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억하시나요? 안정환 선수의 골든골, 박지성 선수의 세리머니, 뜨거웠던 거리 응원까지…. 지금 눈을 감아도 당시의 전율이 느껴집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을 4강으로 이끌었던 히딩크 감독의 한마디가 떠오릅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의 근본적인 문제를 '체력'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다들 의아해했습니다. "기술은 몰라도 정신력과 체력 하나는 자신 있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지?"라며 반신반의했죠. 평가전에서 큰 점수 차로 패하며 '오대영'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까지 얻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계획대로 체력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결국 그 '체력'이 밑바탕이 되어 대한민국은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썼습니다.
벌써 2월입니다. 새해 계획은 잘 지키고 계신가요? 계획이 무너질 때면 우리는 흔히 "의지가 약해서", "정신력이 부족해서"라며 스스로를 자책하곤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F. Baumeister) 교수는 정신력을 '에너지'의 관점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즉, 정신력과 체력을 별개의 주머니가 아닌 하나의 공통된 에너지원으로 본 것입니다. 체력이 바닥나면 정신력도 함께 고갈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하면 체력 또한 남아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이를 ‘자아 고갈(ego depletion)’ 불렀습니다.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1. 참가자를 모집하여 악력계 실험을 하고 참가자별로 결과를 기록한다.
2. 무작위로 3개의 그룹으로 나눈다. 이후 슬픈 영화를 보여준다.
3. 슬픈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 A그룹은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B그룹은 마음대로 하게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 다만, C그룹은 감정을 절대 표현하지 말고 최대한 억누르라고 한다.
4. 영화가 끝난 후 다시 악력계 실험을 해서 처음 결과와 비교한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감정을 표현한 그룹들과 달리, 감정을 억누르느라 애쓴 C그룹의 악력 유지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앉아 있었으니 신체적 체력은 회복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통제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붓느라 근육을 버틸 '의지력 에너지'까지 다 써버린 것입니다.
아침에 가족과 다툰 날 유독 업무가 힘들거나, 사무실에 앉아서 일만 했는데 집에 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체력과 정신력은 한 몸입니다. 한쪽이 소모되면 다른 한쪽을 끌어 쓸 힘이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히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에너지'를 관리하려 노력합니다.
저는 신체적인 에너지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에너지를 관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최대한 좋은 사람과 만나려 하고 불편한 자리는 피하려고 노력하죠. 만약 불편한 자리에 있었다면 이후 무리하게 체력을 소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내 에너지를 아끼는 거죠. 그것만으로 하루하루 원하는 삶을 사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불편한 사람을 만나서 무엇인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 그전에 체력을 아끼려 합니다. 푹 자고 푹 쉬면서 준비하는 거죠.
히딩크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한국팬들은 선수들의 정신력을 중시하고 선수들에게도 강하게 주문한다, 물론 정신력(멘탈)은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팬들은 정신력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힘들어도 이 악물고 뛰는걸 정신력이라고 착각하곤 하는데, 그건 체력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정신력은 강팀을 만나서도 주눅 들지 않고 제기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게임에서 한 번에 와르르 무너져선 안된다. 그런데 내가 보는 한국대표팀은 이러한 정신력이 부족하다, 5대0 참사가 자꾸 생기는 것도 주눅 들고 와르르 무너져서 벌어지는 일이다>
정신력도 결국 든든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새해 계획이 흔들리고 있다면,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전에 지금 나의 에너지를 점검해 보세요. 체력과 정신력이 함께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다시 시작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