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공모자 02화

2. 음주사망사고

공모자

by Bookish

늦은 밤, 땅을 울리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건물 밖으로 흘러나왔다. 서울 강남 유명 클럽 ‘엘루아’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붐비고 있었다. 수많은 젊은 남녀가 엘루아에 들어가기 위해 입구부터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화려한 조명이 번쩍이는 클럽 앞 vip 전용 출입구 쪽으로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조용히 다가와 멈춰 섰다. 잠시 후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가 종종걸음으로 차 뒤쪽으로 돌아가 두 손으로 뒷좌석 문을 열고 허리를 구부렸다. 차 안에서는 남색 더블 버튼 슈트를 입은 남자가 꼬고 있던 다리를 천천히 풀며 여유롭게 차에서 내렸다. 그는 허리를 펴지 않고 있는 남자 어깨를 두드리며 턱을 내밀었다. 턱은 며칠은 면도를 하지 않은 듯한 거친 수염이 덮고 있었고, 초점 없이 멍한 눈은 한쪽이 심하게 충혈되어 있었다.


출입구 앞을 막고 있던 덩치 큰 가드는 남자와 눈을 맞춘 뒤 가볍게 그에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 vip 전용 출입구 문을 열어주었다. 남자는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그의 발 밑에 던지고 익숙한 발걸음으로 클럽 안쪽으로 사라졌다.


"퉷!"


가드는 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주우며 침을 뱉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쿵쾅거리는 음악이 어두운 클럽 벽과 바닥을 따라 흘렀다. 그 강렬한 비트에 맞춰 흰색과 노란색, 빨간색과 파란색 조명이 현란하게 공간을 가르며 끊임없이 움직였다. 클럽 한쪽 중앙에 자리 잡은 화려한 황금빛 계단 위로는 젊은 남녀들이 술과 음악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엉켜있었다.


그때, vip 전용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짧은 벨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남자가 천천히 내리자 미리 문 앞에서 있던 직원이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깊이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직원은 곧바로 방향을 틀어 남자를 앞섰나. 복도 안쪽으로 거의 뛰다시피 발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천천히 직원이 뛰어간 방향으로 걸어가며,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는 여자들 몸짓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직원은 복도 가장 안쪽, 어둡고 구석진 곳과는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가 다가오자 직원은 무거운 문을 힘겹게 당겨 열고 조금 전에 그랬듯이 허리를 다시 구부렸다.


남자는 이번에도 지갑에서 파란색 지폐 몇 장을 꺼내 바닥에 내던지듯 직원 발밑에 뿌렸다. 직원이 고개를 더욱 낮추며 떨어진 지폐를 주워드는 사이 남자는 룸 안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최수철이었다.


그곳은 일반 클럽 이용자들은 접근할 수 조차 없는 vip 전용 공간이었다. 엘루아 vip 공간은 비록 클럽 안에 있지만 클럽과는 별개로 운영되었고 단순히 돈만 많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재력과 권력, 명성 모두를 가지고 있어야 출입이 가능했다. 게다가 기존 멤버 중 한 사람이 초청을 해야 하고 멤버 모두가 동의해야만 참여할 수 있는 그들만의 프라이빗 공간이었다.


직원은 수철이 들어간 후 문을 굳게 닫았다. 이미 그 안에는 남자 몇 명과 그보다 두 배정도 많은 여자들이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었고, 룸 가운데 놓인 투명한 크리스털 테이블 위에는 희귀한 양주와 과일, 빈 술잔들이 흩어져 있었다. 테이블 가운데에는 루이 13세 양주가 핀 조명 아래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수철아! 왔냐! 좀 늦었네?"


남자의 흐린 목소리는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묻혀 멀리 가지 못했다.


"어... 미안 좀 늦었어. 죄다 똥차를 끌고 나와서 오는 길이 많이 막혔어. 버러지들."


수철은 슈트 상의를 벗으며 말했다.


"크크크. 야. 신경 쓰지 말고... 늦었으니까 빨리 한잔 해!"


이미 술에 꽤 취해 보이는 남자는 수철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이거 꽤 괜찮아."


남자는 방금 따라준 술이 국내에서 극소수만 구할 수 있는 한정판 최고급 코냑이라고 으스대며 말했다. 수철은 남자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무심한 표정으로 한 모금 들이켠 뒤, 옆에 앉은 여자의 허리를 끌어당겨 감싸 안았다. 그의 입술이 여자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지만, 내부를 가득 메운 음악 소리에 묻혀 다른 사람들은 들을 수가 없었다.

