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나나 팔자가 왜 이 모양이니?”
“과부 팔자 타고난다더라”
“팔자가 이런데 뭐 어쩌겠니”
“그냥 내 팔자다 하고 살아야지”
그는 분명 이 세상에 없다. 나는 계속해서 모른 척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썼지만, 마음은 매번 그의 빈자리에 무너졌다. 재형이 떠나고 난 뒤, 주위에서 ‘팔자’ 이야기를 너무 자주 들었다. 그저 어른들의 지나가는 말처럼 들렸지만, 나에겐 바늘같이 가시 돋친 말이었다. '팔자라니?' 내 최선을 무시당한 기분이었다. 나는 나의 인생에 충실하게 살았고, 분명 재형도 그랬다. 우리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었고,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고,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열심히 살면 꼭 행복한 날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그의 빈자리가 모든 것을 잠식한 지금,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걸까?' 그리고,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건 아닐까?' 만약 이게 내 팔자라면, 내가 그렇게 애써온 시간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냥 팔자가 그렇다니 뭐 어쩌겠니…” 그들이 던지는 그 말은 지금 내게 더없이 큰 상처로 다가온다.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내가, 이렇게 혼자 남아 있다면… 그렇다면, 차라리 열심히 살지 말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팔자대로라면 애초에 힘을 빼고 살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그 사실이 나를 가장 괴롭게 한다.
보미의 첫 돌을 맞아 1년 동안 잘 자라준 아이와, 치료를 받으며 아이를 돌보느라 고생한 재형과 카페 오픈으로 바쁘게 보낸 나를 위해 우리 세 가족은 괌 여행을 다녀왔다. 아주 저렴한 특가 비행기를 예매하고 복직을 한 달 앞둔 재형에게 쉼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두 달 전 미리 예약을 해두고 세 식구 모두 새 수영복과 여름옷을 사며 들뜬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렸다. 매장은 직원에게 맡겨두고 온전히 세 명이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재형은 바닷가에서 보미를 안고 웃었다. 햇빛 아래서 반짝이는 그의 머리카락과 그 사이로 들리는 보미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런 모습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남기며 우리의 시간을 담으려 애썼다. 그 순간의 행복을 어떻게든 붙잡고 싶었다. 그때 우리는 온전히 그 순간에 충실했다. 미래를 두고 기대감이 가득 찼고 그때의 나는 우리가 앞으로도 이처럼 행복할 줄로만 알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재형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다음엔 더 길게 오자. 조금 더 쉬고 조금 더 놀고.”
“그래, 난 너무 좋지! 보미 생일 기념으로 매년 해외여행 다녀보자.”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그 말은 우리의 미래를 약속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때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여행이라는 것을. 그 '다음'이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요즘은 문득문득 생각한다. 내가 정말 최선의 선택을 했던 걸까? 재형이 떠난 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결과가 지금이라면… 차라리 덜 열심히, 더 자유롭게 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재형과 나는 서로가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 삶을 꿈꾸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미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가 없는 지금,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할까?
그때는 단순히 '앞으로'를 보고 열심히 살아왔지만, 이제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와 함께하는 미래는 더 이상 없고, 그로 인해 나는 지금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늘 최선을 다해 살면 그 대가로 행복이 따라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이 산산이 부서진 지금,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다.
모든 게 무너졌다. 내가 살아왔던 방식, 열심히 살았던 이유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이라면 나는 틀렸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행복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행복은 재형 없이도 가능한 것일까?
열심히 살지 말 걸 그랬다. 어쩌면 그게 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