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rden Jul 20. 2024

‘선택적’ 동반자란,

켜켜이 쌓여가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

남편과 나는 밖에서는 좀 많이 치인다. 나는 말단이라서, 남편은 임원이라서. 말하자면 나는 나이많은 말단이라 여기저기서 천덕꾸러기 신세이고, 남편은 비교적 어린 임원이라 뭘해도 되바라진 놈 신세다. 참고 참으면 참나무가 되지만, 그렇다고 안참으면 또 싸움닭이 되는, 그야말로 밥그릇 전쟁터, 그곳에서 돌아온 우리는 집에서 다시 헤쳐모인다. 처지는 다르다한들, 사방이 적이고 믿을 데라고는 서로밖에 없다는 점에서 집에 돌아와 느끼는 안도감은 비슷할 것이다. 집은, 또다른 전쟁을 위해 새로이 출근을 하게되는 곳이겠지만, 그 전쟁은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면 사실 평화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정의하는 우리 부부의 관계는 ‘선택적 동반자’, 딱 그거다. 맞다. 선택적 함구증, 선택적 지각, 할 때 그 ‘선택적’ 동반자. 나는 꼴보기 싫지만 밖에선 항상 주목받고 보살핌받는 인물이었으면 하고 나는 욕하지만 다른사람이 욕하는 건 내아이들의 아빠에 대한 모욕이므로 참을 수 없고, 나는 그의 쌈짓돈 10원 한 장까지도 다 알고 싶지만 밖에서는 10원 한 장 손해보면 안되는, 그런 말도 안되는 사이. 그게 남편과 내 사이다. 둘중 하나가 밖에서 수세에 몰릴 때나, 외부에 공공의 적이 생겼을 때에만 서로 뭉치는 선택적 동반자.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도 우리엄마아빠처럼,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는 얘기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직접 결혼을 하게되기 전까지 쭉, 우리엄마 아빠의 결혼생활은 나에게 미스테리였다. 결혼이란 걸 했으니까 ‘그냥’ 사시는 것 같은  둘 사이가 그럼에도 끊임없이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 고작 나와 내동생, 자식때문일 것인가. 아니면 가족관계 증명서에서 증명해주는 ‘배우자’ 라는 서류 한 장의 위력 때문인가. 하늘에서 맺어준 천년의 사랑이 아닌 다음에야 애정도 없고, 긴장감도 없으며, 재미도 없이 지루하게 일평생을 한 사람과 보낼 수 있는걸까.


그렇지만, 그래서, 그러므로, 불타오르는 사랑으로 결혼에 이르른 나에게도 사랑의 유효기간은 빠른 시일 내에 끝이 났고, 비로소 아무런 애정없이, 긴장감없이, 재미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사실 그렇게 지루하기만 해도 다행인데, 꼴도 보기 싫은 순간들도 함께 찾아왔다. 밥먹는 모습이 꼴보기 싫으면 정말 싫어진거라던데, 밥은 물론 물한모금 마시는 게 꼴보기 싫은 순간도 있었고, 앞통수보다 뒤통수가 더 미워죽겠는 시간들도 있었으며, 그런 모든 순간을 합친 시기도 있었고 그러다가 결혼 15주년 결혼기념일을 한 달 앞둔 지금에 이르렀다. 남편과의 갈등이 찾아올 때마다, 저인간이 꼴보기 싫어졌을 때마다, 다시 혼자였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나는 우리 관계에 대해 정의내리고 싶었다. 우리의 역학관계에 대해 해석하고 싶었으며, 남편‘놈’ 의 뇌구조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그를 미워한다면,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것을, 나는 내가 훨씬 중요하므로, 어떻게든 우리 둘을 놓고 해체시키고 들여다보고 다시 조립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이는 더 벌어졌고, 사랑은 애저녁에 동이 났으니, 서로 피곤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정말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될 즈음, 그 어떤 진리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평소에 통문장으로 세 문장 이상 대화를 시도하면, 서로 빈정이 상하고 30분 이상을 대화했다면 반드시 다툼이 일어나지만, 내 배우자가 직장에서 수세에 몰려있다면 밤새 기꺼이 말상대와 상담자가 되어주고 외부에 공공의 적이 생겼을 때엔, 함께 훗일을 치밀하게 도모하는 선택적 동반자. 나의 이 결혼생활이 딱히 행복이라 말할 수는 없으나 나에게 이렇게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는 동맹이 하나 있다는 사실만큼은 얼마나 든든한지, 결혼 15년에 이른 지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선택적 동반자로서 느끼는 모든 감정이 다 사랑이었음을, 느끼는 중은 아니지만, 인정하려 애쓰는 중이다.


