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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Mar 29. 2024

나를 믿으세요

클래스 소개 : (2) 힐러

고행


    탱커에 대해 들어보니 어때? 적성에 맞을 것 같아? 응? 아직 확신이 안 선다고? 음... 하긴 나 하나 살아 남기도 힘든데, 다른 사람까지 챙겨가며 맷집 역할을 한다는 게 어렵겠지... 어떻게 보면 매우 귀찮은 일이기도 하고... 그래, 그 마음 이해해. 어디 보자. 그럼 이번에는 클래스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힐러를 소개해 줄게. 잘 들어보고 선택하도록 해. 힐러도 마음에 안 들면 아직 딜러가 남아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자 그러면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그전에 탱커와 힐러는 모든 파티와 공격대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 클래스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격하게 환영받는다는 점은 명심해 둬. 다만... 음... 다만... 아, 아니다. 어디까지 얘기했었지? 어? 뭔가 숨기고 있는 거 다 알고 있다고? 숨기지 말고 다 얘기해 달라고? 아~ 그게 말이지... 크 이걸 말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특별히 알려주는 거니까 혼자만 알고 있어야 돼?


    두 클래스 모두 레벨 업이 힘들다 보니 인구수가 매우 희박해. 그래서 모험가들 사이에서 귀족으로 불린다~ 이 말씀! 하지만 보상과 명예가 확실하다 보니 지원자는 항상 넘쳐나는 것이 현실이야. 즉 저 레벨은 바글바글한데, 실력 있는 상위 모험가는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그 수가 매우 적은 클래스라는 거지! 하지만 발상을 전환을 해보면, 어쩌면 진정한 블루 오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끝까지 해내기만 한다면 말이야!


    어쨌든 탱커, 힐러 지원자들 중에 많은 중도 하차자들이 '유튜브'나 '브런치스토리'같은 확장팩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안 해본 사람은 그 고행의 길이 얼마나 힘든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것 같기는 해. '그래도 도전은 저 레벨의 특권 아니겠어?'...라고 말했다가 '열정페이', 'N포 세대', 최근의 '대퇴사 시대'까지, 대형 탈퇴사건이 몇 차례 휩쓸고 지나간 이후로는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고 입 닫고 있는 상황이기도 해. 


    지금은 도리어 저 레벨 탱커와 힐러들을 우쭈쭈 하며 육성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거지... 아직 정신 못 차린 일부 고인 물 모험가들 사이에서 '꼰대'라는 새로운 클래스가 생겼다는 정보도 있는 것을 보면, '원더랜드'는 그만큼 살아있는 세상이라는 말씀. 많은 새로운 클래스가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어. 이것들은 나중에 신규클래스에서 따로 소개해 줄게. 그럼 이제 진짜 힐러 클래스에 대한 소개를 시작할게. 잘 들어.


클래스 소개 : 힐러 <나를 믿으세요>



    '힐러'는 기적을 일으켜 파티원의 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을 치료하며, 재활로 전투불능 상태를 회복시키는 것이 기본 임무라고 할 수 있지. 기적을 일으켜야 하다 보니 대부분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고 있어. 그래서 성직자가 많아. 그러다 보니 로브나 사제복 같은 천으로 된 의복을 많이 착용하고, 의미 없는 살생을 엄격히 금지한다는 제약으로 날카롭고 뾰족한 무기는 쓸 수 없어. 그래서 지팡이나 망치 같은 둔기의 숙련도를 높이지.


    전통적인 관습(인습)에 따르면 탱커가 아버지로, 힐러가 어머니로 대변되는 성향이 강해서 과거에는 대부분 사진과 같은 자애로운 여성의 모습으로 많이 그려졌지. 그런데 요즘 같은 시대에 성별에 따라 클래스를 구분하는 어리석은 짓은 안 하겠지? 자기의 정체성을 잘 찾으라고... 그래야 자아실현을 통해 상위 모험가로 가는 여정이 그나마 쉬워질 테니까.


