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자
"다음 소식입니다."
실내 포장마차 안은 기름진 음식 냄새와 뿌연 연기가 뒤섞여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두 사람은 드럼통을 개조한 불판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었고, 구운 지 시간이 꽤 지나 미라처럼 말라버린 고기 서너 점만 불판 가장자리에 남아 있었다. 포장마차의 영업 마감 시간이 다 되어가는 늦은 밤이라 두 사람 외에 서너 명의 취객만 남아 주변은 비교적 조용했다. 벽 구석에 매달린 낡은 TV는 얼마나 오래됐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만큼, 기름때가 꾸덕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화면 속 영상은 마치 안개 낀 유리창 너머처럼 흐릿하게만 보였다. 승호와 도형은 각자의 술잔을 앞에 두고 멍하니 tv에서 나오는 자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앵커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듯이 그날 있었던 정치 뉴스와 사건 사고를 건조하게 전달했다.
"검찰은 오늘 오전 A그룹 장남 최수철 상무의 음주 사망사고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습니다. 최 씨는 구속된 지 이틀 만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화면 속의 최수철은 고급스러운 양복 차림으로 구치소 정문 앞에 서 있었다. 그 옆에는 최수철 보다는 작은 키의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자가 피곤한 얼굴로 최수철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동시에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의 정수리에는 하얀 플래시 조명이 번개처럼 내리 꽂혔다. 허리를 펴고 흰머리의 중년 남자는 가슴속에서 접혀 있는 하얀색 종이를 꺼내 펼쳤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반드시 준수해야 할 법을 지키지 못해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국민께 심려를 일으킨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조용히 자숙하며 국가의 발전과 주주분들의 이익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더욱 발전하는 A그룹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흰머리의 중년은 말을 마치고 다시 종이를 접어 양복 안쪽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조금 전 구치소에서 걸어 나온최수철은 지루하다는 듯 머리를 숙여 바닥을 바라보며 아스팔트에 구두 바닥을 이리저리 문질렀다. 두 사람 앞에 수 없이 많은 마이크가 다가오며 어수선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동시에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뭐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는지 최수철은 찌푸린 얼굴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자들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두 사람은 아무런 말 없이 인간 차단막을 갈랐다. 무리를 뚫고 나와 머지않은 곳에 미리 와 있던 검은색 세단에 올라탔다. 세단은 미끄러지듯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오전 경기도 야산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앵커의 모습이 산속 낙엽이 쌓인 곳을 돌아다니는 경찰들 모습으로 바뀌었다.
승호는 장면이 바뀌자 tv를 바라보던 뻘게진 눈길을 다시 불판으로 향했다.
"허. 죽은 사람만 괜히 불쌍하지. 최소한 피해자에게는 사과 한마디라도 해야 하지 않냐?"
앞에 놓인 소주잔을 마시고 말을 이었다.
"도형아... 푸우... 너네 경찰들은 저런 사람을 어떻게 처리를 했길래... 매번 돈 많은 사람은 맨날 풀려나고... 불쌍하고 없는 사람들만 잡아넣냐?"
도형도 남아 있던 소주잔을 들이켜고 거칠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시큼한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가 맨날 잡아 처넣으면 뭐 하냐. 뒤에서 찍어 누르는걸. 이번에 저 새끼 구속영장 청구하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검찰 이 새끼들은 맨날 뭔 소명이 부족하고 하면서 빠구 놓기 일쑤고... 우리라고 별수 있냐? 이놈의 조직이 이렇게 생겨먹은 걸..."
"그러니까... 확실하게 조사를 해서 잡았어야지... 푸우..."
승호가 도형의 빈 잔에 소주를 채우고 자신의 잔에도 술을 부었다.
"이번에 사고로 죽은 그 사람 배달기사이라며? 결혼한 지 보름도 안된 새신랑이고..."
도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에휴... 그러게나 말이다. 생각만 하면 속이 뒤집어진다. 뒤집어져."
그리고는 한동안 말없이 술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승호는 원래 술이 약했다. 가끔 승호와 도형은 만나 술을 마셨지만 매번 승호가 먼저 술에 취했다. 이날도 승호의 혀가 먼저 꼬이기 시작했다.
