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제 병명이 뭔데요?"
"아, 이게 한국말로는 뭐라고 하지.."
[Leiomayosarcoma]
철자만 알려주고 주치의는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평활근육종]
무늬가 없는 근육에 주로 생기는 악성 종양이라고 한다. (무늬가 없는 근육도 있었어?)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으며 재발률도 높다고 알려져 있다. 평소에 당첨운이 더럽게 없기로 소문난 나인데 애초에 발병률이 30% 남짓하는 암에 당첨된 것도 모자라 그 암환자 중에서도 1% 미만으로 걸린다는 희귀 암에 당첨되었다. 이 정도 확률이면 로또 2등은 쌉 가능이겠다. 차라리 로또 2등을 주시지 희귀 암이라니 기가 막힌다.
병실에서 엄마랑 부둥켜 펑펑 울었다. 아주 잠깐. '무서워서 운다'는 것을 유치원 때 이후 오랜만에 경험해 보았다. 엄마는 내 머리를 끌어안고 "아이고 어떡해" 절규하다가 금세 두 눈을 슥슥 닦고는 "아니야, 정신 차리자." 하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병실을 나갔다. 그 뒤로 엄마가 어딘가에 숨어서 혼자 울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예후가 좋지 않다'는 의사의 말이 '살 가망이 없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아니 실제로 그런 상황에 쓰이기도 한다. 이제 서른 하고도 1~2년 더 살았을 뿐인데 나 벌써 죽는 건가. 내가 큰돈 벌 재주는 없어 부모님께 금전적으로 효도는 못하지만 적어도 엄마 아빠보다 먼저 저세상 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했는데 그 소박한 효도마저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걸까.
"제가 사실 하루에 맥주를 피쳐 두 병씩 먹고 그랬거든요? 매일매일? 그래서 병이 생긴 거죠?"
제발 그렇다고 해주세요.
"딱히 그렇진 않아요."
"그럼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나요?"
"그냥 평소처럼 지내시면 돼요. 좋아하는 음식 드시고 하고 싶은 거 하시고 마음 추스르시고 스트레스를 최대한 받지 않는 게 중요해요."
어차피 방법은 없으니까 평소 좋아하던 것 먹고 가고 싶은 곳 가고 그렇게 살다가 가라는 뜻인가. 그렇게 2022년 1월 14일 나는 암환자가 되었다.
[2주 전] 2021년 어느 연말
점심에 고추 장아찌를 두 번이나 리필해서 먹은 게 화근이었을까. 퇴근 언저리부터 속이 쓰려오기 시작했다.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명치께를 시계방향으로 열심히 문질러도 쓰린 속은 달래질 줄 몰랐다. 퇴근하는 길에 집 앞 약국에서 개비스콘을 사서 먹었다. 보통 이쯤 하면 가라앉을 법도 한데 시간이 갈수록 쓰린 속은 허리를 펼 수도 없는 통증으로 커져갔다. 침대에 한껏 웅크려 끙끙대다가 잠옷 위에 간신히 패딩을 걸치고 나왔다. 오른손으로 명치를 잡고 왼손으로는 운전대를 잡아 겨우 응급실에 도착했다. 원체 숨어있는 혈관에 링거를 연결하는데에는 세 명의 간호사가 거쳐갔다. 진통제를 맞고 이제야 참아지는 고통에 한숨 돌리고 바로 CT를 찍었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응급실 침대에서 쪽잠을 잤던 것 같다. 몇 시간이 지나 데스크에 있던 의사가 부른다. 간이 의자에 앉아 모니터 속 영상을 보았다.
"쓸개라고 하죠. 이게 담낭인데 담낭과 담도에 염증이 심해요. 이것 때문에 통증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
"근데 여기 화면을 보시면 뭔가가 크게 오른쪽 배를 가득 채우고 있어요."
"그게 뭐죠?"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의뢰서를 써드릴 테니 큰 병원 가셔서 자세히 검사를 받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희고 검은, 설명이 없이는 알아볼 수도 없는 복잡한 화면에 의사가 마우스 포인터로 크게 원을 그린다. 오른쪽 배를 뒤덮고 있는 큰 혹에 담낭이 눌려 염증이 생겼다고 한다. 내 배에 언제 저렇게 큰 게 생겼지. 저렇게 큰 것이 생길 동안 왜 몰랐지. 배는 언제부터 아팠던 거지. 머릿속을 스쳐가는 수많은 질문 중 몇 가지를 꺼내어 물어도 대답은 '큰 병원으로 가세요.'였다.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진통제를 맞았다고 해도 통증은 완전히 잡히지 않았고 쓰린 속으로 아침이 오기까지 버텼던 것 같다.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이만저만해서 큰 병원에 지금 가봐야겠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상사에게 보고를 하고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을 검색해서 그대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출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