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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 Feb 25. 2024

평생 볼 벚꽃을 찾아다니던 날

청풍면 물태리

2022년도의 벚꽃은 유난히 예뻤다. 물태리로 향하는 내내 벚꽃이 어찌나 풍성한지 차는 좀처럼 속도를 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마을 이름도 물태리일까. 싱그러운 청풍호와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사랑스러운 벚꽃잎의 발랄함이 절로 떠오르는 이름이었다. 청풍호를 휘감는 한적한 도로에서 몇 번이나 차를 세우고 벚꽃 사진을 찍었다. 온 마을이 벚꽃으로 뒤덮인 그런 사랑스러운 마을은 처음이었다.


백수라서 좋은 점은 축제 기간에도 사람이 없는 평일에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주차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고 줄 서서 기다리지 않고도 포토존에서 사진을 수 있었다. 잠시 나도 환멸 나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남들 다 쉬는 주말에 복작거리는 축제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적한 평일의 축제장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그냥 즐기기로 했다.


물태리를 구석구석 둘러보고 마을 한 바퀴를 크게 돌아보고 나무 데크길을 오래도록 걸었다. 떨어지는 벚꽃 잎이 간간히 손등에 차였다. 손등을 뒤집었더니 금방 손바닥으로 한 잎이 내려앉는다. 오래 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어볼까. 마음속 소원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잎이 내려앉는다. 곧바로 한 잎이 더 내려앉는다. 손바닥에 금세 세 장의 꽃잎이 쌓였다. 가장 먼저 앉은 꽃잎이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의미가 없었다. 손바닥을 뒤집어 꽃잎을 털어냈다.




집 근처 대학교 정문은 우리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벚꽃길 명소다. 꽃나무가 어찌나 큰지 하늘에서 서로 깍지 지를 이룬 가지가 벚꽃 터널을 만들어 낼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찐 벚꽃 명소는 이 대학교 정문이기 때문에 따로 벚꽃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하루는 강아지 호두와 함께 이곳으로 벚꽃 구경을 나왔다. 호두가 우리 가족이 되었을 때부터 매년 봄이면 이 벚꽃길을 걸으면서 '내년에도 같이 오자'며 약속을 했는데 올해는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엄마한테 매년 벚꽃 보러 나오자고 해.'라는 말로 대신했다.


벚꽃처럼 가성비 없는 꽃도 없을 것이다. 1년 내내 손꼽아 기다려도 고작 일주일 만에 끝나버린다.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잦은 봄이면 또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2022년의 봄은 잔잔했다. 벚꽃을 일주일이나 충분히 즐기고도 남았다. 제 몫을 다하고 느리게 떨어지는 꽃잎 또한 장관이었다. 그러다 나무에 달린 꽃잎보다 바닥에 깔린 것이 더 많아질 무렵,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산북면은 이제 벚꽃이 한창이었다. 가로수로 서있는 벚꽃나무를 따라 면사무소에서 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짧은 길을 천천히 걸었다. 내년에도 이 아름다운 벚꽃을 볼 수 있을까. 암 환자가 되었을 때처럼 하루아침에 고인이 될지 반대로 건강해질지, 내년에 벚꽃이 만개할지 만개한 벚꽃을 내가 볼 수 있을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대학교 정문의 낙화하는 꽃나무와 다르게 산북의 벚꽃은 아직 싱싱했지만 그걸 보는 내 마음은 씁쓸함이 가득했다. 눈앞에 탐스러운 벚꽃들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벚꽃이 모두 내려앉을 때까지 매일매일 오고 싶었지만 내일은 3차 항암을 위해 입원을 해야 하는 날이다. 항암 치료가 끝나고 퇴원할 때쯤이면 벚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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