"아우... 저런 것 때문에 내가 술을 안 마실 수가 없어... "
"누가 보면 네가 술 잘 마시는 사람인 줄 알겠다."
"끄윽... 도형아... 근데 넌 괜찮냐? 너 취한 건 한 번도 못 본 거 같아... 푸..."
"운동하는 사람하고는 술 대결 하지 말라는 말 못 들어봤냐? 우리는 체력 약하면 나쁜 놈들 못 잡아. 도망가는 놈들 잡으려면 우리도 빨리 뛰어다녀야 하는데... 내가 너 같은 체력이면 나쁜 놈들은 어떻게 잡아?"
"크크크... 그렇긴 그래."
" 그리고 너 그 목에 감긴 넥타이도 좀 풀고 그래. 안 답답하냐?"
반듯하게 가르마가 자리 잡고 있던 승호의 머리는 어느새 엉망이 되어 있었고, 넥타이 매듭도 한쪽으로 치우쳐있었다.
"승호야. 너 쟤 알지? 고등학교 때 너 전학 가기 전에 우리 같은 반이었잖아."
"뭐?... 끄윽... 쟤? 쟤가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이야?... 난 모르겠는데?"
승호는 거의 술상에 엎드릴 듯이 기대어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반쯤 눈을 반쯤 감은 채 도형을 바라봤다.
조금 전 뉴스에 나온 A그룹 최수철 상무와 승호, 도형은 승호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기 전까지 공교롭게도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다. 수철은 재벌집 아들이고 여기저기 발이 넓은 집안이라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망나니짓을 하고 살았어도 아무도 막지 못했다. 승호는 이번 경우에도 예전처럼 돈을 쓰거나 인맥으로 일이 해결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너 진짜 생각 안 나? 너 쟤 때문에 강제로 전학 갔..."
도형 승호에게 하던 말을 중간에 멈췄다.
승호는 고등학교 시절, 모든 면에서 뛰어난 모범생이었다. 잘생긴 외모에 운동까지 출중했고, 공부에서도 늘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탓에, 수철처럼 소위 잘 나가는 부잣집 아이들로부터 끊임없이 질투가 담긴 괴롭힘을 당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웬만하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참아냈지만, 그런 승호의 성격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더 쉬운 먹잇감으로 보였다.
주변 친구들도 옳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자신들에게 피해가 돌아올까 두려워 모른 척했다. 그렇게 승호 혼자 참고 견디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괴롭힘은 더욱 집요해졌다. 결국 어느 날, 이성이 끈이 완전히 끊어졌다. 평소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한 승호는 뛰어난 신체적 능력을 이용해 수철과 그 무리들을 거칠게 두들겨 팼다. 주변 학생들은 말리는 척하면서도 오히려 속으로는 통쾌하다는 듯 그 상황을 부추겼다.
누가 보더라도 그 사건의 원인은 수철 일당에게 있었다. 승호는 오랜 괴롭힘에 대한 정당방위나 다름없는 행동을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수철은 피해자로 둔갑했고, 오히려 승호만이 일방적인 학폭 가해자로 몰렸다. 결국 승호는 학교의 징계를 받고 강제로 전학을 가야만 했다. 수철 일당은 오히려 ‘퇴학은 면하게 해 줬다’며 거짓 선심을 베풀었다는 소문까지 퍼뜨렸다.
그 사건으로 받은 충격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승호는 심리적인 후유증으로 인해 당시 사건의 일부를 기억하지 못하는 해리성 기억상실 진단까지 받게 됐다. 본인이 전학을 간 사실은 기억했지만, 왜 그랬는지,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 역시 그 아픈 기억을 다시 꺼내지 않으려 했고, 승호 또한 스스로 기억을 묻어둔 채 과거를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 아니다. 내가 다른 애 하고 착각했다."
"싱겁긴..."
승호가 술을 따르며 말했다.
