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11. 봄이 되면 다시 피는 풀꽃으로

by 마리혜

#당신은 이름 없이 나에게 오면 좋겠다_여뀌


물에게 ‘사랑해’, ‘감사해’ 하고 말해 주면 물은 가장 아름다운 결정체를 보여 준다고 한다. p63


여뀌는 한해살이 식물로 길가에 흔한 풀이다. 식용으로는 먹지 않지만, 잎과 줄기는 항균 작용이 뛰어나서 뿌리를 포함해 한약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관심 있게 본 적은 없지만 길가에 흔하게 피는 풀이라고 한다. 아마 보고도 지나친 대수롭지 않은 풀로 여겼을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쓰임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우리 몸에 이로운 한약재로 쓰인다고 하니 이 세상에 필요치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자는 매일 아침 뜰에 나가 여뀌 풀에 “좋은 아침!” 하며 인사를 한다. 이 여뀌는 다른 화초들에 묻어와서 자생적으로 번진 풀이었다. 주로 물가에서 잡초로 자라는 여뀌를 화려하고 매력 있는 꽃으로 승화시킨 저자의 섬세하고 다정한 성품이 드러나 마음이 따뜻해진다. SNS에 소개되는 야생화 사진을 봐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길가에 흔하게 피는 들꽃도 사진 속 작품에는 그 자태가 오묘하기 이를 데가 없다. 아침 산책길에 만나는 달개비도 이슬 머금은 꽃잎이 무척 청초하고 아름답다.


나태주 시인이 표현했듯이 풀꽃도 자세히 봐야 이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말이 가슴에 진하게 와닿는다. 풀꽃의 이름을 몰랐을 때, 이 꽃의 이름은 뭘까 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핀다면 더 사랑스럽게 바라봐질 것이다. 저자는 여뀌에 대해 특징과 효능까지 다 알아버린 후에는 아침마다 신비감으로 나누던 인사의 깊이가 사라졌다고 한다. 다 알아버린 정보로 인해, 이름을 알기 전의 특별한 교감이 실종된 것이다. 풀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느라 시간이 멈추고 생각이 멎던 순수한 경험이 줄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라고 한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잘 안다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오히려 더 모를 수도 있다. 우리도 40년 넘도록 살면서 확실히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수없이 생기니말이다.


작가는 여뀌의 존재에 다가가는 순간 깨닫는다. 여뀌와 자신이 같은 존재임을. 똑같이 물이 필요하고, 바람에 흔들리고, 서리에 몸을 움츠린다. 겨울에는 존재계로 돌아갔다가 봄이 되면 다시 태어난다. 이런 모습들이 인간과 식물이라는 구분을 버리면, 우리가 모두 같은 생명이 흐르는 통로라고 한다. 나 역시 여뀌처럼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흔하게 피는 존재감이 없는 풀꽃 같은 이름으로. 그러나 이 글을 읽는 순간 자신감을 얻었다. 새봄이 되면 다시 피는 풀꽃으로, 어느 따뜻하고 다정한 손끝에 닿아 매력 있는 꽃으로 화려하게 피울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