여자는 살짝 입꼬리를 울리며 핸드백에서 지퍼백을 꺼내 최수철에게 내밀었다. 작고 투명한 지퍼백 안에는 하얗고 고운 가루가 반쯤 차 있었다. 수철은 그 물건을 잠시 바라본 후 미소를 지으며 건네받았다.


여자가 다시 수철 볼에 입을 맞추고 귀속말을 하자 수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 엉덩이를 두드렸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지퍼백을 받아 들었다.

지갑에서 지폐를 한 장 꺼내 지퍼백 안에 있던 가루를 조금 덜어냈다. 덜어낸 가루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지폐를 돌돌 말아 한쪽 코를 막고 다른 코에 가져갔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하게 수철은 테이블 위에 모아 둔 가루를 지폐를 통해 코로 들이마셨다.


수철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내 굳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더니, 미간에 깊게 파여 있던 주름도 사라지고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주변 모든 사물들이 울렁이듯 천천히 흔들렸고, 초점이 흐려지며 눈앞 세상이 흐릿하게 번졌다. 룸 안에서 울리던 화려한 음악 소리와 사람들 웃음소리는 점점 둔탁해지고 점점 멀어졌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소파 속으로 깊숙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마치 달콤한 꿈에서 막 깨어난 듯 개운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이내 눈앞에 놓인 루이 13세 병을 손에 들고 거침없이 들이켰다.


테이블 위에 놓였던 값비싼 다른 술병들마저 하나둘 비워져 투명한 빈 병들이 바닥에 어지럽게 나뒹굴 무렵, 수철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야. 나 간다."


수철은 옷을 입으며 말했다.


"벌써? 왜? 좀 더 있다가 가지. 애들한테 기사 부르라고 할까?"

"됐어. 그냥 갈 거야. 그리고 기분이 좀 그래서 내 기사는 먼저 보냈어. 바람 좀 쐬고 갈 거야."

"내 차 타고 갈래? 내 기사는 대기 중인데?"

"나 혼자 갈 거야. 넌 그냥 여기서 술이나 처먹어. 쟤를 먹던지..."


수철은 남자 옆에 있던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평소 수철은 어디를 가든 전용 기사가 운전하는 차 뒷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이동했다. 하지만 그날 밤, 클럽 엘루아에 도착하자마자 수철은 기사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는 들어올 때 이용했던 전용 출입구를 통해 바깥으로 빠져나와 곧장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평상시에는 vip가 클럽에서 나가려는 낌새만 보여도 직원들이 기사에게 연락을 취해 미리 차량을 입구 앞에 대기시키곤 했다. 그러나 수철은 이날만큼은 아무에게도 그런 지시를 하지 않았다. 그는 발걸음조차 제대로 내딛기 어려울 정도로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걷다가, 결국 벤틀리 운전석 문을 열고 힘겹게 몸을 밀어 넣었다.


시동을 걸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차는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평소와는 다르게 요란하고 날카로운 타이어 마찰음을 내며 위태롭게 미끄러졌다.


큰길로 빠져나온 벤틀리는 늦은 밤 정적을 깨듯 울부짖는 엔진 소리를 내며 서쪽으로 내달렸다. 십여 분 정도 후 차는 화려한 강남 도심을 벗어나 왕복 2차선 도로에 접어들었다. 늦은 시각이라 거리는 고요했다.


차가 사거리에 가까워질 때쯤, 교차로에 위태롭게 매달린 신호등 색이 주황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멈추기는커녕, 그는 그대로 속력을 높이며 신호를 무시하고 교차로에 들어섰다. 바로 그때, 오른쪽에서 주행 신호를 받고 출발하던 오토바이가 갑자기 그의 시야에 가득 찼다.


“끼이익... 쾅!”


강렬한 충격음과 깨지는 듯한 파편음이 이어졌다. 그는 그 충격을 느끼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늦었다. 벤틀리는 오토바이 측면을 그대로 들이받고, 중앙선에 설치된 무단횡단 방지용 가드레일 몇 개를 밀어내며 가까스로 멈춰 섰다.


허공을 길게 가로질러 날아간 운전자는 도로 옆 보도블록 위로 떨어진 후 머리를 경계석에 강하게 부딪혔다. 그 충격에 헬멧은 몇 미터나 더 굴러가 멈췄다.


충격으로 오토바이는 벤틀리 앞바퀴 아래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다. 차량 앞부분은 움푹 찌그러졌고 깨진 부위에서 초록색 액체가 핏자국처럼 천천히 도로 위로 흘러내렸다.