"... 야... 도형아... 저 사람들 어떻게 안 되냐? 푸우... 어떻게 된 게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였는데... 가해자가 저렇게 멀쩡히 집에 갈 수 있는 거냐? 아마 지금쯤은 두 다리 쭉 펴고 자겠지? 이게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냐?... 푸우... 기껏 결혼한 지 한 달밖에 안된 사람이 죽었는데... 그 가족들은 아니... 그 사람 부인은 뭔 죄냐고... 이제 어떻게 살라고..."
승호는 자기 일인 듯이 흥분하며 앞에 놓인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승호의 아버지는 작은 카센터를 운영하다가 승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무렵 세상을 떠났다. 작업장에서 차량을 들어 올리는 리프트가 갑자기 바닥으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은 리프트의 고질적인 결함 때문에 벌어진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지만, 제조사 측은 끝까지 작업자의 조작 실수라고 주장했다. 지루하게 이어진 법적 공방은 결국 제조사의 책임이 아니라는 판결로 끝이 났고, 가족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억울함을 가슴 깊이 묻어야 했다.
승호의 어머니 역시 몇 년 전 늦은 밤, 식당 일을 마치고 귀가하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운전자는 국내 유명 로펌을 통해 형량을 크게 감경받았는데, 그들이 제시한 이유 중 하나가 승호의 어머니가 어두운 밤길에 무단횡단을 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사건 당시의 블랙박스 영상이나 이를 증명할 만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현장에는 횡단보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길게 이어진 핏자국만 남아 있었고, 어머니의 시신은 누군가가 일부러 눕혀 놓기라도 한 것처럼 반듯한 자세로 놓여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승호는 특히 법을 교묘히 이용해 책임을 피하거나 죄를 줄이는 사람들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법이 약자를 보호하기보다는 강자들의 무기로 쓰이는 현실에 늘 분노와 씁쓸함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날도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목에 핏줄이 선명히 드러날 정도로 얼굴이 붉어지며 평소보다 훨씬 더 큰 목소리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끄윽... 누가 저 사람 어떻게 좀 못 할까? 경찰이 법으로 못하면 누구라도 뭔가 좀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냥 그 자리에서 머리통을 깨 버리던가. 그냥 두면 분명 저 사람 또 사고 칠 텐데..."
승호는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노골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말을 했다.
"와... 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완전 샌님인 줄 알았더니."
도형이 웃으며 말했다.
"진정해라. 진정해. 이게 그래도 명색이 내가 경찰인데 내 앞에서 사람 죽인다는 말을 하냐? 네 마음 이해는 한다만 어디까지나 법으로 해야지, 그걸 맘에 안 든다고 그렇게 하면 되겠어?"
도형이는 주머니 속에 있는 공무원증을 승호 눈앞으로 내밀었다.
"법이... 그 알량한 법이 안 하잖아... 그러니까 저 사람이 오늘 저렇게 집에 간 거고... 있는... 꺼억.... 놈들은... 죄다 무시하고... 푸우..."
"자... 자... 그만 열 내고... 그나저나 괜찮겠냐?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냐?"
"야야... 괜찮아... 나 안 취했어... 푸우... 한잔 더해..."
"한잔은 무슨... 얼마 먹지도 못하는 술을... 그리고 나 내일 근무야. 인제 그만 가자."
도형은 먼저 일어나 계산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승호는 엎드려 자고 있었다. 도형은 가만히 앉아 승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도형은 옷을 챙기고 승호를 부축해 포장마차를 나섰다. 바로 옆 가로등이 몇 번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다 이내 완전히 꺼졌다. 도형은 승호를 부축해 승호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에 눕혔다.
"야 푹 자고 다음부턴 좀 적당히 마셔라."
"으... 고... 고마워 도형아. 내가 오늘 좀 지나쳤지? 말이 좀 심했어."
"쓸데없는 소리 한다. 됐어... 됐어... 근데 그렇게 말하고 나니 속 시원하냐?"
"..."
승호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도형은 승호의 집을 나서며 뒤돌아 승호의 집 현관을 바라보았다. 도형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평생 처음 써 본 글입니다. 많이 어설프고 형식에도 맞지 않은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장소 및 사건은 완전히 허구이며, 실존 인물, 생존자 또는 사망한 인물, 사건, 기관, 단체 및 기업과의 유사성은 전적으로 우연의 일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