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행을 끝내고 아프리카 대륙으로 입성이다. 다합을 이집트의 첫 여행지로 정했다.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했지만 아직 요르단에서 보았던 베두인들이 많이 보이고 종교적으로도 이슬람 문화권이었다. 오만에서 중동여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들의 언어와 옷차림에서 생소함을 느꼈다면 이집트의 느낌은 생소함보다는 이전 중동의 나라들과 익숙함에 가까웠다.
한 가지 달랐던 점은 고대문명이 시작됐던 곳답게 유적지와 유물이 정말 많았다는 점이다.
소위 예전에 강대국이라 불리던 나라들의 박물관에 가면 이집트의 유물들이 꼭 자리하고 있었다. 나중에 유럽여행을 하면서 이집트 유물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고대문명이 시작된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가만히 멈춰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던 것들이 많았다. 다합의 바다가 그랬고 나일강의 노을이 그랬다. 왕들의 무덤이 그랬고 박물관의 미라가 그랬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2023년 12월 말부터 2024년 1월의 이집트 여행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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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
요르단의 아카바에서 밤 배를 타고 이집트의 누웨이바를 거쳐 다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일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카이로를 이집트의 마지막 여행지로 정했다.
누웨이바 항구에 내려서 미리 예약을 해놓은 택시를 타고 다합으로 갈 수 있다.
우리 같은 여행객은 요르단에서 이집트로의 입국은 많이 안 하는 듯하고 반대로 이집트 누웨이바에서 요르단 아카바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많은 다합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이 있는 곳은 샤름 엘 셰이크라는 도시다. 보통 카이로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서 국내선을 이용해 샤름 엘 셰이크 공항으로 와서 약 한 시간가량을 택시를 타고 다합에 오는 루트를 많이 이용한다.
샤름 엘 셰이크에서 후르가다로 가기 위해서는 수에즈만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의 중요 도시 중 하나인 룩소르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아스완에서 많이 가는 아부심벨을 가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카이로로 향하는 크루즈가 있다면 그걸 타려고 했다. 안타깝게도 카이로행 크루즈는 없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반대방향으로 크루즈를 타고 이동했다. 아스완에서는 미련 없이 공항으로 가서 국내선을 타고 카이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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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이집트에 관광을 목적으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내고 30일 체류가 가능한 비자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세계여행 중 처음으로 공항이 아닌 배를 타고 항구로 입국했다. 아카바에서 배를 탈 때부터 누 웨이바 항구에 도착해서 항구밖으로 나올 때까지 우리는 특별대우를 받았다. 몇 백 명이 탄 배에 우리 두 명 포함 딱 세 명뿐이던 관광객은 따로 관리를 받았다. 배에서 내릴 때도 제일 먼저 따로 에스코트해줘서 내렸다. 우리의 여권만 걷어가서 출입국 절차와 이집트 입국절차를 처리해 줬다. 새벽에 이동하는 힘든 일정이었음에도 그나마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여행자들의 무덤 다합에서 겨우 살아 나와서 유럽인들의 휴양도시로 유명한 셰름 엘 셰이크와 후르가다에서 가성비 좋은 올 인 클루시브 호텔을 짧게 즐겼다. 시간의 제한만 없었더라면 이곳에서 발이 묶였을지도 모르겠다.
이집트에서는 도시마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크게 없었다. 오래전부터 있던 고대도시의 관광에 대한 정보가 많았고 그에 따른 투어도 많았다. 카이로 여행까지 마치고 들었던 생각은 좀 더 재밌고 유익한 여행을 위해서는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집트는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천지차이다. 도시마다 어떤 투어를 할지 생각해 둔다면 이집트 일정 짜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는 총 25박 26일 동안 이집트의 6개 지역을 여행했다. 다합에서의 일정이 짧았던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이집트의 고대 유적과 신비로운 유물을 구경하며 그들의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이집트 사람들을 대하면서 나를 좀 더 성숙하게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다합 (Dahab)
세계여행자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았다. 특히 한국사람들에게는 도저히 그냥 짧게 지나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호텔이나 근사한 리조트가 있는 건 아니지만 먹고살만한(?) 숙소와 인근 시장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식재료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인 여행객이 많아서 특히 커뮤니티가 잘 이루어져 있다.