보도블록 위에 쓰러진 운전자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고요한 도로 위엔 모든 시간이 멈춘 듯했다. 흘러나온 피가 화단에 스며들고 있었고, 검은 아스팔트는 벤틀리에서 떨어지는 기름으로 더욱 시꺼메졌다.


나중에 뉴스에서는 오토바이 운전자가 결혼한 지 채 보름도 지나지 않은 29세 젊은 남성이라고 보도했다. 그는 콜센터로부터 폐기처분 지시를 받은 음식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길에 서 있던 행인들은 오토바이 운전자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사고소리와 비명소리를 듣고 주변 매장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사고 현장을 에워싸고 사진을 찍었다. 수철은 초점없는 눈빛으로 하얗게 번쩍거리고 있는 휴대전화 카메라 플래시를 즐기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시 후 경찰차 한대가 빨간색과 파란색이 깜빡거리는 경광등 불빛과 함께 도착했고, 바로 뒤이어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경찰이 도착할 때 까지도 수철은 차 밖으로 나오지 않고 운전석에서 박자에 맞춘 듯 계속 가속페달을 밟았다 땠다 반복하고 있었다. 행인 여럿이 억지로 수철을 끌어낼 때까지 바퀴는 저 혼자 돌며 매캐한 연기를 뿜어댔다. 이끌려 나온 그는 길가에 주저앉아 어디론가 전화를 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내 휴대전화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파편이 흩어지며 휴대전화는 배터리를 들어냈다.


구급대원은 숫자를 세며 규칙적으로 오토바이 운전자 가슴을 눌러댔다. 구급차에 운전자를 옮기면서도 그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경찰 두 명이 수철에게 다가가 작은 기계를 내밀었다. 그는 기계를 집어던지고 경찰에게 삿대질을 했다. 세 사람은 몇 번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그는 경찰이 다시 가져온 기계에 입을 대고 볼에 바람을 채웠다. 수철의 볼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밀쳐내자 경찰은 그에게 다시 내밀었다. 경찰 한 사람은 이 일을 반복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한걸음 떨어져 그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도착한 검은 세단에서 두 사람이 내려 수철에게 다가갔다. 한 사람은 그에게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를 전달했고 다른 사람은 경찰 쪽으로 다가갔다.


날이 밝자 사건은 뉴스와 신문 등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A그룹 장남. 음주사고로 배달기사 사망. 약물 의심 정황"이라는 자극적인 타이틀로 전날 사건에 대한 뉴스가 쏟아졌고, 대중은 기사 댓글에 비난을 토해냈다.


초기 검찰은 조사를 느리게 진행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쉽사리 조용해지지 않고 여론이 들끓자 부랴부랴 영장 청구를 하고 구치소에 수철을 수감했다. 이제는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려가리라 기대했지만, 이틀 후 수철은 웃으며 구치소를 나왔다.


그 후 검찰은 충분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불기소로 전환했다.

사고 직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수철에게 음주 측정을 요구했지만, 그는 불안정을 이유로 거부하고 채혈검사를 요구했다. 현장에 도착한 구급차는 근처 가까운 병원 대신, A그룹 자회사가 소유한 병원으로 수철을 이송했고, 도착하자마자 미리 연락받은 병원장은 그를 별도 통제 구역으로 안내했다. 병원 보안요원이 경찰을 잠시 막아선 사이 경찰은 채혈 측정에 입회하지 못했고, 결국 한참이 지난 후에야 별도 검사가 진행되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병원 cctv는 보안상 이유로 꺼져 있었다.


변호인단은 수철이 사고 후 극심한 스트레스와 충격으로 불안증세가 극도로 높아졌고, 이를 위해 병원에서 안정제를 투여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확보된 혈액 검사 결과에 대해 수치가 이미 법적 기준을 밑돌고 있었고, 사고 당시 상태를 입증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사고 당시 영상이나 블랙박스 기록도 확보되지 않았고, 동승자가 없어 자세한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결국 사고 당시 음주 상태였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클럽에서 마신 술은 사고와는 무관한, 사고 당시 운전에 영향을 미쳤다고 입증하기 어려운 점이 받아들여졌다.


오토바이 운전자 장례식장에 A그룹에서 보낸 조화가 서 있었고, 한쪽 구석에서는 검은 양복을 입은 서너 명이 배우자로 보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경찰 내부에서도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 조치에 불만 섞인 목소리가 많이 나왔지만, 누구도 대놓고 항의하지 않았다.



평생 처음 써 본 글입니다. 많이 어설프고 형식에도 맞지 않은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장소 및 사건은 완전히 허구이며, 실존 인물, 생존자 또는 사망한 인물, 사건, 기관, 단체 및 기업과의 유사성은 전적으로 우연의 일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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