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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솔웅 Dec 30. 2022

부러진 의자

무엇보다 먼저 나를 반기는 것은 네이션스 광장에 우뚝 선 12미터 규모의 ‘부러진 의자’이다. 하나의 다리는 부러져있고, 세 개의 다리로 버티고 있는 모습이다. 이 대형 의자는 대인지뢰로 인해 발목을 잃은 이들을 기리고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하자는 취지로 스위스 조각가 다니엘 베르세Daniel Berset가 1997년 8월에 만든 작품이다. 1990년대까지 대인지뢰는 매해 수천 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현재도 지뢰는 군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을 위협하고 있는데, 많은 이들이 지뢰로 인해 발목을 잃었다.


이 작품은 현재 휴매니티 앤 인클루션Humanity & Inclusion으로 활동 중인 핸디캡 인터내셔널Handicap International의 요청으로 만들게 되었다. 핸디캡 인터내셔널은 국제인권감시기구Human Rights Watch 등 여섯 개의 국제단체와 함께 1991년 국제지뢰금지운동ICBL: International Campaign to Ban Landmines을 시작했던 단체이다. 이 운동은 대인지뢰 전면 금지를 외치며 오타와 협약, 즉 지뢰금지조약Mine Ban Treaty을 이뤄내는 데 앞장섰다. 그 결과로 핸디캡 인터내셔널은 캠페인 코디네이터 조디 윌리암스Jody Williams (1950-)와 함께 1997년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결과적으로 노벨평화상 수상과 네이션스 광장에 세워진 부러진 의자 조각은 같은 해 12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오타와 협약Ottawa Treaty이 채택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현재 이 협약에는 80퍼센트의 나라들이 서명했지만 32개의 나라는 아직 가입하지 않은 상태이다. 물론 북한과의 대치 중인 우리나라는 아직 지뢰 사용 금지를 위한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광장 주변에는 유엔난민기구UNHCR: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 국제전기통신연합ITU: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 안쪽으로는 국제노동기구와 세계보건기구 등의 여러 산하 기관의 본부가 자리해 있다. 광장에서는 담장 너머로 유엔 회원국 깃발들이 열을 맞춰 펄럭이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로 유엔이라 불리는 국제연합의 시초인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의 건물이던 아르 데코 양식의 팔레 데 나시옹Palais des Nations의 웅장한 모습이 깃발들 뒤로 보인다.


국제연맹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승전국을 중심으로 1920년 설립되었다. 국제연맹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년간 세계 평화에 상당히 크게 기여했다. 스웨덴과 핀란드, 그리고 그리스와 불가리아의 사태를 평화롭게 해결하고 로카르노 조약Locarno Agreements을 체결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후 일본의 중국 만주 침략,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 그리고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등 잇따른 도발에 대해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고,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어나면서 국제연맹은 1946년 자연스럽게 해체되고 만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잊을 수 없는, 그리고 씻을 수 없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고 나서야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한 시도가 다시금 이뤄진다. 그렇게 국제연맹의 발자취를 이어 지금의 유엔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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