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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Sep 11. 2023

우리 동네 문화제  풍경

산골 일기



봉평

달라져도 참 많이 달라졌다.

2001년 가을, 금당계곡 언저리로 들어가 살 때만 해도 두서넛이던 펜션 간판이 2년쯤 지나니 스무 개 남짓으로 늘어나던 걸 보며, 여름엔 흥정계곡 겨울엔 휘닉스파크 가을엔 메밀꽃 보러 오는 이들 묵을 곳이 이렇게도 많이 필요한가 보다 했다.

더불어 늘어나는 막국수집도 모자라 다닥다닥 카페에 스테이크 화덕피자집까지..., KTX역부터 봉평까지 자전거로 오갈 수 있는 냇가 길을 만든다는 소리가 들린다.


달라져도 너무 빠르게 달라지는 게 문화와 정서의 세대 차이만큼이나 빠른 봉평, 사람 사는 집이나 논밭보다 산이 더 많은 산골 작은 봉평면이 요즘 들썩들썩한다.

평창군 봉평면은 작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으로 이름나 있는 곳이다.

닷새마다 열리는 진부장 봉평장 대화장을 오가는 주인공 허생원이 가슴에 묻어둔 20년 전 사연을 펼쳐놓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단편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작가가 살았다던 집 언저리 둘레 밭은 하지 감자를 캐자마자 메밀씨를 뿌리고 꽃이 필 무렵엔 <효석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잔치를 연다.

벌써 스무 번이 넘는 잔치는 메밀꽃 축제였다가 효석문화제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잔치 주인공은 여전히 메밀꽃.

대한민국 문화체육 관광부 지정 축제만으로도 10년 남짓이고 최우수 축제로 선정되었단다.


축제장

잔치 기간은 열흘, 평창 IC(구, 장평)를 나와 봉평 방향으로 몇 백 미터 보면 들어오다 보면 왕복 사 차선이 나오는데, 고속도로에서 막 벗어난 자동차는 뉴턴의 제2 법칙에 따른다는 듯 한산한 2차선 길을 씽씽 달리고 싶어 하겠지만 제한 속도 70킬로 인 데다 조금 달려가다 보면 봉평 면으로 또는 쇠판리와 평창 휘닉스가 있는 동네로 갈 수 있는 갈림길이 나와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깥에서 들어오는 차량 거의는 면으로 바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온다.


평소에는 장터 주차장이지만 문화제가 열리는 동안은 축제마다 다니는 천막 공연단이나 온갖 노점이 들어서 차는 한 대도 들어갈 수 없다. 대신 몇 군데의 넓은 공터를 임시 주차장으로 만들고 차들이 질서 있게 드나들도록 갈래길 굽이길 마다 교통경찰들이 신호를 주고 있다.


지금도 5일장이 서는, 그 옛날 봉평장이 서던 장터 골목과 그 언저리엔 이런저런 가게들과 음식점들이 있지만 가장 많은 음식점은 메밀 막국수와 메밀로 만든 먹거리(메밀부침, 메밀 전병, 빵)들이다.


문화제가 시작되는 날부터 남안동 다리 이쪽저쪽은 온종일 들썩거린다.

지붕이 뾰족하게 솟아있는 몽골 텐트들이 즐비한 곳,

대형 스피커에서는 빠른 음악과 함께 노랫소리와 길가나 다리 난간마다에 걸려 펄럭이는 현수막들이 축제장을 찾는 이들을 먼저 맞이하고 있다.

장터로 들어가는 오른쪽엔 이런 날을 위해 마련된 무대가 있는데 대형 스피커를 통해 날마다 다른 공연이 펼쳐지고 있음을 알리고, 왼쪽 천막에는 이름난 각설이 공연단들이 사람들 발길을 붙잡고 있다.

마을 토박이 사람들 가운데는 각설이 공연을 좋아하는 이들이 제법 있고, 봄엔 산마늘잎 따고 감자를 심으며, 여름엔 고추를 따면서 번 돈을 노래하며 만담을 늘어놓는 각설이들 허리춤에 기꺼이 끼워주려 준비하고 기다리는 노인들도 있으니 문화제는 동네에서도 큰 잔치가 맞다.