    얼마 전까지 생명연장이 힐러의 주 임무여서 다치고 상처 입는 파티원을 빠르게 잘 고치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었는데, 최근에는 방금 말했던 자아실현, 나 다운 삶에 대한 인식이 모험가들 사이에 많이 퍼지게 되면서 대미지 자체를 안 입는 것이 트렌드가 됐어. 그래서 대미지를 흡수하는 보호막을 치는 힐러, 저항력을 높여 대미지를 줄이는 힐러, 대미지를 파티 전체에 조금씩 나눠서 받게 하는 힐러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어. 


클래스 소개 : 힐러 <힐링>


    2010년대 업데이트 버전부터 새로운 트렌드가 자리 잡았는데, 바로 '힐링(치유)'이야. 생명 연장, 질병 치료, 재활로는 풀리지 않는 피로도라는 새로운 개념의 스탯이 적용되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해. 무한 경쟁으로 인한 '만성피로', '공짜야근',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대변되는 '피로 공화국' 업데이트 패치로 많은 모험가들이 정신적 대미지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지. 


    물론 '원더랜드'는 채찍만 주지는 않았어. 그래서 당근으로 제시한 것이 '힐링'이었는데, 운영진에 따르면 이 패치는 사실 실패작이었다고 해. 특히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의 해결이 아닌 임시방편이었을 뿐이고, 실질적인 문제해결이 아닌 단순한 현실도피였다는 비판이 가장 많았지. 음... 그때 가장 선호된 '힐링'이 자연과 함께하는 캠핑,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 요가,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자기 스스로 환기시키는 여행이었어.


    '힐링'에 특화된 새로운 힐러가 대두됐는데, 영국 켈트족 문화에서 차용된 '드루이드'라는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주술사 콘셉트가 한동안 인기 있었지. 사실 드루이드는 힐링과는 거리가 먼 저주와 점성술로 부족을 이끌던 부족장 혹은 샤먼의 성격이 강했지만 '원더랜드'가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될수록 '자연 속에서의 힐링'이 대세가 되면서 자연을 이용, 관장한다는 이미지 때문에 '힐러'의 범주에 속하게 되었어. 


클래스 소개 : 힐러 <惡質>


    물론 힐러 클래스에도 악질은 존재해. 우선 각종 사기꾼들이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난립했지.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혹은 위조된 건강기능식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했어. 요즘은 뒷광고라는 새로운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 같더라고. 건강정보 프로그램에서 몸에 좋다는 특정 성분을 방송하면, 같은 시간대에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수법이었다고 하더라고. 이제는 워낙 알려진 수법이 돼서 속는 사람이 드물긴 하지만...


    그리고 악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탱커와 힐러 클래스 중 상위 모험가가 워낙 소수이다 보니, 유명한 탱커와 힐러에게 의뢰가 몰리는 상황이 발생했어. 그래서 그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구쳤고, 전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며 승승장구했지. 일부는 진정성을 가지고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서 성공한데 반해, 대부분은 온갖 자격미달, 위조 사실이 세상에 까발려지며 자숙기간을 갖겠다는 이유로 조용히 사라지기도 했어. 안 그래도 부족한 힐러가 점점 더 귀해졌지.


    그래서인지 요즘 가장 시끄럽고 핫한 뉴스가, 부족한 힐러 숫자를 채우겠다는 '의대정원확대' 정책이야. 정말 양쪽이 모두 극단을 향해 지금도 가고 있어. 운영진도 어떻게 할지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대립이 첨예해졌다고 하더라고. 다른 모험가들도 한쪽 편을 들었다가 불이익을 당할까 봐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같더라. 익명이라는 얍삽한 스킬을 이용하는 '키보드 워리어'라는 신규클래스들만이 현재 게시판에서 상대편을 헐뜯는 것 같더라. 어쩌면 조만간 자진 탈퇴뿐만 아니라, 계정 강제삭제 조치도 이뤄질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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