비록 한식집은 없었지만 중식집도 있고 일식집도 있고 태국식 레스토랑도 있다. 이슬람 문화권이기에 돼지고기를 구하기 힘들어도 라면과 캔 김치도 구할 수 있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오래된 다이빙샵이 있어서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을 배울 수 있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수많은 게스트하우스가 있어서 한식도 해 먹고 많은 정보들을 나누며 엠티라도 온 듯 매일을 즐길 수 있다.
라이트하우스라고 불리는 다이빙포인트를 중심으로 해안가에는 많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그곳에서는 따뜻한 햇살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함께 여유로이 책을 읽고 맛있는 커피 한 잔을 할 수 있다.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던 여행 중 만난 동생부부는 세계여행을 멈추고 다합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프리다이빙 마스터로서 “퐁당”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2024년 말에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 만났는데 행복해 보여서 좋았다. 한국사람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거의 30곳 가까이 된다고 하니 한국인들이 지내기에는 정말 괜찮은 환경인 것 같다.
수영을 못하는데 프리다이빙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믿지 못했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나니 가능한 일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부터 시작해서 1월 1일에 수료증을 받았다. 비록 자세는 엉망진창이어도 2분 넘게 숨을 참고 15미터를 잠수할 줄 알게 되었다.
동남아보다도 저렴한 수강료와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바다에서 다이빙이 가능하다는 점이 다합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매력인 거 같다.
셰름 엘 셰이크 (Sharm el-Sheikh)
셰름 엘 셰이크는 다합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휴양지이다. 해안선을 따라 5성급 호텔들이 늘어서 있다. 이제 막 프리다이빙을 배운 참이라서 바다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다이빙슈트 없이는 차가운 1월의 바다여서 호텔의 야외풀장에서 놀았다.
셰름 엘 셰이크에는 독특한 분위기로 유명한 파르샤 카페 (Farsha Cafe)가 있다. 다합에서도 유명해서 꼭 한번 들리는 카페이다. 알라딘 느낌의 카페로 알려져서 한껏 꾸민 채 사진 찍으러도 많이 온다. 규모도 엄청 큰데 사람도 엄청 많아서 시끌벅적한 분위기다. 잠깐의 대기시간이 있었고 입장해서는 무조건 모르는 사람들과 합석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다.
후르가다 (Hurghada)
셰름 엘 셰이크와 후르가다 두 도시 모두 가성비 올 인 클루시브 호텔이 유명한데 내가 기대했던 진정한 올 인 클루시브는 아니었다. 레스토랑도 일부만 이용할 수 있었고 룸서비스도 추가 비용이었다. 숙소비용의 차이도 꽤 컸지만 신혼여행으로 갔던 리조트 내의 모든 비용이 포함된 멕시코 칸쿤의 호텔 같진 않았다.
그럼에도 가성비가 좋아서 이집트의 휴양도시를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는데 역시나 많은 유럽인들이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룩소르 (Luxor)
세계최대의 야외 박물관이자 나일강이 흐르는 룩소르에 왔다. 보통은 편의시설들과 주요 관광지가 있는 동안에 숙소를 잡지만 우리는 조용한 곳을 선호해서 서안에 숙소를 잡고 룩소르를 여행했다. 수시로 나일강을 건너는 공용페리가 있는데 비싸지는 않아도 관광객과 현지인을 대놓고 차별하는 금액에 따져도 봤지만 소용없었다. 수많은 프라이빗보트가 선착장까지 가는 길에 끊임없이 영업한다.
룩소르에는 고대 이집트의 여러 왕조를 거치며 아주 중요한 도시로 성장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 카르나크신전은 현존하는 신전 중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신전이다.
룩소르에서 한국인에게 유명한 샘하우스에 가서 우리 이름으로 된 상형문자 은반지를 맞췄다. 여유 있는 사이즈로 만든 바람에 남미 어딘가에서 나의 반지와는 이별했다. 한국으로 같이 왔으면 이집트 여행 기념품으로 참 좋았을 것 같다.
카르나크 신전과 더불어 룩소르의 유명한 신전이다. 오랫동안 모래가 쌓여 15미터에 이르는 모래언덕에 묻혀 있다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원래 두 개였던 입구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는 파리 콩코르드광장에 있다. 입구 정면의 람세스 입상 하나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라고 한다.
