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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로 Oct 09. 2023

K교수, 매출 좀 올려야겠어

오늘 병원장님이 부르셨다. 현란한 자료와 ppt를 같이 보고 나서 병원장님의 말씀은

“K교수, 매출 좀 올려야겠어”



대학병원에 있으면서 장점 중 하나는 적어도 매출 압박을 적게 받는 점이다. 안 받는다는 것은 사실 거짓말이고.. 하지만 과거보다 대학병원의 교수들도 매출, 즉 병원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을 더 많이 받고 있다. 대부분의 개원한 의사들은 병원이 자신의 개인 사업장이기 때문에 환자들을 진료 본 것이 본인의 수입에 직결된다. 그래서 최대한 열심히 많이 환자들을 보려고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환자들을 더 비싸고 돈이 되는 치료로 유혹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학병원은 고고하니까 매출 압박은 자유롭다. 적어도 과거에는 지금보다 자유로웠다. 하지만 대학병원들 간에도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내가 의과대학 학생 때만 해도 이렇게나 많지 않았는데 수도권에 대형 병원들이 점점 더 많이 생기고 있고 이미 생기기도 했다. 그 큰 병원을 짓는 돈은 다 어디서 나는 걸까. 당연히 환자들의 호주머니로부터이다. 병원도 점점 더 기업화되고 있다.


기업화된다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우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병원도 서비스 마인드를 많이 가지게 되었다. 내가 봐도 예전에 비해서 대학교수들도 훨씬 환자들에게 친절하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권위적이었다. 후배 의사들이나 인턴, 레지던트에 대한 태도도 지금이 상당히 더 좋아졌다. 과거의 악습과 불필요한 권위가 많이 타파되고 대학병원도 더 밝아졌다.


문제는 기업 정신을 대학병원들이 갖기 시작하면서 수익에 훨씬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는 점이다. 병원도 땅 파서 장사하지 않는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수술 장비, 새로운 검사 장비 들이 필요하게 된다. 새로운 시설이 필요하게 된다. 나라에서 이것을 사주지 않는다. 그리고 보통 이런 것들까지 나라가 공공이란 명목 하에 간섭하면 오히려 퇴보한다. 다 병원에서 알아서 벌고 알아서 필요한 것을 사야 한다. 그러려면 환자들에게서 돈을 뽑아내야 한다.


어떤 병원재단에서 지금 대학 병원장이 우수한지 안 우수한지 평가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논문을 많이 쓰는 것? 지역 의료봉사를 많이 다녀서 미담이 신문에 실리는 것? 당연히 아니다. 제일 객관적이고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지표. 바로 얼마나 많이 벌어다 주었나이다. 병원 경영진이 매출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영진이 아니라 일반 교수들도 마찬가지이다. 참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사실 돈, 즉 매출만큼 확실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지표가 없다. 병원장 입장에서도 P교수가 잘하는지 K교수가 잘하는지 어떻게 평가할까. 다들 사고 안 치고 열심히 일하는데.. 누구는 누구 후배고 누구는 인사를 잘하고.. 누구는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요새 이런 주관적인 것으로 평가하면 뒷말이 나오고 논란이 된다. 논문으로 평가하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논문도 진료과목마다 편차가 커서 점수화시키기 쉽지 않다. 그리고 네이처 사이언스 이런 곳에 논문 발표하지 않는 이상 웬만한 논문은 써도 티도 안 난다. 역시 제일 확실한 것은 매출 성적이다. 누구도 토 달지 못한다.


대학병원 교수도 매출이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특히 가짜 교수가 진짜 교수가 되려면 더 매출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우리 병원에서는 매달 본인의 매출과 목표치를 통보해 준다. 그리고 매출이 잘 나오지 않으면 병원장실에 불려 가서 한소리 듣기도 한다.

‘K교수, 매출 좀 올려야겠어, 다른 A대학병원에 비해서 너무 미흡해” ‘

“환자들도 검사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할 거야”

“어서 노력해서 진짜 교수가 되어야지”


저런 소리를 들으면 사람인지라 환자들에게 꼭 필요하지 않은 검사를 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병원이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미국의 의료가 세계 최고인 이유는 완전히 자본주의적인 기업 마인드로 의료를 대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수익을 중시하는 태도는 의료를 발달시키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무조건 대학병원이라고 수익을 등한시하고 고고하게 진료 봐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적정한 의료, 병원의 수익, 환자의 편익… 그 사이에서 밸런스 잡기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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