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솔웅 Jan 07. 2023

존 칼빈

교회가 있던 골목길을 빠져나와 크루아루주 길Rue de la Croix-Rouge을 따라간다. 도로를 따라 바스티옹Bastions 공원의 입구로 향했다. 이제 제네바에서 보물찾기의 마지막 지점이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종교개혁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존 칼빈과 윌리엄 파렐William Farel (1489-1565), 테오도르 베자, 존 녹스 등 제네바 종교개혁 주역의 조각상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제네바를 이야기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 있다면 단연 존 칼빈이다. 그는 1536년 7월, 제네바로 향한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로 가려 했지만 합스부르크-발루아 전쟁Habsburg-Valois Wars으로 인해 제네바로 가게 된 것이다. 당시 칼빈은 <기독교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1536)를 펴낸 유명인사였다.


당시 제네바에서는 윌리엄 파렐이 4년간 종교개혁을 이루기 위해 일하고 있었다. 그는 고집불통의 성격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하루는 칼빈이 제네바에 방문해 한 여관에서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파렐은 바로 칼빈을 찾아가 제네바 종교개혁의 지도자로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칼빈은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 고집불통의 성격 때문이었을까, 파렐은 칼빈에게 협박과도 같은 저주를 퍼부었다. 불같은 저주가 두려웠던 건지 칼빈은 제네바에 머물기로 한다.


당시 제네바는 지금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아름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더럽고 냄새나는 도시였다. 사람들은 가난했고 술에 취해 있었고 제대로 갖춰진 것 없는 그런 도시였다. 프랑스에서 온 칼빈은 제네바에서 25년간 살았는데 그가 이뤄낸 업적은 전 세계를 변화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 (1905)에서 이렇게 정의했다 — 서구 국가의 번영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결정적인 원인은 칼빈의 가르침이다.


칼빈은 교회를 개혁하는데서 멈추지 않고 성서의 원칙을 통해 사회 모든 부분에 있어서 개혁을 단행했다. 당시 은행의 이자율은 매우 높았는데 이자율을 낮추라고 했다. 이때 칼빈은 4퍼센트로 이자율을 낮추는데 이는 400년 동안 동결되었고 스위스의 은행을 세계적인 은행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칼빈은 술집마다 돌아다니며 나가서 열심히 일하라고 소리쳤다. 교육 개혁도 이뤄졌고 그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세웠다.


물론 칼빈에게 흠도 여럿 있었다. 분명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고집도 굉장히 셌고 몸은 매우 빈약했다 한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것에 대해 말했고, 교육과 과학,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그의 개혁은 영적인, 교회 안에서 만의 변화에서 그치지 않았고 사회 모든 영역의 변화를 추구했다.

이전 12화 적십자의 탄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