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쌤의 방구석토크 Feb 23. 2023

일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영국 작가 ‘앤서니 브러운’의 <한나와 고릴라> 동화에는 일중독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린 딸 한나와 함께 사는 아빠는 무척 바쁜 직장인이다. 아빠와 함께 동물원에 놀러가 고릴라를 실컷 보고 싶은 한나가 아빠에게 조른다.

  “아빠, 동물원에 가고 싶어.”

  “동물원? 아빠 지금 바쁘니까 내일 이야기하자.”

  다음날 아침, 한나가 일어나니 아빠는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 아빠가 퇴근한 저녁, 아빠에게 말을 걸려고 하니 아빠는 집에서도 계속 일만 했다. 그 다음날에도 아빠는 정신없이 바빴다.

  “아빠, 동물원...”

  “지금은 안 돼. 하지만 이번 주말은 어때?”

  한나는 주말만 기다렸다. 드디어 주말이 왔으나 아빠는 너무 지쳐서 푹 쉬고 싶었다. 한나는 또다시 우울한 주말을 보내야만 했다.


  동화 속의 이야기지만 현실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일 때문에 가족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선생님을 볼 수 있습니다. ‘체육대회가 끝나면’ 혹은 ‘공개수업 끝나면’이라는 말로 가족과 보내야 될 시간을 하루 이틀 미룹니다. 그러다보면 선생님도 동화 속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흔히 “열심히 일하자”라는 말을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왜’ 라는 질문을 생략한 채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선로 위를 탈선한 채 달리는 열차와도 같습니다. 일중독에 빠진 사람들이 대부분 ‘얼마나 많이 이루는지’ 그리고 ‘얼마나 빨리 이루는지’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무엇을’, ‘왜’ 일을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삶은 결국 황폐해지고 파괴될 것입니다. 
 

  일중독이란 ‘생활의 양식이어야 할 직업에 사생활을 많이 희생해 일만 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일중독자는 자신의 가치를 일이나 성과를 통해 찾으려 하고 삶의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일중독자는 ‘마스킹효과’처럼 일에 대한 욕구로 인해 건강을 잃거나 주변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심지어 일중독자는 일하는 것 자체가 나를 치료해주는 보약과 같은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신경정신과 의사인 ‘페터 베르거’에 따르면 일중독자와 열심히 일하는 건강한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미루어버릴 수 있는가 여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일중독자를 3단계로 나눕니다. 1기는 집에 와서도 괜히 불안하여 계속 일하는 사람, 2기는 일중독이라 자각하지만 일은 멈추지 않고 잠을 자거나 쉬여야 될 때 취미활동 등을 보상심리로 매달리며 자신의 건강을 외면하는 사람, 3기는 어떤 일이든 환영하며 주말과 밤에도 일하고 건강이 무너질 때까지 일에 매달리는 사람입니다.  


  일중독의 큰 부작용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일중독에 걸린 사람은 대부분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술로 풀려 합니다. 결국, 야근, 스트레스, 술, 수면 부족과 건강 악화 그리고 새로운 일이 시작되어 다시 야근을 하는 부정적인 사이클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결국 나와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신의 건강을 돌아보지 않고 일에만 매달린다면 분명 후회할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 일중독을 벗어나지 못하는 선생님을 위해 사마천 「사기」의 <범저‧채택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진나라 명재상 범저

  범저范且는 원교근공遠交近攻 외교 정책으로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공으로 범저는 진나라 재상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 후 자신이 추천한 사람이 진나라를 배신하면서 범저는 큰 위기에 빠집니다. 그 당시 진나라 법에는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그를 추천한 사람도 함께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왕의 신임을 받고 있는 범저는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왕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반복되자 범저는 불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범저는 위나라 출신이었고, 갑작스러운 그의 출세를 시기하는 관리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리들은 그를 쫓아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채택菜澤이라는 사람이 범저에게 찾아와 그의 태도를 비판하며 재상의 자리에 물어날 것을 권하게 됩니다.

