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6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왜 이제야

by 소란화 Mar 25. 2025

왜 이제야. 왜 이 나이가 될 때까지 한번도 의심해보지 못했을까. 육아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그림자같은 노동이라는 사실을. 그건 내가 자기중심적이고 철딱서니 없는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우리 남매를 거저 키웠다는 친정엄마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는 바보였다. 거저 키웠다니. 아기는 스스로 밥을 먹고 똥을 치우고 잠을 자지 않는다. 심지어 혼자 노는 것도 못한다. 아이를 길러본 지 아직 1년이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미혼무자녀 친구들에게 결혼은 해도 아이는 신중하게 생각해 보라는 오지랖을 떨고 다니는 나다. 모르긴 몰라도 그 친구들은 아마 나보다는 육아를 잘할 것 같다. 아이를 케어하면 할수록, 나라는 존재가 그림자처럼 잠식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이건 비단 나만이 아니라 엄마들 커뮤니티에 잊을 만하면 늘상 올라오는 단골 한탄가이다. 나는 언제 먹어? 언제 자? 언제 씻어? 언제 일해? 언제 운동해? 언제 쉬어? 이런 원초적인 욕구불만족 상태를 꾸역꾸역 내리누를 수 밖에 없는 것이 육아라는 걸 예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아이와 단둘이 있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소리를 빽 지르거나 혼자 울음을 터뜨리거나 아이 앞에서 눈물로 하소연한 게 못해도 열 번은 넘는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할 수많은 나날동안 내가 열 번의 열 배 그것의 열 배 또 열 배만큼 소리를 지르고 울음을 터뜨리고 눈물로 하소연하게 될 거란 강렬한 예감이 든다. 이런 장면은 대중매체에서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이 모습의 가장 마일드한 버전은 아직 서툰 엄마의 귀여운 육아분투기 정도일테다. 아쉽다. 육아에 대한 솔직담백한 묘사들이 많아지고 더 다채롭고 더 적나라한 담론들이 등장하면 좋겠다. 모를 일이다. 그 시작이 내가 될 수도.


우리 아이는 이제껏 통잠 (내리자는 잠)을 자본 적이 손에 꼽는다. 새벽에는 알람시계처럼 3시간마다 일어난다. 안아올리면 내려달라 울고 내리면 안아올리라 운다. 먹이면 토하고 토하면 배고프다고 운다. 혼자 있기 싫어 항상 징징거린다. 이 징징거림이 마치 칠판긁는 소리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귀마개나 노이즈캔슬링 따위는 생각지도 못한다. 주양육자인 내가 아이 소리를 차단해버리면 아이의 안전은 누가 책임질건가? 이 모든 난리 속에서 나는 임신 전보다 십여키로 빠져버린 비쩍마른 몸으로(원래도 저체중이었다) 어떻게든 다음 일을 '수행'하기 위해 식은 밥을 씹는다. 3시간을 참다가 짬을 틈타 3분 안짝으로 화장실을 다녀오고, 서너가지 집안일을 동시다발로 해치우는데는 도가 튼지 오래다.


이 세상에 가치있는 일치고 쉬운 일은 없다. 돈 벌기가 그렇고 봉사가 그렇고 공부가 그렇고 예술이 그렇고 운동이 그렇다. 아니, 산다는 거 자체가 그렇다. 가치 있는만큼 참 수월찮다. 육아도 그렇다. 누가 등떠밀어 시킨것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인데, 그럼에도 참 어렵다. 어쩔 때는 산 채로 뜯어먹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산 채로 빨아먹히는 건 맞다. 그렇다. 모유수유 중이다.) 가장 힘든 부분은 정해진 게 없다는 거다. 오늘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준 내 아가가 내일은 정반대로 군다. 어제는 생지옥처럼 울다가도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듯 햇님처럼 웃는다. 조울증같은 매일의 연속. 육아전쟁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아군은 나와 내 아기, 적군은 피로와 분노에 시달려 매몰되어가는 또 다른 나이다.


아이가 예쁘지 않냐고? 아이가 너무 예뻐서 다 잊히지 않냐고? 아이는 예쁘다. 하루 중 두어 번은 예쁘다. 너무 졸리거나 배고프거나 피곤할 때는 나도 사람인지라 내 새끼도 그다지 예뻐보이진 않는다. 그걸 인정하는게 쉽지 않았다. 어쩐지 그렇다고 인정해버리면, 진짜 천하에 나쁜 여자가 될 것만 같아서. 아홉시 뉴스에 나오는 부모가 될 것 같아서. 그런데 우습게도 쿨하게 그렇다고 인정하니 오히려 내가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준 기분이 든다. 아이가 예뻐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많지만)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게 아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구태여 설명하고 증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육아전쟁에서 오는 피로감과 아이에 대한 애정은 별개의 것임을 이제는 안다. 가끔 그걸 헷갈리는 이들은 아이가 예쁘지 않다고 말하면 나를 괴물 보듯 쳐다보겠지만.


중요한 건 내가 나를 괴물 보듯 보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 다 나를 몰라줄지언정 내가 나를 외면하면 안된다. 엄마의 행복이 아이의 행복이랬던가? 그 말은 진리다. 엄마가, 엄마인 내가 나 스스로를 먼저 인정하고 사랑하고 보듬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아이가 보인다. 죄책감과 자기혐오는 절대로 육아의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더 열심이려 한다. 육아가 아니고, 육아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







작가의 이전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생각이 다를 때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