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새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었다. 이불속에서 웅크리고 숨을 죽인 채, 마치 동굴 속에 혼자 갇힌 사람처럼, 아무도 나를 보지 않기를 바랐다. 밖에서는 여전히 삶이 흘러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어나고, 식사를 하고, 일을 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겠지. 하지만 나의 시간은 그 모든 흐름을 멈춰버렸다.
재형이 떠난 후, 나는 더 이상 밖으로 나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조차 버겁기만 했다. 누군가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까 두려웠다. 그들의 선한 의도마저 내겐 독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었다. 이불속은 나만의 동굴이었다. 차갑고 어두운, 하지만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곳.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그냥 이렇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마치 반복되는 꿈처럼 흘러갔다. 아침이 되면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나를 깨우려고 했지만 나는 그 빛을 외면했다. 밤이 오면 모든 것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소리도 밖에서 흘러가는 시간도 나를 향한 세상의 기대도 그 어둠 속에서는 희미해졌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홀로 숨 쉬며 버티고 있었다.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런 날들 속에서도 휴대폰 벨소리가 가끔 울렸다. 친구와 지인들이 나에게 연락했다. "너도 이 세상에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소리들을 외면했다. 울리는 휴대폰을 덮어둔 채 스스로를 더 고립시켰다. 마치 그 소리들이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져, 더욱 깊이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홀로 버티고 있었다.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면서도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았다.
이불속은 마치 시간이 멈춘 공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도 안다. 시간은 아무렇지 않게 흐르고 있다는 걸. 시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어쩌다 들리면, 나도 모르게 그 소리를 세고 있곤 했다. 그러나 나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도,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누군가 나를 찾아와 문을 두드리면, 나는 조용히 숨을 죽였다. 나를 찾지 못하길 바랐다. 그들의 시선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내 모든 약함을 볼까 두려웠다. 나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불을 더 꽉 껴안고 있었다.
이불속에 갇혀 있던 어느 날 문득 그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를 만나기 전 나는 혼자서도 씩씩하게 혼자여서 당당하게 세상 속에 있었지만 그를 만나고 그는 늘 나에게 이제 무슨 일이든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함께’ 하는 거라는 말을 계속했다.
“힘들면 나한테 말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같이 이겨내자. 우리 부부잖아. 뭐든지 함께 해야 하는 거야. 알겠지?”
그의 눈빛과 목소리는 따뜻했고 난 그 진심이 담긴 한마디에 어느새 그에게 점점 기대고 있었다. 재형이 곁에 있던 그때의 나는 그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나를 단단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목소리는 기억 속에서만 들려올 뿐이었다. 나는 혼자가 되었고 그의 눈빛도 그가 해주던 위로의 말도 이제는 더 이상 내게 닿지 않았다. 모든 게 달라졌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 나는 스스로를 더 감싸기 위해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차갑고 무거운 이불속 내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때로는 울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소리마저 내게 너무나 낯설었다. 오랫동안 그를 위해 참고 견뎌왔던 시간들, 그리고 이제는 그가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버거웠다. 이불속에서 나만의 슬픔을 곱씹었다. 누구도 나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점점 더 깊이 숨어들었다.
사람들은 내게 "이제 나와야지. 이제는 네 삶을 살아야지."라고 말했지만, 그 말들이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내가 이 안에서 얼마나 깊은 상처와 싸우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이 이불을 덮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다.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그 동굴 속에 있었다.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언제쯤 이 이불을 걷고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지금은 그저 그 답을 알지 못한 채, 이 고요한 어둠 속에서 버텨야만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