다리 건너편 풍경은 또 어떤가,

메밀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일명 포토존이 있지만 버스킹 무대가 있기도 하여 또한 왁자하다.

작은 천막이 내리쬐는 햇살을 겨우 가려주는 길바닥 무대지만 노래하는 이와 구경하는 이들은 하나가 되어 한낮의 뜨거운 볕도 아랑곳없이 음악에 맞춰 흥을 푸느라 보도블록 위로 발을 비비며 온몸을 자유롭게 흔들고 있는 풍경도 이때만 볼 수 있다.

북플리마켓

반면, 문화제 때만 설치된 같은 몽골 텐트지만 아주 조용하여 다른 동네인 것만 같은 곳도 있다. 당나귀 전망대, 꿈꾸는 달 카페 쪽이다.

내가 알기로는 스무 해 넘게 문화제를 치르는 동안 이런 노점(부스)은 처음이다.


처음부터 기획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저 '공예품 파는 노점 옆에서 헌 책들 좀 놓고 그 옆에 시인의 책도 놓고 팔아 볼 생각 없냐'라고 지역에서 시를 짓는 시인에게 제의가 들어온 것을, 시인이 혼자 그렇게 하는 건 아니다 싶어 지인 가운데 평창서 살면서 글을 짓는 작가들에게 연락하여 함께 노점을 해보자 제안을 했고, 연락을 받은 작가들 몇이 모여 책은 '안 팔리더라도 평창에 이런 작가들이 있다는 걸 알리기라도 하자'라마음으로 나선 것이다.


축제장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는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즐기자는 쪽도 있지만 그 지역의 특별한 풍경이나 문화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기에 왁자한 곳을 살짝 벗어난 언덕 위 효석문학관으로 간다. 그곳에서 이효석 작가가 언제 태어났고 언제 글을 썼으며 어떤 삶을 살다 갔는지를 대략 살펴본 뒤 한적한 메밀밭을 지나 이효석이 살았다던 생가터도 보러 간다.


몇 년 전, 이효석 생가터가 있는 쪽도 엄청난 돈을 들여 달빛 언덕, 꿈꾸는 달, 연인의 달. 당나귀 전망대와 같은 시설물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두루두루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고 하는데...,



바람

아쉬운 점이 보였다. 그동안은 축제든 문화제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기에 어떤 프로그램 어떤 일정이 있는지를 눈여겨보질 않았다. 그저 전국 축제장을 도는 노점들이 많이 생기겠구나 정도였다.


문화제던 메밀꽃 축제던 이효석은 소설을 쓰는 작가였고, 다른 많은 글 가운데 봉평장을 무대로 한 소설이 크게 알려진 소설이었기에 오늘날 평창군과 봉평 주민(?)들을 이롭게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평창에서 태어나 살면서 또는 하많은 곳 가운데 평창이 좋아 평창에서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에게는 별다른 이로움이 없었다는 것.

하다못해 축제기간 동안 작가를 초빙하여 특별강연을 는 자리 또는 작가와의 만남을 갖는 자리에도 평창의 작가들에게는 기회가 없었다는 것.

'북마켓'이라는 이름으로 노점에 나가 보면서 알게 되었다.


헌 책이 아니라 평창에 살면서 써낸 책들을 가판대에 올려놓고 책을 진짜 좋아하는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한 시인의 우연한 제안으로 시인 둘, 소설가 둘, 에세이 둘 모두 여섯 명이 문화제 시작 스무날 전에야 겨우 소식을 듣고, 딱 한 번 만나 의논한 뒤 얼마씩 갹출하여 리플릿을 만들고 책 거치대를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해본 적이 없기에 작은 서점 '선인장' 주인장 도움을 받으면서.


2023년 북마켓, 작가도 독자도 모두 만족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문화제는 오늘까지 일주일 남았다.

평창에는 많은 작가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작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좋은 자리가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효석문화제 홈 페이지

https://www.hyose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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