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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Mar 29. 2023

친절도 병이다

나는 착하지도 않으면서 나이 든 할머니들만 보면 반드시 도와줘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다. 손녀애정결핍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할머니의 사랑 부재도 아닌데 특이하게 할머님들만 보면 밑도 끝도 없이 안타깝고 혼신의 힘을 다해 내가 손해 보더라도 도움을 강제로 줘야 직성이 풀린다. 좋게 말하면 어른공경 잘하는 요새 젊은이 같지 않은 참한 처자고 안 좋게 말하면 착한 아이 증후군에 사로잡힌 오지랖퍼이다. 껄껄껄.

 

대부분 나의 어른공경 오지랖은 버스 안에서 이루어진다. 아무리 먼 길을 가더라도 편하게 앉아서 가는 것보다 노약자분들에게 자리양보해주고 서서 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 예전에 다리를 다친 채로 버스를 탔는데 바로 옆에 50대 중반 즉 아주머니와 할머니 중간쯤 되어 보이시는 할주머니가 서 계셨다. 자리를 양보해주고 싶었는데 다리가 너무 아파 차마 일어서질 못했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지만 호로자식이 된 것 같은 죄의식에 결국 나는 20분이나 아이고 다리야를 연발하며 다리가 곧 절단될 사람처럼 곡소리를 했고 거기에 더해 고개를 죄인처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깨 담을 얻었다. 껄껄. 이게 나란 사람이다. 쓸데없는 죄의식과 근본을 알 수 없는 효도심리.


1. 밀당의 고수.

하루는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데 할머니 한분이 힘겹게 버스에 오르셨다. 새파랗게 어린 학생과 내 나이또래 젊은이들이 많았지만 다들 모르쇠 일관하며 자리를 양보해 줄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솔선수범하여 자리를 양보하자 싶어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할머니는 괜찮다며 일어서는 내 어깨를 살포시 누르셨다. 강제 착석이 된 나는 이왕 양보하기로 마음먹었으니 기필코 저 할머니를 내 엉덩이로 뜨뜻하게 데워놓은 이 자리에 앉히겠다는 굳은 의지로 다시 일어서는 동시에 "저 곧 내려요. 여기 앉으세요."라 했는데 할머니는 다시 거절하시며 또 내 어깨를 누르셨다. 할머니 악력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이 정도의 악력이면 다리 근력도 어마어마 할것이라는 추측에 잠시 아주 잠시 이 할머니는 서서 가도 되겠다 싶었지만 한번 마음 먹은거 자리를 끝까지 양보하릭로 했다. 그리고 반복된 할머니와 나의 '타시오 앉으시오' 두더지 잡기 게임.


나의 엉덩이는 계속 앉았다 일어섰다 들썩들썩거렸고 할머니는 자라나는 새싹을 지르밟는 것처럼 자꾸 앉아있으라며 나의 어깨를 짓눌렸다. 이쯤 되니 나도 오기가 생겼고 뒤에서 이 상황을 보고 있을 것 같은 승객들의 시선도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완강한 태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살짝 곁눈질을 해서 본 할머니는 마치,

일...어ㅓㅓ나...지..ㅁㅏ..라..

자네. 일어서면 죽빵이 날아갈 것이여.


그렇게 나는 불편하게 앉은자리에서 안절부절못하며 10분을 더 갔다. 우리의 러브스토리를 모르고 뒤늦게 탄 사람들은 늙은 사람은 서 있는데 젊은것이 뻔뻔스럽게 앉아간다고 파렴치한 불효자 ㅅㄲ로 생각했겠지. 억울해. 호롤로롤로로.




2. 나는야 혼자 우뚝 서있는 외로운 섬.

