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한 지 어느새 만 3년이 지났다.
지난 두 번의 생일에 브런치에 남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우울함으로 가라앉아 있었던 생일이 있었고, 작년 쉰 살의 생일은 반짝반짝한 행복감으로 빛나고 있다.
나는 생일날 더 우울하다. 2024-01-22
쉬아이닝 쉬인살 쉬타트. 2025-01-26
그리고 또 1년이 흘러, 나는 이번 주에 51번째 생일을 맞았다.
D-2
이곳에서 전경련 모임 (부부의 고향이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뉜 커플)으로 만난 오래된 인연들, 그들과 브런치를 함께 먹으며 생일축하의 포문을 열었다.
D-1
건넛집에 살지만, 자신의 삶이 바빠, 누나 생일 절대 챙기지 않는 남동생이, 퇴근길에 후라이드반 양념반 치킨과 아이스크림을 내려놓고 갔다. 누나뿐 아니라 매형과 조카까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 꽤 괜찮은 생일 축하 선물이었다.
매일 올라오던 삼식이 아빠의 밥상 사진과 언니의 학교 점심 식판 사진 대신, 엄마 아빠와 언니의 생일 축하톡이 하루 일찍 올라왔다. 한국과 이곳의 시차 때문이었다. 출산 후 엄마는 밤톨 같은 나를 옆에 뉘었는데, 왼손등에 있던 큰 점이 너무 사랑스러웠다고 말씀하셨다. 그 점은 아직도 내 손등 위에 있다.
D-Day
남동생이 드랍해 준 치킨에 저녁밥을 거하게 먹고, 너무 피곤해 7시부터 잠이 들었다.
남편이 나를 깨워 일어나 보니, 하늘에 오로라가 춤을 추고 있다. 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하늘의 선물일까?
아침에 일어나니 남편이 간밤에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 놓았다. 그리고 식탁 위엔 남편이 쓴 카드가 놓여 있었다. 밥을 말아 후루룩 아침을 먹고, 출근길 전철 안에서 남편의 카드를 읽고 혼자 미소를 지었다.
오후 3시, 사무실 동료들이 내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사람들을 모으고, 카드에 사인을 받고, 또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세 곳 슈퍼를 돌았다는 J, 동료들의 마음을 모은 그 카드는 J가 직접 만든 카드였다. J는 2년 반 전, 내가 이 사무실에 옮겨온 뒤 첫 6개월 동안 나의 원수였다. 꼴도 보고 싶지 않았던.
하지만 지금 우리는, 꽤 가까운 동지로 지내고 있다.
퇴근 후, 전철역에서 다신 만난 우리 세 식구는 한국식당 "뚝배기"로 향했다. 남편이 여러 옵션을 줬지만, 최근 들어 너무 땡겼던 돈가스를 먹고 싶었다. 아들은 곱창 순두부, 남편은 돼지 국밥, 후식으로 나온 요구르트까지 원샷으로 끝냈다. 옆집언니는 "이런 날은 근사한 데 가야지, 뚝배기가 웬 말이냐"라고 했지만, 나는 행복했다.
D+1
아침 일찍, 약학 대학 T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크리스피크림 도넛 (KKD) 한 상자와 땡큐카드를 들고.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의 도움에, T는 큰 마음을 나에게 되돌려 주었다. 어제 내 생일이었는데, 네가 사 온 도넛이 내 생일선물이라고 했더니, 그는 오늘이 자기 와이프 생일이라며, 생일축하를 건넸다. 그가 사 온 KKD 도넛을 들고 동료들 방에 하나씩 고르라고 했더니 모두들 잠시 행복해했다.
D+2
한국을 방문 중인 지인에게 염치 불고하고 부탁한 물건이, 우리 집에 드-디-어 도착했다.
이 이야기는, 내 다음 브런치의 글거리가 될 것이다.
D+4, 5
남편과 1박 2일로 밴프를 다녀올 예정이다. 겨울 운전을 싫어해 우리 부부는 가급적 겨울엔 장거리 여행을 하지 않지만, 이번엔 움직여 보기로 했다. 스키 싣고, 간식 빵빵하게 챙겨, 휙 다녀오려고 한다. 이 이야기도 다다음 브런치의 글거리로 줄을 선다.
이리하여, 내 51세 생일은 하루가 아닌 한 주가 되었다.
너무 우울했던 2년 전의 생일과 이토록 감사하고 행복한 이번 생일 주간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이 변화는,
시간이 만든 걸까. 사람이 만든 걸까.
아니면,
브런치가 만든 작은 기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