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얼마나 퍼져 있는 것일까
마음이 편안한(?) 일주일이 훌쩍 지나가고 CT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 되었다. 샤워를 하고 스킨을 집어드는 순간 전화가 왔다. 저장되지 않았지만 익숙한 번호에 알 수 있었던,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네 여기 병원인데요. 환자분 본인 되시나요?]
"그런데요."
[환자분 급하게 위 수술을 해야 된다 하셔서, 교수님이 오늘 외과 외래도 요청해 놓으신 상태인데 혹시 외래 시간 좀 당겨서 일찍 오실 수 있나요?]
"위 수술이요? 저요? “
[네, 위 수술을 해야 돼서 교수님이 외과 교수님 외래를 급하게 잡으셨거든요. 그래서 일단 혈종내과 교수님 외래 일찍 보시고 외과도 다녀오셔야 될 것 같은데 10시까지 병원 오실 수 있으세요?]
핸드폰 너머 간호사의 목소리만큼이나 심장도 다급하게 떨렸다.
"네 가능해요."
손에 쥔 스킨은 결국 바르지 못하고 옷만 대충 갈아입은 채로 차에 올라탔다. 머리와 귀가 뜨거워지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침착하고 싶은데 무슨 말을 떠올려야 할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괜찮아질 리 없는 '괜찮아'를 되뇌며 무지성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운전을 해야 하는데 손이 심하게 떨렸다. 운전석 등받이를 불편하게 곧추 세우고 거의 소리치듯 한숨을 내 쉬었다. "아아! 괜찮아!" 입 밖으로 연신 '괜찮아'를 반복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동생에게 가장 먼저 카톡을 보냈다.
[병원 도착]
[일찍 도착했네]
[엄빠한테는 일단 얘기하지 말아 봐. 나 위 수술해야 돼서 외과 교수님 만나보라고 오늘 외래 하나 추가됐어]
[수술?]
[ㅇㅇ 검사 결과가 많이 좋지 않은가 봐]
[ㅇㅋ 다녀와서 말해주셈 너무 걱정하지 말고]
폐와 소장에 이어 위까지 암이 전이가 된 걸까. 얼마나 위급한 상황이면 항암 중에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일까. 보통 항암 중에 수술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은데 어쩌다가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걸까.. 항암약으로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암이 위험한 곳에 퍼져버린 걸까. 도무지 좋은 방향으로 생각이 흐르지 않았다. 병원에 너무 일찍 도착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1분이 10분처럼 느껴져서인지 좀처럼 내 차례는 다가오지 않았다. 항상 바로 앞사람 외래는 유독 길게 느껴졌는데 그날은 더욱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언니 근데]
동생에게서 다시 카톡이 왔다.
[수술해야 된다는 거는 수술할 수 있을 정도로 암이 줄어들었다는 거 아니야?]
[그런가?]
[언니가 폐랑 뱃속 이렇게 두 군데 있다고 했는데 폐에 있는 게 없어져서 배 쪽 수술이 된다고 하는 거 같은데?]
“환자분 생년월일 말씀해 주시고 들어가세요.”
[일단 교수님 얘기 듣고 카톡 할게]
"저, 뭐 급하게 수술해야 된다고"
"아, 일단 앉으세요."
진료실 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다급하게 말을 꺼내는 나를, 여느 때처럼 온화한 말투로 진정시킨다.
"지난번 PET-CT에서 보였던 것 이외에 다른 데에 뭐가 생기거나 한건 없어요. 그리고 폐에 있는 건 크기 변화가 없네요. 약이 잘 듣고 있거나 아니면 암이 아닐 가능성도 있어요."
"네."
“그런데 소장 쪽에 보였던 덩어리를 보시면 두 달 전보다 확연히 커져있죠. 거의 두 배 이상. 보트리엔트를 복용하면 종양이 일시적으로 부었다가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긴 하지만 이건 부은 수준이 아니라서 약이 맞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폐에 있는 건 지금 당장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배에 있는 건 수술로 제거하면 어떨까 외과 교수님에게 요청해 놓은 상황이에요.”
동생의 말과 거의 70% 맞아떨어지는 결과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암 환자에게 최고의 치료법은 수술을 통해 병변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수술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건 다시 한번 몸속에 보이는 암을 완벽히 제거할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인데 당황스러운 수술 연락에 계속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로 외과로 가시고, 외과 교수님 의견은 다를 수 있으니까 이야기를 나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마 교수님도 수술하자고 하실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술하자고 하는 말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제야 머리와 귀에 열이 식고 심장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몸에 더 퍼진 암이 없고 폐에 있는 건 암이 아닐 수도 있고 배에 있는 암은 수술로 없앨 수 있고, 이 정도면 해피엔딩 아닌가. 곧바로 동생에게 카톡을 했다.
[몸에 더 생긴 건 없고 폐에 있는 건 암이 아닐 수도 있대. 근데 뱃속에 있는 게 커져서 그거만 떼어내면 된대~]
[거봐 내 말이 맞잖아]
[그러게]
[사서 걱정하는 거 극혐이다]
외과 교수님도 혈액종양내과 교수님과 같은 의견이었다.
"언제 할까요? 이 날 어때요? 그날 뵙죠."
수술 날짜를 무슨 밥 약속 날짜 잡듯이 가볍게 정하고는 진료실을 나왔다.
"보트리엔트는 수술 일주일 전까지만 복용하세요."
2022년 1월 6일 첫 수술
2022년 1월 14일 평활근육종 암 판정
2022년 2월 21일~ 6월 22일 아드리아마이신+이포스파마이드 항암 6차
2023년 5월 26일 재발
2023년 5월 29일~ 7월 23일 보트리엔트 항암
2023년 7월 31일 두 번째 수술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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