이것도 버스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종점에서 탄 나는 처음부터 앉아 갈 수 있었다. 버스가 번화가에 도달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렸고, 자리순환이 되면서 각자 빈자리에 다 착석했다. 곧이어 새로운 승객으로 꼬부랑 할머니가 탔고 할머니와 눈이 마주친 나는 조급함에 습관성 자리 양보기립을 했다. 작은 목소리로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라 말하고 일어섰는데 할머니는 "아니야. 나 곧 내려. 괜찮아요. 고마워요."라 하시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자리양보 받는 게 미안하신지 멋쩍은 웃음을 지으셨고 곧 내린다는 말로 나를 안심시키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나도 곧 내린다는 거짓말로 상대방에게 자리양보를 하는 편이라 할머니도 그런 줄 알았다. 할머니옆에 서서 어서 앉으시라 옥신각신하며 따뜻한 친절이 오갔고, 그 사이에 버스는 다음 정거장에 도착했다. 


이런. 정말 할머니는 다음 정거장에 내렸다

ㅆㅣ바ㄹ. 부자신가. 


정말 한 거정만 타고 내리다니. 민망해라. 내가 뻥 지고 있는 사이 새로운 젊은 여자가 탔고 비어있던 자리에 그 여자는 미꾸라지처럼 쏙 앉아버렸다. 그리하여 혼자 버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몇 분 가량을 더 갔다. 억울해. 호롤로로ㅗ롤.




3. 나에게 왜 그랬어요.

아침 일찍 병원에 갔다 왔다. 버스 내릴 때가 되어서 벨 누르고 출입문 앞에 서 있는데 같은 정거장에 내리실 건지 할머니 한 분이 무거운 짐을 끌고 옆에 대기하고 계셨다. 한눈에 봐도 짐이 무거워 보였다.


"할머니 제가 이거 들어드릴게요."

"아니야 이거 무거워서 괜찮아요 괜히 허리 다쳐."

"괜찮아요 저 힘세요."


호기롭게 말하고 포대자루를 살짝 들어보니 이런 젠장 진짜 조오오온나 무거웠다. 안에 매실이 있다고 했는데. 이건 매실이 아니라 백퍼 벽돌이나 투포환이다.


버스에서 내려 포대자루를 땅에 놓고는 잠시 고민했다. 나의 친절은 어디까지 이어져야 하나. 이대로 쌩 가버릴 것인가, 예의상 어디 사는지 물어볼 것인가. 고민하던 찰나에 할머니는 먼저 선수 쳤다. 


"나 112동 사는데 허허." 

젠장 발언권을 뺏겼다. 그 말인즉, 나 힘드니까 젊은 니가 112동까지 들어다 줘 였다.


112동이라 치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제일 끝쪽에 있는 동으로 정문에서 걸어서 적어도 4분이다. 거기에 매실 50000kg까지 들었으니 반나절 걸릴 거라 찰나에 계산이 되었다.


그래도 이왕 도와주기로 한 거 112동까지 낑낑대고 들어다줬다. 


이까지다 나의 친절은.


인사를 하고 냉큼 돌아가려는 찰나에 할머니가 

"아이고 이를 어째 나 4층 사는데."

..... 힝?


도대체 왜 매실을 사셨어요.

그냥 매실음료 사드시지.

도대체 왜. why.

난데스까.


내가 없었으면 할머니는 이 매실포대를 어찌 옮겼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땀 흘린 김에 끝까지 도와주자 싶어 4층까지 (5층짜리 건물이라 엘리베이터 없음) 질질 끌고 집까지 매실님을 모셔다 드렸다.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방울이 얼굴을 적셨다. 할머니는 오늘 너무 고맙다고 포대자루에서 매실을 한 움큼 꺼내 손에 쥐어 주셨다. 하필 할머니 손도 작다. 집에 들고 가니 매실 몇 개로는 해 먹을 게 없다는 엄마말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그날 밤에 근육통약 한 알 먹고 파스를 허리와 어깨에 덕지덕지 붙이고 울면서 잠들었다. 


억울해. 




난 정말이지

착하게 살고 싶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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