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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Jul 07. 2023

아빠의 칠순에 관심을 선물했습니다

 아빠의 생신날이다. 그것도 무려 칠순.

념일에 크게 의미를 두는 성격은 아니지만 10년 전의 나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려 이번 아빠의 칠순은 꼭 특별하게 챙기고 싶었다. 10년 전, 아빠의 환갑 때 나는 한국에 없었고 환갑을 챙겨드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이 컸다. 그래서 아빠의 칠순 때는 동네 사람들 다 불러 모아 칠순잔치를 크게 해 드려야겠다 생각했다. 사당패를 불러 국악 한마당을 펼치고 개그맨도 섭외해 흥과 분위기를 돋우고 출장 뷔페를 불러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사람들 앞에서 아빠가 얼마나 자녀를 잘 키웠는지 자랑스럽게 해 드리자 다짐했는데 난 지금 백수에다가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캥거루족이라 계획했던 그 어느 하나 할 수가 없다. 


10년 전의 나는 10년 뒤면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허황된 칠순 잔치 판타지와 효녀심청 코스프레를 꿈꿨나 보다. 잔치에 초대된 아빠의 지인들이 "딸 하나 잘 키우셨네요 참 자녀복이 있으시네요." 소리를 들으며 아빠의 어깨를 한껏 올려주고 싶었는데 실상은 "그냥 딸 하나 있으시네요."가 되어버렸다. 나 비록 지금은 무직의 근심덩어리지만 블루베리 농장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돈을 다 드리기로 했다. 누군가가 현금이 최고의 효도이고 금액이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라 했다. 아주 큰 액수는 아니지만 내 가진 모든 현금을 탈탈 털어 드리자. 그것이 지금 현재 내 상황에서 해드릴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니까. 


그냥 돈만 덜렁 주면 멋없어 보여 나름 소소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이것저것 기발한 아이디어들 많았는데 그중 제일 재밌어 보이고 있어 보이는 현금부채를 만들기로 했다. 배송료 포함, 만 몇천 원을 지불하면 부채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배송되는데 백수라서 그 돈도 아까웠다. 배운 게 디자인인데 대충 보고 집에 있는 재료에다가 천 원짜리 다이소 비닐봉지 하나만 사서 내 느낌대로 만들어봤는데 나름 성공했다.


사당패 풍물놀이를 생일축하 노래로 대신했고 개그맨 대신 내 나이 곧 40살에 부모님 앞에서 두 다리가 부서져라 개다리춤을 있는 힘껏 췄고 출장뷔페 대신 아빠가 좋아하는 아귀찜을 먹기로 했다. 노래며 춤이며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현금, 중꺽금이지. 생일초를 끈 뒤 아빠에게 선물을 건넸고, 뭘 이런 걸 다… 하던 아빠는 선물을 풀어보고는

난다난다 신이 난다.

건치미소. 활짝 펼쳐진 부채만큼이나 활짝 개방된 아빠의 윗니 아랫니.


차마 아빠의 초상권 때문에 브런치에 동영상을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아빠는 무형문화재 부채춤 장인만큼이나 돈부채를 들고 몇 분 동안 요염하게 부채춤을 췄다. 행복에 겨워 두둠칫 추는 아빠의 부채 춤사위는 나라를 잃은 민족의 혼이 담긴 아리랑춤만큼이나 나의 코를 시큰하게 만들었다. 평소 선물 하나 못 드린  불효자 새끼는 웁니다 꺼이꺼이.




현금부채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빠는 평소에 잘 찍지도 않는/가뭄에 콩 나듯 찍는 사진과 동영상을 연신 찍어달라 부탁했고 카카오톡으로 지인들에게 사진을 보내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아빠의 칠순인지 모르는 아빠의 지인들은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뜬금포로 전송된 아빠의 저 부채춤 동영상과 건치미소 사진을 보고 분명히,

으아악 내 눈. 아..ㄴ안돼ㅐㅐㅐ.

아따 시방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거시여.


김씨

차단합니다.


앞으로 카톡 보내지 마쇼.



그렇게 한바탕 아빠의 민속무용을 보고는 우리는 아귀찜을 먹으러 갔다. 아귀찜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라 가게 안은 이미 인산인해였다. 에어컨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아귀찜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아빠가 나에게 덥다고 부채를 달라고 했다. 그렇다. 아빠는 쥐도 새도 모르게 내 가방에 선물로 받은 현금부채를 넣어왔고 굳이 굳이 사람이 많은 가게에서 덥다고 부채질을 굳이 해야겠다고 했다.


아…


현금부채를 촤라락- 펼쳐 사람들 앞에서 보시오 보시오 이보시게들 나 좀 봐주시오 소리 없는 외침을 할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니 내가 느낄 개망신과 아빠의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난 열망 사이에서 나는 순간 고민을 했다. 그래 오늘은 아빠의 날이니 아빠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마음껏 놔두고 옆에서 장단을 쳐주는 거야! 그럼 그럼 그것이 자식 된 도리지! 아버지 내 아버지 어서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비상하듯 부채를 활짝 펼쳐 아버지도 높이 비상하시오.


가방에서 부채를 꺼내 아빠에게 토스했고, 아빠는 아귀찜 테이블에서 부채를 촥- 펼쳤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이고 덥다. 여름에는 부채가 최고지. 

* 에어컨 앞자리라 사실 덥지도 않았음



그리고는 소름 돋게도! 스무 명 남짓의 손님들, 사장님, 아르바이생들 모두.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았다.





여름이었다.





끗.





아빠가 예상한 아귀찜집 손님들의 반응.

현금 부채를 향한 질투 어린 시선과 관심 그리고 부러움.



하지만 현실은,

군중 속의 고독. 철저한 외면.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사회.








+

현금부채 선물 추천합니다.

부모님의 건치미소를 볼 수 있으실꺼예요.

효도합니다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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