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혼자 울다 지쳐 잠들고 이른 아침 눈을 뜨니 온몸이 뜨거웠다. 열이 39도에서 40도 사이를 오르내리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딱히 증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고열이 지속되어 몸이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근처 병원으로 가서 독감 검사를 하고 해열제를 먹고 잠시 누워 수액을 맞았다. 검사 결과 독감은 아니라고 했지만, 왜 고열이 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해열제를 먹은 뒤 아주 잠시 열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내 열이 올라 40도를 넘었다. 다음 날도 같은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도 같았다. 해열제를 먹고 수액을 맞으며 두 시간 정도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얼굴이 붓고 입술이 터져 있었다.
“열이 너무 높아서 힘드실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네, 좀 힘드네요.”
3일째 되는 날도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같은 병원에서 역시 40도가 넘는 체온으로 의사와 마주 앉았다.
“어제까진 안 보였는데 이제야 보이네요. 편도염이에요. 그동안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이제 찾았으니 금방 나을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똑같이 해열제와 수액을 맞았다. 그리고 일주일 치 편도염 약을 챙겨 혼자 도로를 걸어 나왔다.
터벅터벅 혼자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 불현듯 생각났다. 그의 마지막 서울대학교 병원 진료일에 들었던 말. “앞으로 평범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마세요.”
담당 교수와의 진료를 마치고 안내받은 곳은 호스피스를 상담해 주는 곳이었다. 어떤 곳인지 알지도 못한 채 알려준 길을 따라 도착한 곳에서 어느 상담사가 나를 맞아 주었다. 나는 이미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린 자국이 가득했고, 그녀는 익숙하다는 듯 책상 위 휴지를 뽑아 나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차트를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 너무 젊으신데... 힘드시겠다.”
여기 병원의 호스피스는 이래서 안 되고 저기 병원의 호스피스는 저래서 안 되고, 말하는 호스피스는 다 이용객들로 꽉 차서 갈 수 없는 상황이고, 갈 수 있다 하더라도 해당 병원 환자를 우선적으로 받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며 지역 내 호스피스를 개인적으로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녀의 말은 나의 귀를 타고 흘러 저기 저 문을 넘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나에 대해 물었다. 몇 살인지, 언제 결혼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하나둘 물음에 답하며 진료실에서 다 하지 못했던 하소연을 했다. 왜 이런 병이 그에게 찾아왔는지,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만 했는데 도대체 이게 뭐냐고, 그럼 이제 나랑 아이는 어떻게 하라고 하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처음 보는 그녀에게 쏟아냈다.
그녀는 아주 담담히 말했다.
“너무 젊어서 안타깝지만 언젠가 모두가 겪어야 하는 일이에요. 여기 오시는 모든 분이 다 그렇게 말씀하세요. 근데 조금만 지나면 다들 일주일에 한 번 웃다가 이틀에 한 번 웃고, 그러다가 이제 매일 웃게 될 거예요. 이제 앞으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마시고 그냥 하루하루 견뎌내세요.”
“왜 평범하게 살 수 없죠?”
“이미 평범한 경험이 아니잖아요.”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안내 책자를 받아 들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녀의 말은 나를 더 충격에 빠뜨렸다. “우린 이제 평범할 수 없다니” 그럼 이 세상에서 바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병원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10분 남짓의 시간 동안 그 말이 내 양쪽 귀를 부지런히 괴롭히고 있었다. 그가 떠난 뒤 난 아주 호된 몸살을 앓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지 못했다. 알고 싶지 않았다.
얼마 뒤 그의 생일을 맞아 장례식에서 고생해 준 그의 친구들을 불러 저녁을 대접했다.
엄마가 여러 음식을 미리 준비해 줬다. 그의 친구들은 납골당에 들러 그에게 인사를 하고 난 뒤 집으로 도착했다. 나도 오랜만에 활짝 열어둔 우리 집의 문이었다.
하나둘 모여든 친구들은 이내 술을 한잔씩 기울이며 음식이 맛있다는 칭찬을 보태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얼마 전에 꿈에 나왔다니까요.”
“어? 나는 장례식장에서 잘 때 잠깐 본 것 같았는데..”
“와 진짜요? 전 아직 한 번도 못 봤는데.. 꿈에서 뭐 했어요?”
“그냥 대학교 다닐 때랑 똑같았죠, 같이 술 먹고 둘러앉아서 놀고~ 진짜 그때 같았어요”
“대학교 다닐 때 진짜 재밌었는데”
그의 대학교 이야기, 고등학교 이야기, 군대 이야기 등 나를 만나기 전 그의 일상을 듣고 있으니 그가 없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집을 들어설 때 들고 들어온 선물은 삼촌들이 주는 보미의 선물이라고 했다.
“이제 무슨 일 있으면 저희한테 연락하세요. 연락처 다 있죠?”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잘 전해줄게요.”
그의 친구들은 음식을 깨끗하게 비우고 괜히 나를 힘들게 했다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다녀간 자리를 치우며 생각했다.
‘아, 그때 그 상담사가 했던 말이 이 뜻이었겠구나. 평범할 수 있을 거란 기대... 그래, 난 지금 평범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네. 남들한테는 다 있는 남편이 나에게는 없고 아이에겐 아빠가 없고 그의 친구들에겐 그가 없네. 젠장, 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오랜만에 활짝 열린 우리 집 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그 안에서 나는 또 그치지 않는 울음을 삼켜냈다.
언제 그칠지 모를 그 눈물이 싫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