 

  제가 듣건대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얼굴을 볼 수 있고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길흉을 알 수 있다.'라고 합니다또 옛 글에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왜 당신은 아직까지 그 자리에 머물고 있습니까당신은 이 기회에 재상의 인수를 어진 사람에게 물려주고 벼슬에서 물러나 세상의 경치를 구경하며 살게 되면 더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차마 떠나지 못하고 의심하면서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반드시 저 세 사람과 같은 화를 입을 것입니다.

  역에 '높이 올라간 용에게는 뉘우칠 날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이것은 오르기만 하고 내려갈 줄 모르며펴기만 하고 굽힐 줄 모르고가기만 하고 돌아올 줄 모르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당신은 이 점을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범저가 채택의 말을 듣고 답했다.

  "좋은 말씀이오내가 듣건대 '욕심이 그칠 줄 모르면 하고자 하는 바를 잃고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할 줄 모르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잃는다.'라고 하였고선생께서 다행히 나에게 가르쳐 주셨으니 나는 삼가 명을 따르겠소."

  범저는 채택을 맞아들여 빈객으로 모셨다그리고 며칠 뒤 대궐에 들어가 진나라 소왕에게 말했다.

  "산동에서 채택이라는 빈객이 저를 찾아왔습니다그는 변론에 뛰어나며 옛 왕들의 공적을 잘 알고 세속의 변화에 밝아 진나라의 정치를 맡기기에 충분합니다신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채택같이 뛰어난 사람은 없었습니다신의 능력도 그에 미치지 못하여 전하게 말씀드립니다."

  진나라 소왕은 채택을 불러서 이야기를 주고받은 다음 매우 기뻐하였다그 뒤 범저는 병을 핑계로 재상의 인수를 내놓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소왕은 억지로라도 범저를 그 자리에 머물게 하려 하였으나 범저는 병이 깊다고 하면서 끝내 재상 자리에서 물러났다소왕은 채택을 진나라 재상으로 삼고 그의 계획에 따라 진나라의 영토를 넓혔다.

                                                                                                                   -범저·채택 열전-     


  범저‧채택 열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욕심이 그칠 줄 모르면 하는 바를 잃고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할 줄 모르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잃는다고 했습니다.’ 일중독에 걸린 선생님이 명심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만약 지금 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무리하게 계속 일에만 매진한다면 건강도 잃고 사람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얼굴을 볼 수 있고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길흉을 알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주변에서 일과 여가를 균형 있게 보내는 선생님과 일에만 몰두하며 일중독에 걸린 선생님 중 어떤 선생님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꼭 거울로 삼길 바랍니다. 동료 선생님에게 “선생님은 너무 바쁘게 사는 것 같아요.”라는 말보다 “선생님은 참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더 많은 들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 자신의 상태를 분명히 파악해야합니다.

  인간의 신체는 일중독에 빠지기 전에 몇 가지 신호를 보냅니다. 여러 신호 중 피로와 스트레스가 대표적입니다. 또 체중이 정상 상태보다 30% 이상 늘거나 당뇨, 고혈압 증상이 오면 적신호라고 봐야 합니다. 이때 술이나 담배, 커피 등을 통해 그 느낌을 회피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몸 상태를 솔직하게 느껴야 합니다.


  둘째, 선생님 주변에서 일중독에 걸린 선생님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승진 혹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내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여 얻었지만 이후에도 바쁜 삶은 계속 반복됩니다. ‘승진하면 가정에 충실하고 아내와 자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다.’라고 다짐하지만 승진한 이후에는 아내와 자녀들과 관계가 멀어져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소외감과 스트레스로 일에 더 몰두하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 합니다. 결국 바쁜 삶은 계속 반복됩니다. 과연 그 선생님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나요?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지나치게 일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하루하루가 바쁜 선생님들은 막연하게나마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행복해지겠지”라는 생각으로 학교에서 정신없는 하루를 보냅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향이 어딘지도 모르고 달려갑니다. 그리고 주변에서는 “내일 행복해지려면 오늘 고생을 달갑게 받아들여라.”라는 말로 끊임없이 일을 강요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한나와 고릴라’ 이야기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던집니다. ‘오늘 행복은 오늘 찾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일중독에 걸린 선생님에게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

이전 03화 젊은 사람에게 일을 몰아주는 것 같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