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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Jan 19. 2023

어떤 입시제도가 와도 귤이 아닌 탱자가 된다

제3장 초중고 교육개혁이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 -4

BBC 뉴스 코리아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대입제도는 정부 수립 이후 19번 바뀌었는데 4년에 한 번꼴로 바뀌는 셈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입 제도도 바뀌었다.(각주1) 그런데 바뀌어서 좋아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입시 제도가 바뀔 때마다 수험생들이 혼란을 겪고 새로운 정보에 적응이 빠른 사교육 업계에만 유리하다며 바꾸지 말고 가만히 놔두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입시의 난맥상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들이다. 입시의 문제는 지나친 경쟁이 핵심인데, 시험 방식이나 선택과목 조금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결국 대학서열 해소를 통해 입시 경쟁의 강도 자체를 낮추지 않으면 대입 시험 방식을 어떻게 바꿔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대입 제도 개선에 아무리 공을 들여도 그 효과가 보잘것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에 진행되었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사업이다. 당시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입 방안을 어떻게 결정할지 몰라 국가교육위원회에 결정을 의뢰했고, 국가교육회의는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론화를 추진했다. 당시 이 공론화에 무려 27억의 예산을 책정했으며(각주2), 전국을 순회하며 토론회를 개최하고 열 번이 넘는 교육주체 및 전문가 간담회를 가졌다. 무엇보다 550명의 시민참여단을 구성하여 1차 워크숍을 하고, 2차에는 1박 2일의 합숙 토의를 하는 등 공을 들여 공론화를 진행했다.

 

하지만 공론화의 내용이나 결과는 들인 공에 비해 초라한 것이었다. 우선 공론화에서 주로 다룰 4가지 의제를 정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표3-9>(각주3)와 같다.


표3-9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의제 4가지

자료: 한겨레(2018.7.11.). 대입개편 공론화위, 시민참여단 550명 확정.     


내용을 보면 공론화의 주요 의제는, ‘수시-정시 비율’, ‘수능 절대평가 전환 여부’, ‘수시 수능최저 적용 여부’이다. 그중 수능 절대평가 전환이나 수시 수능 최저기준은 수능의 영향력에 대한 주제로 포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결국 공론화의 주요 의제는 수시-정시 비율을 정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당장의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수시-정시 비율이 입시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비용을 들여 전국민적인 관심을 끌어모아 진행하는 공론화 의제가 고작 수시-정시 비율 결정이라니 참으로 허탈한 일이다. 


더구나 공론화의 결과 역시 허무한 것이어서, 공론화 위원회는 ‘지지도 조사 결과 의제1과 의제2가 1위, 2위였으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으니’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고, 단지 ‘수능 위주 전형 확대 의견이 우세하다’는 의견을 제시할 뿐이었다(그림3-4)(각주4). 결국 이러한 공론화 위원회의 의견을 참조하여 교육부는, ‘정시 수능전형 비율이 30% 이상 확대되도록 권고한다’는 최종 대입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그림3-5)(각주5). 이러한 용두사미 격의 공론화 결과를 두고 언론에서도 ‘대입 개편 4가지 시안 발표...결국 도돌이표?’(각주6),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넉 달... 돌고 돌아 원점으로’(각주7)와 같은 아쉬운 반응들을 나타냈다. 2018 대입제도 공론화의 경험은 대학서열해소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논의가 아니고서는 공론화가 단시안적인 소모적 논쟁에 그칠 뿐임을 보여주었다.

      

그림3-4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결과    

자료: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2018.8.3.). 대입제도개편 공론화 결과. 내용 일부 추출.     


그림3-5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 방안    

자료: 교육부(2018.8.17.).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향. 내용 일부 추출.     


사회적으로 대학서열 해소에 대한 담론도 없고 국가가 입시 경쟁 해소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으니 국민들로서는 당장의 이해관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입시 제도를 고쳐봤자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테니 내 자녀가 조금이라도 서열 높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입제도 개혁에 대해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고 오히려 가만히 두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갖는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매년 실시하는 교육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성향은 그대로 나타난다. 국민들 대다수(80% 이상)는 대학서열 체제가 시간이 가도 변함이 없거나 심화될 것이라고 응답했다(표3-10).(각주8)      


표3-10 우리 사회에서 대학 서열화에 대한 변화 전망은? (단위:%)    

자료: 한국교육개발원(2021). 교육여론조사.

      

그렇다면 앞으로의 전망은 어떨까? 향후 대입제도에서 큰 변화가 예상되는 때는 2028학년도이다. 이 때는 2022개정 교육과정이 시행되고 2025년부터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에 따른 대학제도가 시행되는 해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상황이 개선될 여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대학서열이 해소되지 않는 한 내신과 수능에서 촘촘한 변별을 요구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수능은 절대평가가 되기 어렵고 내신 역시 마찬가지로 상대평가를 유지할 것이다. 교육부의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에 따르면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될 때 주로 고2~3학년 때 배우는 선택과목은 모두 성취평가제가 시행되지만, 고1 때 배우는 공통과목은 여전히 석차등급을 산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표3-11).(각주9)


표3-11 고교학점제에서의 내신성적 산출 방식    

자료: 교육부 보도자료(2021). 2025, 포용과 성장의 고교 교육 구현.     


교육부가 고1 과정을 상대평가로 유지하는 것은, 석차등급 산출을 아예 안 할 경우 내신의 변별 기능이 약화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1학년 공통과목까지 모두 성취평가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신 성적 자체가 입시 자료로서 아예 무력화되어 오히려 수능 대비 중심의 입시 경쟁이 더 심해질 수 있다. 그러면 수능까지 모든 과목을 절대평가화하자는 의견이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대학으로서는 학생 선발이 어렵다며 대학별 고사를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다. 이와 같이 앞으로도 내신과 수능의 입시 영향력 비율, 공교육 정상화와 입시 변별력의 요구 사이에서 끊임없이 오락가락하는 상황만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대학서열해소 없이는 입시 제도에 희망을 갖는 것 불가능하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고 수십 년이 지나도 암울한 한국의 입시 상황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대학서열해소를 통해 입시 경쟁 강도를 근본적으로 완화하고 이에 따라 초중고 교육이 입시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각주

1) BBC NEWS 코리아(2019.11.4.). 정시확대: 광복 이후 18번 바뀐 한국 대학 입시.

2) 서울경제(2018.5.24.). 대입개편 공론화에 27억...책임 미루며 예산만 ‘펑펑’.

3) 한겨레(2018.7.11.). 대입개편 공론화위, 시민참여단 550명 확정.

4)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2018.8.3.). 대입제도개편 공론화 결과.

5) 교육부(2018.8.17.).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향.

6) 채널A(2018.6.20.). 대입 개편 4가지 시안 발표...결국 도돌이표?.

7) 아시아경제(2018.8.7.).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넉 달... 돌고 돌아 원점으로.

8) 한국교육개발원(2021). 교육여론조사 2021. 연구요약 p.34.

9) 교육부 보도자료(2021). 2025, 포용과 성장의 고교 교육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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