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준비
작년 12월 김장 때의 일이다.
서울 사돈께서 딸 편으로 생강 한 박스를 보내주셨다. 안 그래도 생강청을 만들려고 생강을 사려던 참이었다. 어쩌면 사돈과 텔레파시가 이렇게나 잘 통할 수 있는지 참으로 신기했다.
딸이 올 때마다 과일 등 여러 가지를 과분하게 챙겨주셔서, 사돈께는 고마움에 앞서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사위한테도 생각처럼 그 고마움을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놓고 염치없이 받고, 속으로는 기분 좋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3, 4년 주기로 생강 한 박스로 생강청과 가루로 만들어서 사용해 왔다. 겨울에는 우리 가족이 편도선이 잘 붓는 편이어서 즐겨 사용하고 있었다. 주로 아이들 차 대용이나 지인들께 나눔으로도 활용했었다.
그동안 먹던 생강청이 바닥을 드러내고, 따뜻한 생강차가 제격인 겨울이 다가와도 엄두를 못 내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지만, 미루던 숙제니 두 팔 걷어붙이고 신나게 껍질을 깠다.
절반은 믹서기로 곱게 갈아서 꿀을 같은 양으로 재워 꿀 병에 담아놓았다. 꿀 병 2.4kg짜리 다섯 병이면 엄청난 양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얇게 편을 썰어서 자일리톨 설탕에 재놓았다.
평상시 식재료와 겨울철 따뜻한 음료로도 사용하고 있어서 우리 가족에게는 사랑받는 식품이다.
깎고, 갈고, 재우고 하는 과정이 힘들어도 완성하고 나면 뿌듯하다. 생강청은 물을 사용하지 않았다. 자칫 희석되어 변질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믹서기에 갈아서, 면 보자기에 꼭 짜낸 즙을 넣어서 갈았다. 매번 갈 때마다 갈아놓은 생강에 고인 즙을 다시 활용했기 때문에 물을 사용하지 않고 완성할 수 있었다.
이심전심 통했던 사돈 덕분에 미뤘던 생강청을 서둘러 만들게 되었다. 이보다 감사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생강청을 먹을 때마다 고마운 사돈을 떠올리게 되겠지.
해마다 12월 첫 주말에 하는 김장은, 서울 사돈과 시골 사돈이 합작해서 서울 사돈댁에서 치르는 연례행사이다. 김장 날이 정해지면 우리는 설레며 그날을 기다린다. 일 년 중 거의 유일하게 사돈과 만나기 때문이다.
사업에 참여하시는 바쁜 안사돈의 시간을 덜어드리기 위해 남편과 하루 전에 딸 집으로 간다. 도착하는 날 딸 집은 잔칫집 분위기다. 손주들은 우리들이 가니까 좋고, 큰딸은 며느리인 자기 일을 덜어주어서 좋아한다.
그렇지만 정작 우리가 더 좋아한다. 김장보다 사돈을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돈과 김장을 같이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과 고생하러 간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시골에서 서울로.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사돈과의 만남을 무척 좋아한다. 김장의 핑계가 아니었으면 사돈을 만날 일도 거의 없었을 것이고, 평생 사돈 관계를 불편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 젖먹이를 둔 큰며느리인 우리 딸을 대신해서 내가 자청한 것이었다. 바쁜 사돈이 일도 못하는 며느리 데리고 많은 김장을 하신다는 걸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김장은 어설픈 두 며느리보다 사돈이 낫다고 하신다. 햇수가 거듭될수록 사돈 관계라는 어렵고 조심스러운 면 보다 편안함이 더 많다.
김장의 모든 재료는 안사돈께서 미리 준비하신다. 김장에서 손이 많이 가는 속 재료 갓, 무, 쪽파는 남편과 딸, 셋이서 합심해서 다듬고 씻고 썰어서 미리 준비해 둔다. 보내주신 생강의 일부를 갈아두었다가 사용했다.
안사돈의 지휘 아래 양념을 섞어놓는 사이에 집집에서 가져온 김치통들이 산더미같이 쌓인다. 사돈은 혼자 계시는 큰딸 동서의 친정 가족들과 불우한 이웃 몇 집도 나눔 하신다.
그렇게 시작한 버무리기는 사돈끼리 손이 척척 잘 맞는다. 본격적으로 자리 잡고 버무리면 번개같이 해버린다. 사돈의 두 며느리는 자기네가 먹을 통만 채워도 대견할 정도다.
두 며느리들 데리고 하는 김장은 안사돈에게는 너무나 힘든 여정이었다. 그렇다고 김장을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셨다. 그렇게 도와드리기 시작한 김장이 이제는 사돈과 함께 하는 즐거운 김장 행사가 된 것이다.
예전보다 일찍 끝내고 쉴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신다. 김장을 마치면 온 가족이 모여 바깥사돈끼리 약주도 하시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저녁식사로 이어진다.
안사돈께서 웃으시면서 조용히 말씀을 건네신다.
"내년에도 꼭 부탁드립니다. 안사돈이 안 도와주시면 우리는 이제 김장 못합니다."
"당연히 저는 너무 좋습니다. 벌써 내년이 기다려지는데요?"
내년 김 장날이 기다려진다.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도록 사돈께서 언제나 항상 건강하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