번도 신어보지 않은 구두를 사준 아버지의 마음에 그 서운함은 다 잊기로 했다.
한 집 앞에서 멈추었다. 소녀의 집도 큰 편이었지만 더 큰 집이었다. 이미 열려 있는 대문을 통과하니 꽤나 넓은 마당이 있고, ㄷ자 모양의 한옥은 누가 봐도 여유 있는 집이었다. 안방에서 곰방대를 물고 문을 빼꼼히 여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소녀보다 대 여섯 살 많아 보이는 20대 초반의 여자가 쪽진 머리를 하고, 매서운 눈길로 소녀를 쳐다보았다.
소녀의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들어오시게. 오시느라 고생 많았네. 저 아이인가?”
곰방대를 문 어르신이 소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처음 양장을 입은 소녀는 어쩔 줄을 몰라 손만 꼼지락 거렸다.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고 다시 방문이 닫혔다. 소녀는 덧마루에 걸터앉았다. 긴장한 탓에 덜컹거리며 오느라고 온몸이 아픈 줄도 몰랐다. 머슴이 수레에서 소를 풀어 ‘이 집 외양간이 어디요?’ 하고 물으며 끌고 갔다. 소녀가 앉아 있는 첫 마루 옆 방에서 누가 쳐다보는 듯한 인기척을 느꼈다. 여닐곱 쯤으로 보이는 아이였다. 행색을 보아하니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은 것이 일하는 아이는 아닌 듯했다. 누구지? 형제는 누이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리고 그 방의 젊은 여인은 누구지? 궁금했지만 차차 알겠지 싶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 아버지가 방에서 나오셨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아버지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고는 소녀에게 다가왔다.
“너는 이제 죽어서도 이 집 귀신이다. 시부모님 말씀 잘 듣고 지아비 잘 모시고 그리 살거라.”
아버지는 소녀에게 늘 극진했던 분이셨다. 다른 형제들은 몰라도 동네에서 유일하게 소학교를 마쳐 언문을 익힌 여자아이였다. 그러나 엄마가 죽고 나서 소녀에게 집안일을 맡긴 것이 미안해서인지, 아니면 첩도 들이지 않은 고지식함 때문인지 항상 말씀이 없으셨다. 아버지가 오늘 소녀에게 한 말은 아마도 평생 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먹고 살일 걱정 없는 집에서 시부모님 잘 모시고 지아비 잘 떠받들며 평생 그렇게 사는 것. 딸이 무탈하게 여자로 사는 것이 아버지가 생각하는 최고의 행복일지 모른다.
아버지가 떠나고 나니, 아까 방에 있던 젊은 여자가 소녀에게 다가왔다.
“하이고, 그런 옷을 입고 일은 어찌하려고? 니 옷부터 갈아입어야겠다. 내가 니 시어매다.“
소녀는 깜짝 놀랐다. 젊은 여자가 시어머니라서 놀란 것이 아니라, 곱게 차려입은 것이 잘 못한 것인 줄 알고 놀란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는 와중에 대문으로 웬 청년이 들어왔다.
청년은 키가 무척이나 컸다. 그리고 서양식을 짧게 자른 머리가 낯설기보다는 단정해 보였다. 얼굴도 하얀 것이 누가 봐도 글을 읽는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청년은 말은 종이와 붓을 한 손에 들고, 한 손은 양장바지 주머니에 끼고 있었다. 소녀는 첫눈에 ‘아 저 사람이구나’라고 알아봤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전 마을에서 남자들 대부분이 소녀보다 키가 작았는데, 청년은 키도 소녀보다 크고 어깨도 넓었다. 한 번도 고된 일이라고는 하지 않았을 것 같은 길고 흰 손가락은 먹이 묻어 있었다. 눈매는 매섭고 코는 서양사람처럼 오똑했다. 청년은 소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고개를 들어 소녀를 똑바로 본 청년도 한눈에 누군지 알아봤다. 말로만 듣고 그저 그랬는데, 까무잡잡한 피부와 큰 눈, 긴 코와 도톰한 입술에 보통여자 보다 키가 크고 늘씬한 것이 앞으로 평생 같이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청년이 자신이 소녀의 지아비라는 것을 엄포하듯 소녀 편을 들었다.
“어매요, 야 이제 왔심더. 오늘은 좀 쉬라합시더. 남의 귀한 딸 식도 안 올리고 델꼬 왔으면 잘해주야지 첫날부터 무슨 일인교?”
그러고는 헛기침을 하며 소녀에게 말했다.
“우리 방은 저 방이오. 들어가입시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