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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파랑새 Apr 08. 2023

피해 해결에 대한 더 큰 상상력

참사 교훈과 안전사회(10) : 포괄적인 방식의 사회적인 해결 필요

가습가살균제참사 피해 해결 문제는 분명하게 딜레마를 가지고 있는 사안이다. 피해 발생 상황이 너무 오래되어 많은 증거가 사라지고 없다. 이는 개별 피해 보상에 대한 기업의 책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있다. 


피해자들이 구매 영수증 등을 통해 제품 구입을 입증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구매와 사용의 문제, 사용과 건강피해의 문제를 증명하는 문제가 있다. 폐 손상뿐만 아니라 여러 장기에 피해가 나타날 수 있는 문제, 기저질환과의 건강피해 입증 등 여러 문제가 있다. 여러 한계를 갖더라도 사용 사실과 건강피해를 규명할 수 있는 경우 개별적 보상이 가능하다.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에서도 가능한 범위에서 피해구제 범위를 확대해서 적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구제의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존재할 수 있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건강피해에 대해 개별보상을 하고, 나머지는 적당한 이유나 핑계를 대고 회피할 수 있다. 혹은 ‘기부나 기여 또는 공헌’과 같은 방식으로 모양을 취하고 빠지는 전략을 취할 수도 있다. 가해기업들은 피해 문제가 지속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어떤 선에서 ‘선을 긋고’ 해결하려는 출구전략을 마련해 놓고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 묻힌 수많은 억울한 죽음과 피해가 있다. 현실적으로 피해 구제의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 있는 가해기업들이 적당하게 모양을 취하고 빠지는 것을 용납할 피해자들이나 시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 해결을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우리 사회는 가습기살균제참사 피해 문제에 대해 사회적인 차원에서 새롭게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이 참사가 갖는 피해 문제의 딜레마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개별적으로 피해 문제를 해결한 피해자들, 피해구제법을 통해 일정 수준의 피해구제를 받은 피해자들, 그리고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인 채 방치되어 온 피해자들의 피해 문제를 포괄해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즉, 개별적 피해 보상과 특별법에 의한 피해구제와 별개로,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문제 해결과 가해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입각한 포괄적인 사회적 해결이 필요하다. 후자의 접근은 이미 과거 속에 묻힌 억울한 죽음과 건강피해에 대한 부분이며, 현실에서 피해를 호소하고 있음에도 입증이 어려워 사각지대에 놓인 수많은 피해자들, 그리고 일반 소비자들이 겪은 정신적 피해 등 사회적 피해를 포함한다.  


따라서 피해문제에 대한 사회적 해결의 가이드라인은 개별적 보상체계 즉, 법적 보상과 노출 확인자에 대한 구제와 별도로 잠재적인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을 '사회화'하는 것이다. 가해기업들은 잠재적 희생자들에 대해서 피해규모를 산정하고 ‘생명안전기금’ 등의 형태로 기금을 모아 피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이 기금을 통해 희생자에 대한 추모 사업 등 참사에 대한 기억사업을 추진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안전사회사업, 생존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구제와 지원 사업들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해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는 있다고 볼 수 있다. 피해구제특별법에도 일부 구현되어 있다. 그동안 추진되어 오다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도 남은 피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해결과 같은 포괄적인 구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조정위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 일부 피해자들의 반대 의견이 있고, 조정위에 불참하는 가해기업들이 있어 답보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2016년 당시 피해자 모임의 대표로서 피해문제 해결을 위해 앞에서 언급한 방식과 유사한 해결 방안을 제안하고 모색한 적이 있었다. 2016년 5월경 당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가피모) 대표로서 몇몇 운영진들과 옥시알비코리아 대표와 2차례 면담을 진행했다. 답보 상태에 있었던 피해문제 해결을 위한 면담이었다. 2차 면담은 5월 31일 진행되었고, ‘가습기살균제 피해문제 해결을 위한 공익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 공익위원회를 통해 피해자 유형 결정, 개별 피해 유형에 따른 배상 수준 결정, 피해자 배상기금 조성, 개별피해 보상과 별도로 재발방지대책을 포함한 생명안전기금 조성 등을 목표로 논의했다. 당시에 피해문제 해결에 대해 예상되는 여러 쟁점들에 대해 논의했다.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그룹의 대표가 한국에 와서 공식사과하는 방안도 요구했었다. 


당시 옥시 측은 다른 가해기업들의 참여를 전제로 긍정적인 태도로 임했었다. 옥시 측과 면담 후 가피모는 다른 가해기업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피해자설명회(2016년 6월 12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를 추진했다. 이를 위해 옥시레킷벤키저, 롯데마트, 홈플러스, 애경에게 참석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을 통해 개별 피해보상에 대한 해당 기업의 입장, 교차사용에 대한 해결 문제, 기존 등급 구분 없이 피해정도에 따른 보상에 대한 기업의 입장, 피해자에 대한 사과 방안, 안전사회 기금 조성 방안, 가해기업 일괄협상테이블 구성 방안, 향후 로드맵 등에 대해 설명회에 참석하여 입장을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사전에 참석 입장을 밝혔던 옥시 외에 다른 3사는 참석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가해기업의 입장을 듣고자 했던 피해자 설명회는 결국 가해기업 참석 없는 피해자 설명회로 진행되었다. 반쪽 짜리 설명회가 되고 말았다. 


가피모가 가해기업의 입장을 듣고자 압박을 가했던 이유는 그 해 4,5월 진행된 전국적인 옥시불매운동이 탄력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이 가해기업에 대한 상당한 사회적 압력이 되고 있었으므로, 가피모 차원에서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옥시불매운동이 옥시에만 국한되었고, 나머지 기업은 옥시 뒤에 숨어서 검찰 눈치만 보고 있었다. 결국 옥시는 전체 문제 해결에 나서기보다는 자사 피해자들에 대한 개별적 문제해결을 진행했다.




사회적 해결 또는 포괄적 해결에 대한 가피모의 당시 요구들은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이후 국회에서 진행된 국정조사와 피해구제법을 통해 많은 내용들이 수렴되어 제도화될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 후반에 피해구제 조정위원회가 구성되면서, 피해구제특별법이 해결하지 못한 나머지 피해 문제에 대해서도 포괄적 해결, 사회적 해결을 시도하였지만 아직까지는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2022년 정부가 바뀐 상황에서 피해구제조정위원회가 어떤 결과를 내어 놓을지는 모르겠다. 2017년 피해구제법에 이어 피해구제조정위가 문제 해결의 해법을 제시하고 사회적 타협을 이뤄 낸다면, 피해구제의 또 다른 한 획을 긋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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