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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호월 Mar 10. 2023

오랜만의 산행길

의욕이 앞서서 그만..

 나이가 들면 들 수록 건강에 대한 염려는 비례해서 점차 늘어간다. 젊었을 때는 전혀 인지하지도 못했고 언제나 강철 체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역시나 나에게도 점차 힘이 빠져가는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하루 정도 지나면 괜찮았던 것이 이제는 회복하는데 이틀 이상 소요된다. 슬픈 일이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생각하면서 점차 운동량도 늘려가고 있다. 거창하게 등산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동네에 있는 산에 오르곤 했는데 겨울이라는 핑계로 이것마저 오래 쉬게 되었다. 산은 더 춥고 길이 얼면 위험하니까.


 이제 다시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다시 산에 오르는 것도 시작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산에 가니 매번 다니던 코스가 아닌 다른 코스로 가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의욕이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매번 다니던 길은 익숙하기 때문에 내가 어디쯤인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 머릿속에 그려지기 때문에 크게 어려울 것이 없는데 처음 가는 길은 코스의 난도를 떠나 힘들기 마련이다. 천천히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새로운 코스로 진입하였다.


 오랜만의 산행은 정말 즐거웠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는 왠지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 같아 너무 좋다. 살며시 피어오르는 흙내음도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앙상한 나무들만 보다 푸른 소나무들을 보고 개울가에 있는 개구리인지 두꺼비인지의 알을 보니 곧 생겨날 생동감들이 벌써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손 끝까지 피가 도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드니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졌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었을까. 원래 생각했던 목적지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러다 너무 힘든 길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도 조금만 올라가면 운동도 되고 더 좋은 풍경도 볼 수 있다는 생각, 아니 욕심에 힘든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얼마 못 가 어려운 산길에 나의 체력은 한계에 다다랐다. 오랜만에 산에 올라서 더 힘든 것 같았다. 더는 안될 것 같아서 목적지까지는 못 갔지만 되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멍청하게 돌아갈 체력을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나 멍청하단 말인가!


 그저 목적지만 생각하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다 '이제 힘들다 그만해야겠다' 나의 생각은 거기서 멈춰있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그저 암담한 표정을 지으며 나의 멍청함을 탓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 벌써 이게 몇 번째인가. 물론 산행에서의 경험은 아니지만 이런 비슷한 경험을 벌써 몇 번 했건만 나는 다시 또 이런 상황에 맞닥뜨렸다. 물론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돌아가면 되긴 하지만 내가 참 답답하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살아오면서 이런 바보 같은 일이 참 많았다. 나름 예리하게 생각하고 계산해서 계획을 실행에 옮겼는데 알고 보니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아차 하면 이미 늦은 것이다. 나는 이미 역공을 당하고 있었다. 그게 시간이든 상대방이든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물론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있을 수 없지만 그 중요한 부분이 가장 기초적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대부분 나의 의욕이 너무 앞설 때 일어난다. 넘치는 의욕이 나의 눈을 가리는 것인지 그런 실수를 반복하고 만다. 잘해보려고 했던 것이고 이번에도 나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갔던 것뿐이지만 오히려 나의 몸에 독을 선물하게 되었다. 그렇게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고 돌아오며 문득 예전에 예능에서 봤던 문구가 생각났다. '의욕이 넘치는데 되는 게 없어요.' 새삼 저 말이 너무나도 와닿았다. 너무나도 맞는 말이다. 나도 나의 앞선 의욕이 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었다. 


 매번 의욕이 앞서기 시작하면 나의 눈은 반짝 빛이 날지는 모르지만 항상 그때를 조심해야 한다. 눈이 빛날수록 나의 침착함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흥분은 곧 독이 되기 마련이다. 실수는 잦아지고 결국 일을 망치게 된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일이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면 그 상처는 더 크게 다가온다. 나의 의욕적인 산행은 아픈 무릎과 종아리 근육을 남겼다. 


 하지만 나는 다시 산에 오를 것이다. 조금 크게 힘들었지만 다리에 근육도 더 늘었을 테니까. 우리의 마음도 상처는 받겠지만 어쩌면 근육이나 굳은살 같은 것이 생길 수도 있다. 의욕이 앞서 틀어졌던 일도 경험으로 알게 된 치료법으로 성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처음 가는 길은 신나고 즐겁고, 두 번째 가는 길은 그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기 때문에 더 수월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다음에 새로운 코스로 갈 때는 의욕은 조금 줄여봐야겠다. 무릎이 너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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