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스쳐간 일들 중 자신이 하게 될 일을 마주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폴리(Foley)라는 것이 내겐 그랬다.
대학교 2학년 전공수업 중 교수님이 한 영상을 틀어주었다.
‘영화를 생생하게 만드는 사람들 ‘ 이란 주제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로 기억하는데
영화 속 장면의 소리를 더욱 실감 나게 하기 위해 다양한 재료들로 효과음을 만드는
일명 ‘폴리아티스트’에 관한 것이었다.
영상을 보는 내내 신기하다 대단하다는 감정이 마음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가 ‘폴리’에 관련된 일을 할 것이라곤.
여름방학 동안 한 녹음실에서 인턴을 마친 내게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아는 녹음실에 사람을 뽑는데 너 할 생각 있음 추천해 줄까?”라며
영상 음향에 대한 진로는 확실히 굳혔지만 갑작스럽게 이렇게 기회가 온다고?
살짝 당황했지만 기회는 올 때 잡아야 한다.
초록빛이 꽉 찬 나무들과 각자의 목소리를 뽐내는 매미의 울음소리
파란 하늘사이로 지나가는 구름, 2013년의 여름
서울의 한 지하 녹음실에서 면접을 봤다. 그리고 폴리파트에 배정을 받았다.
이렇게 나의 폴리인생은 시작되었다.
내가 처음 마주한 폴리룸 (폴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어쩌면 고물상보다 다양한 물건 존재하는
조용하고 어두운 공간이었다. 각자의 특색을 가진 출처 없는 물건들의 아이러니 한 조화가
마치 하나의 설치 미술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기서 몇 가지 소리가 만들어지는지 경우의 수를 하나 둘 세고
있을 때쯤 선배가 나에게 다가와 자신을 소개하고 폴리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폴리 파트는 크게 폴리 아티스트, 폴리 레코디스트, 폴리 에디터로 나눌 수 있어.
폴리아티스트인 내가 소리를 만들면, 폴리 레코디스트인 네가 소리를 녹음하고
소리가 장면에 맞는지 듣고 피드백을 해주면 돼. 앞으로 힘든 일이 많겠지만 잘해보자. ”
잘 부탁드린다고 꾸벅 인사를 하는 나에게 선배는 이어서 자신이 작업했던 작품들과
폴리 작업 비하인드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폴리에 대한 그의 열정이 신나서 말하는 올라간 입가에 가득
반짝 , 하고 빛나는 눈동자에 그윽하게 담겨있었다.
폴리룸 옆으로 자리한 컴퓨터와 각종 음향장비들로 채워진 공간,
내가 앞으로 녹음을 받는 ‘나의 자리’라고 했다.
학교에서 늘 사용했던 ‘프로툴즈’(녹음프로그램) , 수업시간 만져본 아날로그 믹서,
습관처럼 늘 껐다 킨 스피커 등이 그날따라 왜 이렇게 새롭게 보이던지.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마주하니
이유 모를 긴장감과 압박감 그리고 묘한 설렘이 내 마음속을 서성였다.
그때는 알았을까,
폴리부스에 쌓인 물건만큼 컴퓨터에 녹음된 트랙수만큼
무수한 소리들이 나를 즐겁게 하고 괴롭히고 고민하게 할 줄.
이윽고 녹음이 시작되었다.내 인생 첫 영화 첫 폴리 레코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