룩소르에서 유명한 투어 중 하나가 바로 나일강의 서쪽 유적을 돌아보는 서안 투어다. 가이드 투어 말고 자유여행으로 해보려고 종일 택시대절을 알아봤는데 가이드 투어가 더 저렴했다.
우리는 룩소르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만도 아저씨에게 서안투어와 3박 4일 크루즈 투어를 예약했다. 영어가이드투어라 아쉬웠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둘러보는 것보다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 부부가 생각한 동선상 룩소르에서 카이로로 운행하는 크루즈가 있었다면 가장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남쪽인 아스완으로 운행하는 크루즈편만 있었다. 만도 아저씨에게 물어봤을 때 우리가 탔던 1월에는 운행을 안 한다고 해서 다른 시즌에는 운행을 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찾아보니 카이로행 크루즈는 보이지 않는다.
룩소르의 나일강에는 많은 5성급 올 인 크루시브 크루즈들이 정박해 있다. 룩소르와 아스완 구간은 2박 3일 동안 에드푸와 콤옴보 신전을 둘러볼 수 있는 곳에 정박을 한다. 아스완에 도착해서 1박을 더하는 3박 4일 일정의 크루즈를 이용했다.
크루즈에는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과 야외 풀장등 편의시설이 있었고, 2명이 3박을 했으니 하루에 4달러씩 총 12달러를 팁으로 내놓으라는 리셉션 직원도 있었다. 내가 줘야 할 팁을 정해줘서 당황하는 사이에 내가 못 알아듣는 줄 알고 봉투에 친절히 적어줬다.
전 날 저녁에 간단한 마술과 함께 우리를 즐겁게 해 줬던 직원에게 주는 팁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요구는 기분 나빴다.
크루즈의 마지막 날에도 이집트 여행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또 한 번 들었다.
12달러를 내고 크루즈에서 내리는데 저 앞의 세명의 짐꾼들이 괜찮다는데도 계속 우리 짐을 나눠든다. 나는 짐을 뺏기지 않으려고 하고 그들은 내 짐을 들어주려고 실랑이를 벌인다. 아주 노골적으로 돈을 달라고 한다. 도와줘서 고맙다고 주는 팁의 개념이 아니라 내 가방을 인질로 잡고 돈 내놓으라는 식이라면 나는 반대요.
아름다웠던 나일강의 모습으로 잊어본다.
카이로 (Cairo)
아스완에서 카이로 공항으로 국내선을 타고 왔다. 드디어 피라미드를 영접할 시간이 왔다. 먼저 숙소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피라미드가 잘 보이는 에어비앤비 숙소를 잡아서 창문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러 나라에 빼앗긴 유물을 제외하고서라도 너무나도 많은 유물이 있어서 박물관에 빼곡히 쌓여있다. 넓은 전시장의 중앙에 조명과 함께 단독전시해도 될만한 정교하고 아름다운 유물들이 설명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카이로에서 피라미드 다음으로 기대했던 이집트 대박물관이다. 2024년 1월에도 일부만 개장했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도 정식 개관은 못했다고 한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이집트 유물을 찾아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긴 했는데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너네 유물 돌려줘봤자 제대로 관리도 못하니까 안 돌려줄래라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이집트 “대“박물관 다운 모습이었다.
카이로에서 조금 떨어진 기자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아직도 당시의 시공방법을 찾지 못한 미스터리 한 건축물 피라미드를 볼 차례다. 매체에서 워낙 많이 봤기 때문에 감동을 못 느낄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 규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어마어마하다.
희한하게도 입구부터 계속해서 따라다닌다는 호객꾼이 별로 없었다. 잔뜩 겁을 먹고 갔는데 무난했다. 너무 비싸져 버린 입장료 때문에 어안이 벙벙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안 볼 것도 아니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고 돌아다녔다.
역시 피라미드고 스핑크스였다. 피라미드 내부도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사서 들어가 봤는데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곳이었다.
이집트 북부의 해안도시 알렉산드리아를 못 가본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주요 도시들과 투어들을 만족스럽게 여행했다. 덥지 않은 때라 돌아다니기에도 더 좋았던 것 같다.
다른 나라들 여행할 때보다 나를 돈으로만 생각하는 거 같아서 관광지마다 사람들 대하는 게 조금 힘들었는데 그것도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