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즙 배출량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수술 부위에 연결되어 있던 피 주머니가 제거되고 일주일이 지나도 담즙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간수치 또한 계속 고공행진이었다. 수술 이후에도 CT를 찍고 여러 가지 검사를 해야 했다. 염증이 심했던 담도가 아물면서 어딘가에 협착이 생겼는지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이 배출되지 않고 계속 간에 고여있다. 후유증으로 담도협착이 해결되지 않아 퇴원을 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엄마는 긴 연차 끝에 다시 직장으로 복귀했고 작년에 정년 퇴직하고 집에 있는 작은 이모가 세 번째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주치의는 연신 소화기내과와 영상의학과를 다니며 시술 일정을 잡느라 바빴다. 내시경실 일정을 간신히 파고들어 ERBD(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 배액술) 시술이 이루어졌다. 내시경을 통해 위에서 십이지장까지 들어가서 십이지장 끝에 연결된 담도로 스텐트를 삽입하는 시술이었다. 내시경도 태어나서 처음 해봤는데 그때 알았다. 내가 수면마취가 들지 않는 희귀 케이스라는 걸.. (그 얘기를 하자 몇몇 친구들은 나보고 김종민이냐고 했다)
몽롱한 느낌은 있는데 잠이 들지 않아 내시경 카메라가 삼켜질 때마다 꾸엑 꾸엑 구역질을 하였다. 첫 번째 ERBD 시술은 실패였다. 담도 어딘가가 막혀서 스텐트가 들어가지 않았다. 십이지장에서 담도로 올라가 뚫을 수 없다면 방법은 위에서 길을 뚫어보는 방법이었다. 이번엔 간을 통해서 담도에 접근하는 PTBD(경피적 간담관 배액술) 시술을 해야 한다. 주치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많이 아파요."
며칠 뒤
'경피적' 시술답게 옆구리부터 간을 뚫고 담도가지에 스텐트를 삽입하는 시술이었는데 처음 이 병원의 응급실에서 받았던 시술이 떠올라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지금 달고 있는 배액 주머니도 익숙해질 때까지 참 힘들었는데 이건 무려 간을 뚫고 연결되는 관이니 얼마나 아플까.
PTBD 시술은 혈관조영실에서 이루어졌다. 지금도 수술실보다 혈관조영실이 더 싫다. 혈관조영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의료진들도 밝고 친절했다. 시술을 집도할 담당 교수가 오기 전까지 준비를 하는데 상의 탈의를 하고 시술 부위가 뚫린 얇은 천을 덮은 다음 양손을 침대 헤드에 묶였다. 오른쪽 옆구리에 소독을 하고 링거를 통해 마취약이 들어왔다. 하지만 수면마취제 따위가 나를 잠재울 수는 없지. 몽롱함 속에 옆구리에서 간을 뚫고 담도까지 속을 쥐어짜는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속이 너무 쓰려요오.."
누군가가 명치 속에 두 손을 넣어 빨래 짜듯 힘껏 비트는 것 같았다. 중간중간 계속해서 수면마취제가 투여되는지 울렁 거림도 느껴졌다. 병실에 올라와서 마취 기운이 사라져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구리엔 총 3개의 구멍과 관이 연결되어 있었고 두 개의 주머니로 이어졌다. 차라리 수술이 더 나았다. 배에 개복 부위도 채 아물기 전에 담도를 잡기 위한 여러 가지 시술을 하느라 내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 해졌다.
하염없이 길어지는 입원 생활도 미칠 노릇이었다. 화장실 특유의 방향제 냄새는 역겨웠고 시간마다 찾아오는 병원밥은... 나중엔 밥차 소리만 나도 헛구역질이 절로 났다. 결국엔 물만 삼켜도 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침대 밑에 마련해 둔 간이 변기는 내가 게워내는 토사물을 받아들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병원생활 하는 동안 몸무게가 15kg이나 빠졌다.
세 번째 보호자인 작은 이모는 뭐라도 먹여야겠다 싶어 지하 1층 편의점에서 호박죽이고 즉석 어묵이고 과일이고 매 끼니마다 새로운 먹거리로 입맛이 돌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럴수록 역겨워지는 음식 종류만 늘어날 뿐이었다. 어느덧 옆구리 PTBD 통증은 익숙해지고 한동안 타고 다니던 휠체어에서도 일어나 천천히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컨디션이 조금 회복된 듯 다시 내시경 시술 일정이 잡혔다. 몇 번의 시술에도 해결되지 않은 담도 문제가 이제는 좀 해결되려나. 들어먹지도 않는 수면마취제가 가만히 있어도 울렁거리는 속을 부채질하는 것도 지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