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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타르트 Oct 27. 2024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시간은 가혹하게 흘러간다. 남아있는 사람은 그 흐름에 맞춰 살아내야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이었다. 사망신고를 하러 동사무소에 가야 했지만, 그 절차가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다. 그의 이름을 서류에서 지우는 것은 그가 내 삶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 과정 속에서 눈물을 억누르며 버텼지만, 감정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미루고 미뤄 한 달이 되는 날, 작은 형님에게 부탁했다.

“형님, 저는 도저히 못 갈 것 같아요. 형님이 좀 해주세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작은 형님이 동사무소에 다녀온 뒤 연락이 왔다.

“오늘 가니 하루가 지났네. 근데 난 비동거인이라 괜찮대. 네가 갔으면 벌금 냈을 뻔했어. 다행히 잘하고 왔어”

“네, 감사해요.”

한 달 안에 사망신고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낸다니... 슬픔을 느낄 겨를조차 주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더 많이 남아 있었다.


집과 차, 주식까지 모두 정리해야 했다. 아이가 미성년자라 시부모님을 특별대리인으로 정해야 했고, 법무사의 도움으로 상속 절차를 마무리했다.

남편 명의로 되어 있던 두 대의 차를 볼 때마다 원망스러웠다. 왜 모든 걸 그의 명의로 해 두었을까. 명의이전을 위해 필요한 서류들을 떼어야 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들을 확인할 때마다, 그 현실이 낯설고 버거웠다. 혼인관계증명서에 적힌 ‘폐쇄’라는 단어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만 같았다.

서류를 들고 차량등록사무소에 갔다. 그곳은 신차 출고로 분주했다. 나는 명의이전 서류를 작성하고, 순서를 기다리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괜찮다, 괜찮다’며 눈에 힘을 주고 서류를 뒤집어 놓은 채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띵동.”

내 번호가 호출됐다. 중년의 여성 직원은 사무적인 표정으로 서류를 받았다.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하며 방황하는 눈동자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서류를 확인하더니 아무 말 없이 휴지를 건네주었다. 그 휴지를 받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애써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의 말 없는 위로가 내 마음에 더 크게 다가왔다. 수없이 들었던 위로의 말들보다도, 그 눈빛 하나가 나를 더 깊이 위로했다.

그녀도 눈물을 훔치며 혼잣말로 말했다.

“아이고, 아직 아기도 너무 어리다.”

차량 두 대 모두 명의이전이 완료되었다는 차량등록증을 건네받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차에 올라탔다. 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또 한 번 눈물을 삼켰다.

그가 떠난 후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깊은 위로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이 감정은 나에게 놀라웠다. 가족들은 각자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느라 바빴고, 친척들은 나에게 직접 묻지 못한 채 부모님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안부를 대신 물었다. 친구들 또한 나를 위로하지 못하고, 그저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 남편의 먼 친구들이나 나의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의 이야기가 떠돌아다닌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나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모든 명의 변경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해냈다. 그 절차마다 그의 이름이 지워지는 것은 또 다른 상처였다.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매번 마주해야 했으니까.


비대면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했지만, 대부분은 직접 방문해야 했다. 서류를 제출하면 사람들은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서류를 확인했다. 그들의 눈빛은 늘 같았다. KT를 방문했을 때도 비슷했다. 집 인터넷 명의를 변경하며 남편의 휴대폰 번호도 없애주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그 번호만큼은 남겨두고 싶었다. 남편의 휴대폰에는 아직 소식을 접하지 못한 지인들이 남겨놓은 문자와 그리움 가득한 댓글들이 있었다. 그 번호마저 없어진다면, 정말로 그가 사라진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그의 번호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카카오톡에 새 친구로 나타나는 걸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남편의 번호에 대한 휴대폰 요금을 내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그의 계정과 우리가 함께한 사진이 남아있다. 전화를 걸면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라는 안내음이 나오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그의 이름을 내 연락처에 남겨두고 싶다. 그 번호가 지워지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 번호는 내 곁에 그가 있었다는 마지막 흔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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