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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근타르트 Oct 27. 2024

고래의 꿈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납골당에 매일 갔다. 울었다. 왜 혼자만 갔냐고, 나도 데려가라고 원망했다. 앞으로 다가올 내일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한없이 버겁고 두려웠다.

내가 마음 편히 울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었다. 그렇게 울다 지쳐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는 떠났지만, 남은 사람들은 나에게 자꾸 물었다. 혹시 꿈에 그가 나오진 않았는지. 그때마다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 번도 내 꿈에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래, 잘 갔나 보다. 이제 네가 걱정할 필요 없어,”라고 말했다. 마치 내가 걱정을 멈추면 그가 편히 떠날 수 있다는 듯. 하지만 그런 말들이 오히려 내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마음을 놓아야 한다는 것도, 그를 보내줘야 한다는 것도 버거웠다.


그러나 어느 날, 난 여느 때처럼 그저 침대에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꿈에 나왔다.

이건 분명 꿈이었다. 하지만 마치 현실 같았고, 현실보다 더 생생했다. 그는 내가 좋아했던 티셔츠를 입고,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헐레벌떡 밖으로 뛰어나갔다. 하지만 문을 열기 전, 잠시 멈칫했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그가 다시 올 수 있나?

"어? 오빠?" 

"빨리 와." 그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나는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분명 그였다.

그는 눈에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며 나를 마주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데이트하고 싶어서 왔어. 괜찮지?"

꿈속에서도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선명했고, 이런 꿈을 꾼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가 떠난 후에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시 생생한 꿈 속에서 마주할 줄은 몰랐다. 나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 그도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의 손이 나의 손을 잡았다.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가 너무나도 현실 같았다.

"내가 좋아했던 곳에 가고 싶은데, 어때?"

"좋아." 나는 기꺼이 그의 손을 잡고 차에 올랐다.

그는 자주 가던 바닷가로 나를 데려갔다. 그가 좋은 일이 있을 때,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늘 찾았던 곳이었다. 그에게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그곳은 그의 마음을 달래주는 안식처였다. 그리고 그 안식처로 나를 데려온 것이다.

"여기 오고 싶었어?"

"응, 바다가 보고 싶었어." 

나는 그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가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내 눈앞에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가 천천히 나를 끌어안았다.

"나 괜찮아. 그러니까 너도 괜찮아질 거야. 미안해."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나는 그의 품에서 울지 않으려 애썼다.

"오빠, 진짜 괜찮아?" 

나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여전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응, 이제 좀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아." 

그는 나지막이 대답하며 나와 나란히 서서 바다를 바라봤다. 살랑이는 바람이 우리 사이를 지나갔다. 그가 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고래들 보여?"

순간 어디선가 수많은 고래가 파도 위로 나타났다. 난 깜짝 놀라 고래와 그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 고래들은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며 한없이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가 보여주려 했던 건 이거였을까? 나는 그가 어떤 의미를 담고 나에게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방문을 열며 엄마가 나를 깨웠다.

"이제 일어나. 응? 일어나서 밥 먹어."

그 소리와 함께 그는 고래 떼 사이로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침대 위에 앉아 멍하니 그가 사라진 바다를 떠올렸다.

"아니, 왜 지금 깨워… 하필 지금."

나는 다시 그를 만나기 위해 눈을 감았지만, 그는 더 이상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49재 전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와 주었다. 아주 건강하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그 이후로도 힘들 때마다 나는 그날의 꿈을 떠올렸다. 어두운 날, 잠시 스며드는 햇살처럼 그는 나에게 잠시 다녀간 것이었다. 마지막 데이트를 하고 싶다는 그의 말은 여전히 내 가슴에 깊이 남아있다.


49재가 지나고 엄마와 아빠가 물었다.

"혹시 재형이 꿈꿨니? 김서방이 꿈에 나왔어?"

"응."

"뭐라고 해? 어떤 모습이었어?"

"그냥, 나랑 마지막으로 데이트하고 싶어서 왔대. 아프기 전 모습이던데, 좋아 보였어."

나는 꿈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했다. 내 말에 부모님도 눈물을 보였다.

"그래, 재형이는 너밖에 생각 안 하니깐. 편안하게 잘 갈 수 있게 해 줘야지. 얼마나 눈감고 가기 힘들겠니. 너도 보미도 두고 발이 안 떨어질 거야."

나는 괜히 쏘아붙이듯 말했다. 

"뭐, 내가 못 가게 붙잡아도, 간 사람을 내가 보내고 말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를 잘 떠나보내야, 그가 진정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것을. 그를 보내기 위해서 매일 참아내는 눈물과 한숨은 나의 몫이라는 것도.

며칠 후, 나는 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 고래들을 찾아 인터넷을 검색했다. 고래 그림이 그려진 액자를 찾아보았다. 하루를 넘겨 파란 바다 위로 고래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찾았다. 그날 꿈속에서 보았던 고래들과 어딘가 닮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렸다. 나는 그 액자를 주문하고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 고래 그림을 볼 때마다 재형이 그날 내게 보여준 고래 떼를 떠올린다. 그가 나를 마지막으로 찾아와 주었던 꿈속의 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그는 여전히 그 그림 속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가 내 꿈에 나타나기를 기다리지는 않는다. 그가 남긴 고래들과 함께, 그는 여전히 내 곁에 머물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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