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읽고 싶었던 책이,
한국을 방문했던 지인을 통해,
우리집에 도착했다.
송지영 작가의 "널 보낼 용기"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이미 나 자신의 오래된 기억을 건드리고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 겉으로 보면 아무 문제없는 아이였다. 공부도 잘했고, 반장을 도맡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무난했다. 어른들이 보기엔 충분히 잘 자라고 있는 아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늘 숨이 막혔다.
아빠의 직업 때문에 자연스럽게 따라붙던 시선들, 실수 없이 살아야 한다는 압박, 스스로에게 씌운 완벽함의 기준. 누구도 소리 내어 요구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스스로를 꽉 조이고 있었다. 힘들다는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도 몰랐고, 그럴 용기도 없었다.
그 무렵의 나는 특정한 공간과 상황을 편하게 마주하지 못했다.
창문 앞에 서는 일, 높은 곳을 지나가는 일 같은 아주 일상적인 상황들 앞에서 마음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아니라, 마음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거리에 가까웠다. 그건 생각이 아니라 몸의 반응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35년이 지나 중년이 된 지금도, 그 시절의 감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일하고 있는 사무실은 6층에 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복도 한쪽에는 아래가 트여 지하 2층까지 내려다 보이는 난간이 있다. 나는 여전히 그쪽으로 가까이 가지 않는다. 밑을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괜히 그쪽으로 몸이 가지 않도록, 아주 자연스럽게 동선을 바꾼다.
이제는 안다.
이건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시절을 지나온 마음이 아직도 나를 조심스럽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3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달라졌을까.
한국의 교육 현실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아이들은 더 이른 나이부터 점수와 경쟁으로 평가받는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혼자 버티는 법부터 배우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에 갈 때마다 언니 집에서 보는 조카들의 하루가 그렇다.
학교, 학원, 또 학원. 하루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볼 때면, 나는 늘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오늘 이 아이의 마음은 괜찮았을까. 잘했냐고 묻는 어른은 많았을지 몰라도, 괜찮냐고 묻는 어른은 있었을까.
내가 이민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 지점이었다.
경쟁을 통과해야만 다음 단계를 살아갈 수 있는 사회, 버텨내면 또 다른 버팀이 기다리는 구조. 그 안에서 자란 아이의 마음이, 어른이 된 뒤에도 일상을 붙잡고 살아내는 일이 얼마나 고단해지는지를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브런치에서 송지영 작가의 "널 보낼 용기" 연재글을 만났다.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낸 엄마의 기록은, 한 가족의 슬픔을 넘어 나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한때의 나로 돌아가기도 했고, 동시에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보낸 엄마의 자리에도 서 보았다.
이 책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질문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신호를 얼마나 진지하게 들으려 했는지,
얼마나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마음을 먼저 살폈는지,
얼마나 “괜찮아 보인다”는 말로 중요한 이야기를 지나쳐왔는지.
작가의 마지막 말처럼, 서진이의 이야기가 엄마와 가족 친구들의 슬픔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더 넓게 번져, 지금 이 순간에도 힘들어하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마음속 깊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가족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에게는 분명한 과제가 되었으면 한다.
서진이의 빛, 송 작가님의 빛,
그리고 여전히 흔들리며 살아가는 우리의 빛이
서로를 향해 오래 비추어 주기를.
송 작가님.
겉표지에 쓰인 제목
널 보낼 용기
이 세 단어 사이의 공간들이,
어느 단어 하나 쉽게 내 뱉을수 없는 작가님의 마음이 느껴져, 책을 열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어요.
작가님의 용기 있는 걸음은 한 가정의 슬픔을 넘어, 우리 사회가 외면해 온 질문을 세상 밖으로 꺼내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 걸음으로 인해 작가님이 너무 힘들지는 않았으면 해요. 할 수 있는 만큼, 우리 각자의 자리를 지켜내며, 함께 살아가요.
아픈 기억이 슬픔으로 멈추지 않고,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힘든 이들에게 끝없이 이어지길.
그리고 그날까지 남겨진 우리가 아이들의 편에 조금 더 가까이 서 있기를 바랍니다.
멀리서, 진심을 담아 응원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