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동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봄바람에 팝콘같은 벚꽃이 흩날릴 때, 차가운 바람이 불어 손이 시릴 때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게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고, 좋은 영화나 음악을 접할 때 연인과 함께 했으면 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는 예외다. 나는 음식이 맛있으면 혼자 다 먹고 싶고, 좋은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을 때 혼자라 더 집중하고 싶다.
내가 대한민국 출산율을 낮추는데 일조한다는 죄책감도 있지만 아직은 혼자 사는 게 즐겁고, 혼자서도 바쁜 나로서는 연애가 귀찮다. 사실 남자를 소개해주는 지인들도 없지만 혹여나 아주 드물게 소개팅 제안이 들어오면 만나서 얼굴 확인 하고 면접 보듯 형식적인 기본 인적 사항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며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헤어지는 소개팅 패턴이 식상하고 지루하다고 느껴져서 피하게 된다. 우연히 길 가다가 첫눈에 반해 번호 교환을 하는 기적 같은 일이 내게 있을 리 난무하고, 같은 취미를 가진 동호회 모임에서 눈맞아 연인으로 발전하기에는 나는 집밖을 나가지 않는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내가 남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슬프지만 현실적인 소개팅뿐이다. 사실 자존심에 소개팅이라고 적었지만 소개팅을 가장한 ‘선’이다. 한번 가볍게 만나서 즐겁게 대화하고 쿨하게 헤어지는 20대의 풋풋한 만남이 아닌 결혼까지 생각했어의 노래가사처럼 진지하고 절박한 30대의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나의 자녀의 아빠 찾기 게임인 셈이다. 이 게임에서 승리하면 늦자락에 결혼 성공한 불혹의 노산의 아이콘이 되고 지게 되면 꼴에 눈만 높은 노처녀가 된다.
운 좋게 소개팅에 나온 상대방이 나의 이상형에 부합하거나 대화가 잘 통해서 몇 번이고 만나 이야기꽃을 피워 우리만의 정원을 만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사실 참여하는 의미를 두는 마라톤이라 생각한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켜내며 주선자의 체면을 봐서라도 매너를 잃지 않는 그런 마라톤. 중간중간에 적절한 리액션과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는 덤이요.
보통 소개팅은 주선자가 상대방에게 나의 연락처를 전달하고, 상대방이 먼저 연락을 하는 방식인데 요즘은 카카오톡 때문에 번호만 저장해도 아이디가 자동 저장이되니 본의 아니게 프로필 사진을 보여주게 된다. 그래서 웬만하면 사진으로 설정하지 않고 감성 배경사진으로 해둔다. 사실 내가 사진빨이 잘 받는 얼굴이라 사진과 실물이 조금 다르긴 하다 그래서 더더욱 사진을 미리 공개할 수가 없다. 예전에 중국에서 소개팅 나온 여자의 실물과 사진이 달라 남자가 화가 나 이성을 잃고 여자를 폭행했다는 뉴스를 본 뒤로 절대로 나는 사진을 프로필로 설정하지 않는다. 남자의 폭행을 정당방위로 만들고 싶진 않으니까.
일단 나는 소개팅이 가진 분위기가 싫다.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서로의 숨겨진 모습, 예상과는 다른 모습에 화들짝 놀라 두 번 세 번 반하게 되는 그런 자리가 아니라 소개팅은 이미 두 사람 다 연애라는 강력한 목적으로 주선자가 깔아준 자리에 형식적으로 나와 이 사람이 내 기준에 부합했는지 아닌지를 선택과 탈락으로 결정하는 거라 생각이 든다.
'당신은 생각보다 말이 많군요 죄송하지만 당신은 나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혹은
'당신은 일단은 괜찮아 보이니 합격 목걸이를 드립니다 2차 예선 만남에서도 열심히 해주세요'
... 와 같이 쇼미 더 머니에서 보이는 '한번' 보고 판단되는 오디션처럼말이다. 합격 목걸이를 쥐고 있는 사람은 둘 중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 하지만 쇼미 더머니보다 소개팅이 더 슬픈 이유는 소개팅에서는 패자부활전이 없다는 것이다. 즉 탈락하면 그냥 끝인 셈이다. 내 인생에 한 번도 두 번째 만남까지 이어진 적은 없다. 무슨 어쩌고 통계자료를 봤는데 사람은 본인과 반대인 사람에게 끌린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잘생긴 사람만 좋아하나 보다.
사실 나는 늦었다고 본다. 30대 끝자락에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살아온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웃고 울고 불고 물고 빨고 할 열정이 남아있지 않다. 운명 같은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기에는 난 공주가 아니다 그냥 열 몇명의 난쟁이중 한명일뿐. 지금 내 나이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결혼에 진심이거나 절박한 사람들뿐일것이다 혹은 한 번 다녀온 사람일지도.
언제나 그랬듯, 나는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좋고, 구속당하지 않아 자유로운 게 좋다. 코딱지만한 작은 원룸에 사는 게 편하고 각종 이벤트를 챙기며 헛돈과 감정을 낭비하지 않아서 좋다. 어차피 죽을 때 들어가 누울 관은 1인용이지 않은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눈 감는 그 순간까지 혼자임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훨씬 편안해진다.
어쩌면 난 이미 천부적인 외로움에 익숙해진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잘생긴 남자는 못 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