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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타르트 Oct 27. 2024

도대체 내 인생이란 건 뭐죠?

그가 떠나고 난 뒤로, 주변 사람들은 내게 하나같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젠 네 인생을 살아야지."

"재형이도 네가 행복하길 바랄 거야."

"언젠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해."



그들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나를 위로하려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했을 테고, 아마도 나도 언젠가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 말들은 나에게 칼끝처럼 다가왔다. 위로의 의도로 건네진 말이었지만 그 말들이 내 가슴에 박히며 날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내 인생을 살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일까?’ 

재형이 내 삶의 일부였던 그 시간 동안, 나는 진정 '내 인생'을 살았던 적이 있기는 했던 걸까?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함께 살아왔고, 그가 없는 내 인생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묻고 싶었다.


나는 그가 없는 삶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재형과 함께한 시간은 나에게 너무나 큰 의미였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의 모습보다 그와 함께 나눴던 순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나의 삶 속에서 차지했던 공간은 내 인생의 대부분이었다. 이제 그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내게 나만의 인생을 찾으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말을 되새기며 나는 오랜만에 그와 함께 걸었던 공원을 혼자 걸었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나무들이 흔들리며 세상은 여전히 평범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그런데 나는 그 모든 평범함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그가 없는 세상은 나와는 상관없는 장소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안에서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와 함께 걸었던 이 길을 혼자 걸으니 모든 것이 너무나 달라 보였다. 이 길을 함께 걸을 때는 몰랐던 풍경들이 그가 없는 지금 너무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와 함께라면 그저 지나쳤을 나무들, 바람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이제는 하나하나 마음에 찔러왔다. 왜 모든 것이 여전히 이렇게나 평범할까? 내 세상은 무너졌는데 왜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가는 걸까? 그가 없는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남편의 친구와 저녁을 먹게 되었다. 매년 잊지 않고 안부 인사를 건네주는 유일한 남편 친구이다. 장례를 치를 때는 너도 나도 나와 아이를 잘 챙기겠다고 했던 친구들은 이제는 연락조차 없다. 그렇다고 서운한 마음도 없다. 다들 자신의 가족과 삶을 챙기느라 한창 바쁜 시기라는 걸 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잘 지내시죠? 시간 되면 술 한잔 해요.” 그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나는 그날 무거운 마음으로 그를 만났다. 우리의 대화는 다정했고 그는 조심스럽지만 내가 느끼는 슬픔을 존중하며 진심으로 위로해 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그냥 그럭저럭... 잊어버린 채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남편이 오랜 출장 중이라고 생각하면서요. 그게 훨씬 덜 아프거든요.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매 순간 떠올리면 도저히 일상생활을 할 수 없어요”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내가 씩씩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래도 대단하세요. 혼자서 아이도 잘 키우고...”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대단하다는 말을 듣는 게 그리 좋은 건 아니에요.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말을 쉽게 하죠. 하지만 정작 제가 이 일을 겪고 나니까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배우자가 죽었다고 따라 죽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배우자를 찾아 떠날 것도 아니잖아요. 그저 내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하며 살아갈 뿐이에요.”

그는 잠시 침묵했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내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젠 네 인생을 살아’라고 자주 말해요. 그런데 전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남편과 함께 할 때만 내 인생이고 남편이 없다고 내 인생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그의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하게 되는 이야기는 마음 깊이 담아두었던 진짜 나의 이야기이다. 둘도 없던 친구 사이였던 그와 그의 추억 속에 내가 잠시 끼어들어 둘의 추억을 엿듣게 되기도 하지만 나에게 재형을 대신해 그를 원망할 수 있게도 해주고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창구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재형의 부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내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아마도 오랫동안 찾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그가 없는 세상에서 내가 나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은 길고 아플 테지만 결국은 나만이 답을 찾아야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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