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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Jan 18. 2023

청개구리는 오늘도 목숨을 담보로 살아요

나는 청개구리일까?

이상하게 나는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는 바로 그 순간 나 자신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행동을 하려고 몸부림친다. 상대방을 놀리고자 하는 단순한 장난기가 아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주술에 걸린 것 같이 온 신경이 하지 말라는 행동으로 몰린다. 분명 그전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하지 말라 하는 순간, 그 행동에 집중이 되어 자꾸 하려고 하는 내 모습을 여러 차례 발견한 적이 있다.


예전 위내시경을 마취 없이 쌩으로 받은 적이 있다. 간호사 선생님 말씀대로 내시경호스를 눈감고 한번 꼴딱 삼켰고 생각보다 역하지 않아 마음을 놓고 검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의사 선생님이 환자분 잘하고 계세요. 금방 끝나니까 호스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계세요"


.... 라 말을 뱉는 순간, 바로 그 순간! 호스가 조오오오오오오나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눈만 끔뻑거리며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의사 선생님 그 한마디에 무너져버렸다. 마치 내 몸 안에 큰 뱀이 있는 것처럼 갑자기 헛구역질이 시작됐다. 우웩 우웩 우웩 내 자신도 모르게 계속 머릿속으로 


어이쿠 지금까지 잘 참으셨쎄여 ? 

그렇다면 지금부터 굉장히 불편하게 만들어드립죠 


내시경 호스가 전봇대처럼 느껴져 30초 전과는 달리 갑자기 너무 괴로웠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꿈틀거리는 나에게 간호사 선생님이 환자분 조금만 참으세요 다 끝나갑니다 라 말씀하셨고 또 그 말을 들은 동시에 나의 청개구리 기질이 


조금만 참아? 그럼 못 참아 안 참아.


호스가 입에 물린 채로 나의 심정과 고통을 의료진에게 정확하게 전달했다. 으아..아ㅏㅏㅏㅏ아아아.. (호스가 굉장히 신경쓰이고 속이 울렁거립니다) 아..으아ㅏㅏㅏㅇ.아ㅏ (당장 검사를 멈추시오) 의사 선생님은 내 고통과는 상관없이 네네네네 대답로봇처럼 헛대답만 하셨고 전혀 멈출 마음이 없어 보였다. 다행히 생각보다 빨리 끝났지만 기분 탓인지 정말인지 가슴이 타는 듯하고 목구멍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한 번은 치과에 어금니 치료를 받으러 갔다. 입에 개구기를 끼고 충치를 갈고 찌지고 볶고 하는 동안 또 아무 생각 없이 흐릿한 초점으로 머리 위 주황색 조명을 쳐다보고 있는데 적막을 깨고 간호사 선생님이 한마디 하셨다. 


"환자분 기계 들어갑니다. 혀가 다칠 수 있으니 기계 쪽으로 혀가 가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 라고 하는 순간 내 뇌가 곧 혀요 내 혀가 곧 뇌가 되어버렸다.


누구인가. 누가 방금 혀 소리를 내었는가. 간호사 선생님 말을 듣기 전까지는 혀를 갈고리 모양을 잘 말아 가지런히 정자세를 잡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자꾸 '오호라 저 기계에 혀를 한번 비벼볼까'로 시작해 혀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뱀처럼 낼름거리기 시작했고 머릿속으로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저 기계에 제 혀를 제물로 바칩니다의 마음으로 혀가 자꾸 기계에 붙으려고 하는 것이다. ㅈ됐다 싶은 마음에 여러 차례 정신줄을 잡으려고 했지만 마음과는 달리 계속 혀가 갈피를 못 잡고 왔다 갔다 하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내 혀를 조종하는 것처럼 제어가 되지 않았다. 


어금니대신 내 혀를 갈아주시오.


보다 못한 의사 선생님이 환자분 혀! 혀! 혀! 혀 조심하세요! 를 외쳤지만 이미 내 혀는 기계와 첫 키스를 앞둔 것처럼 닿을랑 말랑 밀당을 하면서 여러 번 의사 선생님의 간을 쪼그렇드렸다. 


선생님 제발 내 혀 좀 마취시켜주세요.




그릇이 뜨거워서 만지지 말라는 것도 얼마나 뜨거운지 알아내기 위해 나도 모르게 먼저 손가락이 슬금슬금 가서 만져본 후 한차례 데이고 나서야 방정스럽게 손을 탈탈 떨며 '정말 뜨겁네' 하고 인정한다. 또 뜨거운 음료수를 마실 때도 친구가 식은 다음 마시라고 해도 내 혀가 먼저 마중을 나가 뜨거운 물 안으로 살짝 담궈본 후, 혀가 샤브샤브처럼 살짝 익어봐야 '아 겁나 뜨겁네'를 느낀다. 하지 말라고 말 안 하면 안 할 텐데 왜 나는 이러는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남이 하지 말라는 건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건지 나도 가끔 나 자신을 모를 때가 많다.



쌍꺼풀 수술 때, 의사 선생님이 절대로 눈뜨지 말라고 눈을 뜨면 큰일 난다고 몇차례 신신당부하셨다.

그러자 갑자기 조용하던 나의 마음이 출렁이기 시작하더니,

심봉사가 공양미 3백석에 눈이 뜨여진 것처럼

나도 모르게 

눈이 

번쩍 떠져버렸다.


두 눈이 번쯔어어어억


의사선생님 : 으아아앙아악 뭐야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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