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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아 Mar 23. 2023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수 없었다

22. 다시, 함께하는 방법을 배우다

이혼을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와 일 년이 지난

작년 가을, 다시 언니와 마주했다.

결혼 후 아이를 가지고부터 종종 언니에게서 선물이 왔었다. 가끔 아이의 사진을 보내달라는 언니의 부탁도 거절할 수 없었다.

사실 결혼식에 언니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당시 중국에 있던 언니는 돌아오는 일정을 맞추지 못해 온라인 생중계로 보겠다며 미안함을 전했다. 결국 결혼식은 무산되었고 그 후로 연락도 하지 않았다.


5년 만이었다. 작년 9월, 아빠의 보이스피싱 문제 해결을 위해 언니가 급히 집에 오게 되었고, 그 후로 한 달에 한 번,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내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꾸준히 집에 들르고 있다.

아이의 두 돌과 언니의 이번 생일도 온 가족이 함께 보냈다. 언니는 유일한 조카인 아이를 보러 집에 올만큼 너무 예뻐해 주고 아이도 이모를 잘 따른다.


그러나 마음에 찌꺼기 같은 잔재들이 남았다. 항상 아이와 함께 언니를 만나지만 두렵고 무서웠다.

내 안에 트라우마로 남은 언니의 모습들이 현재와 겹쳐 보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전히 언니란 존재는 내게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부모님과 언니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다 같이 외식도 하고 나들이도 다녀왔다. 실은 언니에게서 집에 들러 아이를 보고 가도 되겠냐는 연락이 올 때마다 망설여지고 불쑥 피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지금도 언니와 아무렇지 않은 듯 연락을 주고받지만 이따금 또다시 반복되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아이를 키우며 육아에 대해 공부하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면 나의 부모님 또한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나서 보니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다.

그럴 때면 엄마를 붙잡고 묻는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습관처럼 굳어진 날 선 말투를 고치려 노력해도 쉽지 않다 말했다. 완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더라도 이제는 엄마에게 힘든 감정이 올라오면 이야기한다.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주기만 하던 어린아이는 엄마가 되었고, 더 이상 미련하게 혼자 참지 않는다.


더는 상처로부터 도망치지 않겠다 다짐한다.

언젠가 언니에게도 꼭 물을 것이다. 어린아이였던 내게 왜 그렇게 가혹하게 굴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따져 낱낱이 파고들 것이다.

그리고 사과받을 것이다.

용서고 뭐고 일단 말을 꺼내는 것부터 큰 용기가 필요하다. 어쩌면 머지않아 얼굴을 붉히거나 눈물범벅으로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다.    

우리 가족은 늦었지만 다시 함께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가족이 된다.

내가 정할 수 없었던 원가족과 스스로 선택한 새로운 가족 모두 그렇다.

어른이 되어서야 진정 함께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도, 이혼한 전 배우자와도, 나의 아이와도,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나 자신과 진정 함께하기 위해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버리고 싶었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지만 가장 어려운 한 아이를 온 마음을 다해 키운다.  

면접교섭 과정에서 갈등이 생겼던 아이의 아빠와 다시 마주하려 한다.

많이 늦은 만큼 쉽지 않겠지만 모든 순간의 이유가 되어주는 아이가 있는 한 그럼에도 조금씩 나아갈 것이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무엇이든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가 옹알이를 하기도 전부터 아이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덕분인지 아이는 말이 빨랐다. 아이가 말문이 트이고부터는 감정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몇 번이고 사랑한다고 함께 있어서 행복하다고 아이를 품에 꼭 안아주며 말해주었다.

그건 아마 내가 자라며 엄마에게 바라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한 아이가 내게 달려와 품에 꼭 안긴다.

"엄마 사랑해"

아이의 따뜻한 온기가 내게 전해진다. 작은 등을 토닥이며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대답한다.

아이와 함께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로 향한다. 아직은 바람이 쌀쌀해 차가워진 아이의 손을 내 손안으로 감싸 넣어 꼭 잡는다. 한 발짝씩 내딛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3월이지만 아직 겨울과 봄 사이 같은 날씨다.

아이는 아직 계절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저 곳곳에 피어있는 꽃을 보고 가리키며 신나 한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 오더라도 또다시 봄은 오고 꽃이 핀다는 사실을 나는 아이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너와 함께하는 매일이 소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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