하루종일 어디다 빨대를 꽂힌건지, 기가 쪽 빨린 퀭한 얼굴로 밤늦은 퇴근을 했을 때, 얼음탄 미숫가루라도 내어주는 내 마음, 회사에 터진 안좋은 일을 수습하러 새벽같이 일어나서 조용히 출근하는 짠한 뒤통수, 저인간 나 아니면 어디서 주름이 빳빳한 와이셔츠 한 장 다려줄 사람있을까 하는 마음, 월급도 직급도 올라서 이직을 했을 때 축하보다 얼마나 집에서 공치사를 해댈까 배알이 꼴리던 마음,  한편으로는 월급도, 직급도 올라서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어주어 고마웠던 마음, 우리엄마 아빠에게도 이직을 알리며 나 대신 전화를 드렸을 때 부모님께 체면이 서서 자랑스러웠던 내 마음, 이 모든 마음들이 다 모양이 다른 사랑이었다.


정의내리려고 할 때마다, 해석하려고 할 때마다, 나를 더 복잡하고 어려운 수렁으로 밀어넣던 결혼생활의 실체는 사실, 더이상 정의내리고 해석할 가치도 못느끼고, 그저 하루하루 나에게 주어진대로 살아야겠다고 체념한 순간, 더이상의 개선과 변화를 포기한 순간, 결혼생활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게 바로 이런 모습이라는 걸 나에게 알려주었다. 선택적으로 취할 수 없는 상대방의 보기싫은 모습을 체념하고, 바꾸고 싶은 단점을 포기해버리는, 그런 것들도 종내에는 그를 존중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걸, 결혼 15년차에는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직도 길거리에서 초등학생처럼 바나나우유를 쪽쪽 빨아먹고, 쉬는 날 밤에는 뿅뿅거리는 모바일게임을 하는 남편의 모습이 꼴보기 싫어 견딜 수 없었지만 이제 체념에 이른 나처럼, 남자와 여자로 만나 느낀 불타는 사랑만이 아니라, 짠함도 안쓰러움도, 질투도 시샘도 미움도, 또한 체념과 포기도 사랑의 다른이름들이었다.


이 글은 결혼 N년차, 사랑타령, 권태기타령을 하는 누군가로부터 시작되었다. 배우자를 보아도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고, 결혼생활이 지루해서 못견디겠다는 철없는 누군가가 나에게 이 글을 쓰게 했다. 물론, 나는 지금도 결혼을 준비하거나, 망설이거나, 결혼상대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단 결혼을 하지말라고 말리고 볼 것이다. 도파민이 폭발하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2년에 불과하다는데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결혼을 할 건가. 2년의 에로스를 위해 내 평생을 걸어야 할 수도 있는 결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나는 겁없이 결혼에 뛰어 들었고 누군가도 그렇게 엉겁결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는 곧 후회들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처음이라서 가능했을 일이었을 지도 모르고, 이런게 결혼이라는 걸 주변에서 단 한명만 나한테 진지하게 충고했더라도 나는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결혼이라는 열차에 탑승을 했고, 배우자와 나를 원인으로 영문도 모른 채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아이가 몇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딘지 모를 종착역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가야만 하는거고, 빨리가는 방법이 없다면, 적어도 나는 ‘잘’ 가고 싶다. 권태기도, 미움도, 다툼도, 희열도,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느끼고 음미하면서 그렇게 가고 싶다.


 

이전 09화 자존감과 시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