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이라는 거, 말로만 들어봤지 진짜 오게 될 줄이야. 무슨 정신으로 57km를 운전해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응급실을 찾는 것이 배를 움켜 쥔 상태로 한 시간 운전해 온 것보다 세 배는 힘들었다. 1동 1층 창구, 1동 2층 창구, 2동 2층 창구를 거쳐 병원 건물과 응급실의 건물은 아예 다른 것이라는 걸 겨우 알게 되었다. 동네 병원에서 챙겨준 의뢰서와 CT영상이 들어있는 CD를 제출하고 응급실 벤치 등받이에 거의 눕다시피 널브러졌다.
오후 1시 반쯤 되어서야 의사가 찾아와 응급실 벤치에 누워있는 나를 깨웠다. 전날 찾아갔던 동네 병원 의사와 마찬가지로 '담낭과 담도에 염증이 심하다. 뱃속에 크기가 큰 종양이 있다'는 말을 되풀이하였다. 담낭에 염증과 통증이 심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시술을 해야 된다는데 지금도 그 시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이동식 침대에 누워 혈관조영실로 실려갔고 정신을 차렸을 땐 다시 응급실 복도에서 이동식 침대에 누운 채로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꺽꺽대고 있었다.
오른쪽 옆구리에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끔찍한 통증과 함께 투명한 주머니가 달린 호스가 꼽혀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더해가는 고통에 '에윽, 에윽' 거리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응급실을 지나다니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경악하며 쳐다보는 눈빛이 느껴졌지만 내 의지로 멈출 수 있는 비명이 아니었다. 진통제 처방을 더 받은 후에 잠잠해진 나는 짐을 챙길 새도 없이 이동식 침대에 누운 채로 입원실로 실려갔다.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말에 엄마 대신 보라를 먼저 떠올린 데엔 걱정 끼치기 싫은 마음, 혼나기 싫은 마음, 분명 금방 퇴원할 거라는 근거 없는 예감이 합쳐졌기 때문이었다. 병원에 와달라는 말에 17년 절친 보라는 기꺼이 선별 진료소에 찾아가 코를 깊숙이 쑤시고 그다음 날부터 내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로비로 마중 나온 내 몰골을 보고 보라는 기겁했다. 오른쪽 옆구리에 이어진 관으로 피와 진물을 받아내고 있는 주머니가 상당히 엽기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뿐, 이내 시답잖은 농담으로 기어코 옆구리를 부여잡게 만들었다.
입원은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았다. 입원은 오른쪽 배를 뒤덮고 있는 커다란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담낭과 담도에 염증이 심했기 때문에 항생제 치료를 받으며 염증을 가라앉혀야 했다. 재수가 없다면 뱃속의 종양이 암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때부터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다음 주 목요일로 수술 계획이 잡히고 나서야 가족에게 입원 사실을 알렸다. 배가 아파 집 근처 병원 응급실에 왔고 어제 큰 병원으로 왔다는 간결한 설명을 한 뒤 엄마에게 두 번째 보호자 요청을 하였다. 2021년 12월 31일 밤, 어제오늘의 일이 언젠가는 그저 하나의 웃긴 에피소드가 되길 바라며 보라와 나는 병실에서 잊을 수 없는 새해를 맞이하였다.
다음 날 아침, 보라 배웅 겸 엄마 마중을 위해 병원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양손은 물론 등에도 큰 백팩을 한 짐 지고 온 엄마는 보라를 보자 서운함과 고마움이 섞인 얼굴로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는 곧바로 옆구리에 피주머니를 찬 나를 보며 발길질하는 시늉을 했다.
거봐 내가 혼날 것 같다 그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