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캐리어 2개와 여행용 가방 그리고 노트북가방을 들고는 힘겹게 공항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니 뭔 짐이 이렇게 무거운 거야...'
갑자기 많아진 짐 때문에 안 그래도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한 몸은 캐리어의 무게로 더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
낑낑거리며 짐들을 한 곳에 잠시 세워놓고 미리 예약해 놓은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얼마간의 전화 연결음이 울리고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아시아계의 영어 발음을 구사하는 그는 내가 전화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생각해 보니 원래 예약한 택시 시간을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중간에 비행기도 좀 연착되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수화물이 이렇게 늦게 나올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는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탄 다른 사람들은 다 일찍 나왔다며 너는 왜 늦게 나왔냐고 주절주절 얘기를 해댔다. 나는 짐을 낑낑 끌며 그래서 당신은 어디에 있냐고 내가 어느 쪽으로 가면 되냐고 물었다.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하다가 갑자기 중간중간 그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아서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답답한 건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나 보다. 상대방도 내 말이 잘 들리지 않았는지 본인이 하던 말을 멈추고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소통이 되는 대화를 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나는 아까보다 좀 더 큰 목소리로 (사실 대화가 안 통해서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었다.)
" 그러니까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데요? 내가 어느 출구로 나가면 될까요?? "
라고 차분하지만 아까보다 좀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고, 그는 나의 질문을 한 번에 알아들었는지 2번 게이트 쪽 주차장 입구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드디어 쌍방향 대화에 성공한 우리는 전화를 끊고 나는 2번 게이트 쪽을 향해 걸어갔다.
' 후... 아니 로밍을 했는데 왜 안 들리는 거야...? '
아까 택시 기사와의 불안정한 전화 연결과 무거운 나의 캐리어들 덕분에 나는 나도 모르게 높아져가는 짜증 지수를 다스리며 2번 게이트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게이트에서 가장 가까운 입구 쪽에 어떤 남자 한 명이 차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서 있었고 누가 봐도 아까 나와 전화 통화를 한 택시 기사임을 직감한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다. 그랬더니 역시나 그가 맞았다.
그는 생각보다 사람 좋은 표정을 하고는 나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나의 이름을 확인한 후 그는
내 짐을 차 트렁크에 실으며 말했다.
" Welcome to UK "
("영국에 온 걸 환영해요")
나는 고맙다며 웃어 보였고 그는 내게 비행은 어떠했냐고 물었다. 나는 세상 지친 표정으로
"아... 진짜 피곤하네요...ㅎ "
라고 대답해 버렸다. 사실인데 뭐 어쩌나.. 숨길 필요도 없었다. 이미 내 표정에서 드러날게 뻔했기에 나는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우리 둘은 그렇게 택시에 탔고 그는 나의 최종 행선지를 나에게 확인차 물어보고는 출발하였다.
'후... '
영국에 잘 도착해서 이제 택시하나 탄 건데... 나도 모르게 긴장을 많이 했었는지 안도감과 약간의 긴장이 섞인 숨을 내쉬었다. 택시에 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하기였다. 영국에 잘 도착했고 예약한 택시도 잘 탔다고 연락을 하고는 폰 배터리를 보니 약간 불안했다. 충전을 미리 못해놓은 탓에 아슬아슬한 휴대폰 배터리를 보고는 택시가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구글 맵을 켰다. 택시로 한 시간 반 정도를 가야 하는 거리였기에 혹시나 해서 켜놓고는 창문 밖을 보았다.
차는 공항 주변을 벗어나 도시 외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얼마 후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드넓은 초원이 보였고 이따금 말들이 자유롭게 초원 위를 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날씨는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흐리지도 않은 애매한 날씨였다. 살짝 애매한 날씨와 확연히 다른 풍경들이 눈앞에 연속으로 보이자 이제야 영국으로 온 게 실감이 났다.
한참 동안이나 창문 너머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택시기사가 먼저 정막을 깨고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