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수술이라더니 사실상 수술 예정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말 그대로 '예정' 시간일 뿐 앞서 수술 스케줄이 언제 끝나느냐에 따라 나의 차례가 정해졌다. 전날 밤 거의 잠을 설치고 아침까지도 긴장의 연속이어서 그런지 시간이 지연됨에 따라 점점 졸음이 쏟아졌다. 본격적으로 병실 침대에 누워 잠에 들려는 찰나, 타이밍 좋게 이송 침대가 도착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신고 있었던 압박 스타킹을 다시 탄력 있게 당기고 이송 침대에 누웠다. 가는 건 걸어가도 되는데 침대에 누워 멀뚱멀뚱 실려가자니 무력감이 더해졌다. 이제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두려움조차 의미가 없다. 수술장 입구까지 침대 옆에 바싹 붙어 따라 걸어오던 엄마의 손을 마지막으로 한 번 단단히 잡은 후에 수술장으로 들어갔다.
자동문이 열리고 난생처음 들어가 본 수술장은 좀 충격적이었다. 공장처럼 양 옆으로 빼곡히 늘어서있는 수술실과 그 사이사이에서 간혹 보이는, 열심히 손을 닦고 있는 의료진들의 모습은 공포로 다가왔다. 게다가 싸늘한 공기까지, 완벽한 공포.
[26번 방]
수술실 안은 더 밝고 하얬다. 수술 침대로 옮겨 앉으니 다섯 명쯤 되어 보이는 의료진들이 한순간에 다가와 누구는 등에 욕창 패드를 붙이고 누구는 알 수 없는 선을 연결하고 누구는 혈압계를 두르며 누구는 장신구가 남아있지 않은지 연신 살펴보며 묻는다. 수술 침대에 눕자마자 마음 편히 한숨 자라는 마취과 의사의 말과 동시에 코와 입으로 무언가 씌워졌다. 이제 시작인가. 다급하게 한 마디를 외쳤다.
"잘 부탁드릴게요!"
누군가 깨우는 소리도 없이 자동으로 눈이 떠졌던 것 같다. 아니면 누군가 깨웠는데 정신이 들 당시에는 조용한 상태였는지도. 배 위에 맷돌이 몇 겹이나 차곡차곡 쌓인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곧 느껴지는 좋지 않은 예감. 지금 당장 엄청 아픈 건 아니지만 이거 시간 지나면 장난 아니겠다 싶은 고통이 느껴졌다. 가장 먼저 시계를 찾아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잠이 들었는데 다시 깨어났을 땐 어느새 병실 침대에 올라와 있었다.
정신이 들자 아까보다 더한 배에 통증과 그보다 더 심한 갈증이 밀려왔다. '목말라' 한 마디에 간호사가 '안 돼요'라고 단호히 말한다. 엄마가 물에 적신 거즈를 입술에 덮어 주었다. 심한 갈증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물먹은 거즈를 쪽쪽 빨아 삼켰다. 차가운 생수 한 컵 벌컥벌컥 마시면 소원이 없겠다.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다. 4시간 이상 걸릴 거라고 했던 수술은 3시간도 되지 않아 끝났고 전광판에 내 이름이 '회복실' 칸으로 옮겨 갔을 때 엄마는 나쁜 결과를 예상했다고 한다. 전날 주치의가 얘기했듯이 암이 얇게 전신으로 퍼져있어 손을 쓸 수 없이 그대로 봉합해 나오는 상태 말이다. 수술이 끝나고 이송 침대에 실려 나온 내 몸에 피주머니가 5개나 달려 있어서 더 놀랐다고 했다. 하지만 이 병원에서 가장 수술을 쉽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젊은 외과 의사는 엄마에게 수술이 잘 끝났다는 소식을 전했고, 배를 열어 덩어리를 들어보니 다행히 십이지장에 살짝 붙어있는 상태로 쑥 들려서 겉 부분만 살짝 도려냈을 뿐 간에 소장을 연결하는 복잡한 수술은 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다만 수술부위가 소화기 계통이라 식사는커녕 물 한 모금 허락되기까지는 5일이나 지나야 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내 오른쪽 옆구리에는 여전히 배액관과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다른 점은 수술 전엔 피와 끈적한 진물을 받아 냈다면 수술이 끝난 후엔 샛노란 쓸개즙을 받아내고 있던 것이다. 이유인즉슨, 수술로 종양과 함께 담낭(쓸개)을 제거했고(담낭 안에 공깃돌 만한 담석이 꽤 많이 쌓여 있었는데 투명 비닐에 담겨 침대 폴대에 매달려 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부분에 담즙이 새지 않도록 배액관을 연결했다는 것이다. 점차 배출되는 담즙의 양이 줄어들면 제거할 예정이었다. 그 배액 주머니를 제거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지나 한 달이나 걸릴 거라고는 그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