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받고 싶었다.
나와 같은 30대에, 나와 같은 희귀 암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얻고 싶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들이라도, 가족들조차도 나에겐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고 그들도 위로가 되어줄 수 없음에 답답해했다.
'암 환자 커뮤니티 카페'에 가입을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일단은 내가 암 환자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카페에 가입을 하는 것 자체도 고통스러웠다. 닉네임은 별명/병명/병기 등을 통일해서 만들어야 했다. '랑랑/평활근육종/3기'가 나의 닉네임이 되었다. 커뮤니티라는 가상공간에서조차 나는 3기 암 환자의 아픈 현실을 끌어당겨 와야 했다.
카페 게시글은 거의 보호자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특히 고령 환자의 자녀들이 항암 부작용 및 호스피스 등 정보를 공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결국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힘들어하는 글과 위로하는 댓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치료 과정에 대한 정보 공유글이었기 때문에 나와 같은 병명으로 암을 이겨내고 있는 글을 찾을 거란 목적은 이룰 수 없었다. 내 병은 여러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기엔, 환자의 수도 정보의 양도 많지 않았다. 커뮤니티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그래도 같은 병을 앓는 평활근육종 환자들이 몇몇 있긴 했다. '저도 30대에 평활근육종 걸렸는데 지금 완치 판정받고 잘 지내고 있어요'라는 대체로 이런 희망적인 글이었다. 나도 완치 판정받아서 평범한 40대를 누리고 싶다는 기대와 함께 결국엔 생존율 싸움인 암이라는 병 앞에 '저 사람이 내 생존율 차지했네.'라는 악마 같은 생각도 해본다.
카페 가입부터 게시글까지 뭐 하나 마음 편한 것이 없어 괜히 가입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몰라 탈퇴는 하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들어가 보고 있지는 않다. 가끔 새로운 항암 계획이 세워질 때 부작용 후기에 대해 알아보려고 들어가기는 하는데, 대부분 고령의 환자들이다 보니 너무 극단적인 부작용을 앓고 있어 그것 또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괜히 겁만 먹고 실제로 항암을 해보면 나한테는 그 정도까지 부작용은 오지 않던걸..
커뮤니티는 접어두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글을 쓰는 사람 하나쯤은 있겠지. 너무 작은 시골 도서관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들도 나처럼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꽁꽁 숨어버린 탓일까. 원하는 종류의 책은 찾을 수 없었다.
유명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S대 병원 혈액종양내과의 교수가 쓴 환자 수기를 꺼내 들었다. 수많은 암 환자들을 만나며 인상 깊었던 몇몇 사례를 엮은 책이었다. 환자의 입장이 아닌, 환자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의사의 입장에서 쓴 책이어서 그런지 퍽 와닿진 않았다. 그저 이렇게 감성 촉촉한 의사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잠시 했던 것 같다.
책에는 암을 극복하고 제2의 씩씩한 인생을 사는 환자들의 사례도 많이 들어있었지만 웬일인지 읽으면 읽을수록 우울함은 더해갔다. '나도 열심히 치료받아서 꼭 나아야지'가 아니라 그저 '부럽다'가 전부였다. 내가 병을 극복하고 잘 살아갈 수 있을지는 나의 의지도, 의사의 실력도 아닌 운에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운 좋으면 살고 안 좋으면 마는 거지 뭐.
책을 반납하고 생각했다. 아무도 나를 위로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그들을 위로해 주자. 없는 글재주로 2년 간 나의 경험과 생각, 감정을 담은 글을 술술 써 내려갔다. 애써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진단명이 내려지던 당시의 기분을 떠올리니 다시 무섭고 슬펐다. 그래도 글로 털어내고 나니 실력 좋은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 것처럼 후련했다. 이 글을 읽는,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젊은 암 환자들도 같이 속상함과 후련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냥 생활 수기일 뿐인 이 글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얼마나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글을 쓰면서 나 스스로는 확실히 위로를 받고 있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