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호자로 와 있던 며칠 동안은 언제부터 아팠는지, 정확히 언제 몇 시에 응급실에 갔는지, 큰 병원에 가면 간다고 얘기하지 왜 혼자 운전하고 갔는지, 엄마한테 얘기하지 않고 왜 보라한테 먼저 얘기했는지 등등 추궁에 대한 변명으로 꼬박 지냈다. 그도 그럴 것이 큰 병원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고 몸에 칼이라곤 대본적 없이 건강했던 내가 하루아침에 그것도 대학 병원에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해야 한다니, 가족들은 적잖이 당황한 듯 했다. 게다가 오른쪽 배에 큰 종양이 자리 잡고 있다는 말에 가족들도 나처럼 암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수술을 앞두고는 계속 검사의 연속이었다. 채혈검사는 물론 다른 곳에도 종양이 있는지 알아보는 PET-CT 검사, 심전도 검사, 심폐기능 검사 등 남 얘기 같던 전신마취 수술에 두려워할 겨를 없이 꽤나 바빴던 입원 생활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 면회도 불가해서 나의 입원 일정과 검사 결과 소식은 가족 단톡방을 통해 전해졌다. 수술 전날이 가장 바빴다. 모퉁이가 스테이플러로 찍힌 두 어장의 A4용지를 들고 병동 간호사가 찾아왔다.
[일반 전신마취 환자를 위한 안내]
수술 전날 자정부터 금식을 하고 세신 후 수술부위 제모를 해야 하며 장신구는 빼고 수술장에 들어가기 전에 속옷을 모두 벗고 다리엔 압박스타킹을 신고......
수술하고 난 후 마취에서 깨면 잠들지 말고 의사의 지시가 있기 전까진 음식은 물론 물도 금식하고 심호흡과 기침으로 무기폐가 생기지 않게 열심히 폐 운동을 해주며 다음 날부터 열심히 걸어 다녀야.....
수술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실감이 나진 않았지만 막연한 두려움은 가득했다. 수술 도중에 깨어나면 어떡하지, 수술 후에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N의 상상력은 보통 좋지 않은 방향으로 쭉쭉 뻗어 나가곤 한다. 저녁 식사를 한 후에는 2층에 간단히 만들어진 트랙을 천천히 걸으며 엄마와 운동을 하곤 했는데 수술 전날 저녁에는 2층 트랙 운동 대신에 3층 수술장을 찾아갔다.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보호자 대기실이 전부였는데 전광판에는 11시간째 수술 중인 환자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내 이름도 내일 저 전광판에 오르게 되겠지. 마음이 착잡해졌다. 대기실 벽면을 가득 매운 전신마취의 안전성과 수술 시 주의사항에 대한 글귀를 몇 번 읽어봐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뭐, 토할 정도로 긴장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만 말이다.
[잠시 삼천포]
간호사는 정말 극한 직업 중 극한 직업인 것 같다. 수술을 앞두고 금식과 관장을 했을 때, 간호사가 관장약을 건네며 약을 먹고 화장실을 갈 때마다 변기 사진을 찍어서 보여달라고 한다. 처참한 변기 속을 맨 눈으로 쳐다볼 용기도 나지 않는데 사진을 찍어서 보여달라니. 결국 몇 번의 힘겨운 과정을 거친 끝에 찌꺼기(?)가 모두 사라진 소변 같은 상태가 되어서야 겨우 사진을 찍어 간호사에게 수줍게 내밀었다. 사진 속 결과물의 주인인 나는 이렇게나 비위가 상하는데 사진을 본 간호사는 찡그리기는커녕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박수를 치며 "오! 바로 이거예요!"라고 소리쳤다. 웬만한 인류애로는 절대 해나갈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주치의의 수술 설명을 들어야 하는데 3층 수술장을 한 바퀴 돌고 와도 주치의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밤 9시 반이 넘어서야 수술복을 채 갈아입지 못한 주치의가 매우 지친 걸음으로 찾아와 병동 간호사실로 오라고 한다. 그동안 시행했던 여러 검사 결과를 모니터로 보여주며 차근차근 설명을 해준다. 엄마와 간이 의자에 나란히 앉아 떨리는 마음으로 경청했다. PET-CT 검사 영상을 보는데 덩어리의 크기는 상당했다. 지름 11cm에 최장길이 22cm의 거대한 종양이었다. 저렇게 큰 것이 뱃속에서 자랄 동안 왜 알지 못했을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저 커다란 덩어리 외에 다른 곳에 생긴 종양은 없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암이 아닐 확률이 높다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최근 산부인과로 내원한 한 산모도 제왕절개를 하면서 배에 30cm가 넘는 종양을 발견했다는데 다행스럽게도 조직검사 결과 단순 지방종이었다고 한다. 종종 이런 경우가 있다며 나도 같은 케이스로 보인다고 한다. 그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으나 덩어리가 워낙 크기 때문에 완전 개복은 불가피하다는 말에 다시 긴장을 했다.
이 커다란 덩어리가 검사 영상으로는 십이지장에 기원한 걸로 보이는데 어느 장기까지 침윤되어 있는지는 수술을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십이지장은 아주 얇고 짧기 때문에 덩어리와 함께 십이지장을 잘라내고 담낭과 담도를 제거한 자리에 간과 소장을 이어 붙여 어쩌고 저쩌고 하는 무서운 설명이 이어졌다. 게다가 개복을 했을 때 미세 암들이 온 몸에 하얗게 번져 있을 경우, 손 쓸 방도 없이 그대로 다시 봉합해야 한다는 최악의 상황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심하게 떨리는 엄마의 손이 굳이 보지 않아도 느껴져서 꼭 잡았다.
"그래도 워낙 젊으셔서 그런지 심폐기능이 아주 좋아요. 기초 체력도 좋아서 수술해도 금방 회복될 겁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앞서 들은 무시무시한 설명은 모두 흘려버리고 마지막 주치의의 한 마디만 기억하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