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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 Feb 25. 2024

수술의 의미

암이 얼마나 퍼져 있는 것일까

마음이 편안한(?) 일주일이 훌쩍 지나가고 CT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 되었다. 샤워를 하고 스킨을 집어드는 순간 전화가 왔다. 저장되지 않았지만 익숙한 번호에 알 수 있었던, 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네 여기 병원인데요. 환자분 본인 되시나요?]

"그런데요."

[환자분 급하게 위 수술을 해야 된다 하셔서, 교수님이 오늘 외과 외래도 요청해 놓으신 상태인데 혹시 외래 시간 좀 당겨서 일찍 오실 수 있나요?]

"위 수술이요? 저요? “

[네, 위 수술을 해야 돼서 교수님이 외과 교수님 외래를 급하게 잡으셨거든요. 그래서 일단 혈종내과 교수님 외래 일찍 보시고 외과도 다녀오셔야 될 것 같은데 10시까지 병원 오실 수 있으세요?]


핸드폰 너머 간호사의 목소리만큼이나 심장도 다급하게 떨렸다.


"네 가능해요."


손에 쥔 스킨은 결국 바르지 못하고 옷만 대충 갈아입은 채로 차에 올라탔다. 머리와 귀가 뜨거워지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침착하고 싶은데 무슨 말을 떠올려야 할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괜찮아질 리 없는 '괜찮아'를 되뇌며 무지성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운전을 해야 하는데 손이 심하게 떨렸다. 운전석 등받이를 불편하게 곧추 세우고 거의 소리치듯 한숨을 내 쉬었다. "아아! 괜찮아!" 입 밖으로 연신 '괜찮아'를 반복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동생에게 가장 먼저 카톡을 보냈다.


[병원 도착]

[일찍 도착했네]

[엄빠한테는 일단 얘기하지 말아 봐. 나 위 수술해야 돼서 외과 교수님 만나보라고 오늘 외래 하나 추가됐어]

[수술?]

[ㅇㅇ 검사 결과가 많이 좋지 않은가 봐]

[ㅇㅋ 다녀와서 말해주셈 너무 걱정하지 말고]


폐와 소장에 이어 위까지 암이 전이가 된 걸까. 얼마나 위급한 상황이면 항암 중에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일까. 보통 항암 중에 수술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은데 어쩌다가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걸까.. 항암약으로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암이 위험한 곳에 퍼져버린 걸까. 도무지 좋은 방향으로 생각이 흐르지 않았다. 병원에 너무 일찍 도착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1분이 10분처럼 느껴져서인지 좀처럼 내 차례는 다가오지 않았다. 항상 바로 앞사람 외래는 유독 길게 느껴졌는데 그날은 더욱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언니 근데]

동생에게서 다시 카톡이 왔다.


[수술해야 된다는 거는 수술할 수 있을 정도로 암이 줄어들었다는 거 아니야?]

[그런가?]

[언니가 폐랑 뱃속 이렇게 두 군데 있다고 했는데 폐에 있는 게 없어져서 배 쪽 수술이 된다고 하는 거 같은데?]


“환자분 생년월일 말씀해 주시고 들어가세요.”


[일단 교수님 얘기 듣고 카톡 할게]




"저, 뭐 급하게 수술해야 된다고"

"아, 일단 앉으세요."


진료실 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다급하게 말을 꺼내는 나를, 여느 때처럼 온화한 말투로 진정시킨다.


"지난번 PET-CT에서 보였던 것 이외에 다른 데에 뭐가 생기거나 한건 없어요. 그리고 폐에 있는 건 크기 변화가 없네요. 약이 잘 듣고 있거나 아니면 암이 아닐 가능성도 있어요."

"네."

“그런데 소장 쪽에 보였던 덩어리를 보시면 두 달 전보다 확연히 커져있죠. 거의 두 배 이상. 보트리엔트를 복용하면 종양이 일시적으로 부었다가 줄어드는 양상을 보이긴 하지만 이건 부은 수준이 아니라서 약이 맞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폐에 있는 건 지금 당장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배에 있는 건 수술로 제거하면 어떨까 외과 교수님에게 요청해 놓은 상황이에요.”


동생의 말과 거의 70% 맞아떨어지는 결과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암 환자에게 최고의 치료법은 수술을 통해 병변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수술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건 다시 한번 몸속에 보이는 암을 완벽히 제거할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인데 당황스러운 수술 연락에 계속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로 외과로 가시고, 외과 교수님 의견은 다를 수 있으니까 이야기를 나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마 교수님도 수술하자고 하실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술하자고 하는 말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제야 머리와 귀에 열이 식고 심장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몸에 더 퍼진 암이 없고 폐에 있는 건 암이 아닐 수도 있고 배에 있는 암은 수술로 없앨 수 있고, 이 정도면 해피엔딩 아닌가. 곧바로 동생에게 카톡을 했다.


[몸에 더 생긴 건 없고 폐에 있는 건 암이 아닐 수도 있대. 근데 뱃속에 있는 게 커져서 그거만 떼어내면 된대~]

[거봐 내 말이 맞잖아]

[그러게]

[사서 걱정하는 거 극혐이다]


외과 교수님도 혈액종양내과 교수님과 같은 의견이었다.


"언제 할까요? 이 날 어때요? 그날 뵙죠."


수술 날짜를 무슨 밥 약속 날짜 잡듯이 가볍게 정하고는 진료실을 나왔다.


"보트리엔트는 수술 일주일 전까지만 복용하세요."




2022년 1월 6일 첫 수술

2022년 1월 14일 평활근육종 암 판정

2022년 2월 21일~ 6월 22일 아드리아마이신+이포스파마이드 항암 6차

2023년 5월 26일 재발

2023년 5월 29일~ 7월 23일 보트리엔트 항암

2023년 7월 31일 두 번째 수술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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