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세 생일 주간, 레이크 루이스까지

by 실비아

경축, 실비아 탄생 주간의 마지막 축하 일정으로 남편과 1박 2일 밴프에 다녀왔다.


일요일 아침 일찍 에드먼턴을 출발해 캘거리에 잠시 들렀다.
Busan이라는 한식당에서 뜨끈한 곱창전골로 배를 채우고, 호텔에서 먹을 저녁으로 반반 메뉴 (순대 반, 족발 반)를 포장해 밴프로 향했다. 여행길에 곱창전골이라니, 이 조합부터 이미 생일 주간답다.


체크인까지 두 시간 정도가 남아 Tunnel Mountain Village 2 캠핑장에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러 갔다. 최근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눈은 아이시(icy)했고, 트랙 상태도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아쉬운 대로 올해 첫 크로스컨트리 스키 개시라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겨울 주말의 밴프에서 300불 이하 호텔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일부러 일요일–월요일 1박 2일로 일정을 잡았다. 덕분에 130불에, 시설이 매우 깔끔했고 침구는 뽀송뽀송했던 밴프타운 한가운데에 위치한 호텔을 예약할 수 있었다.


어둑어둑해질 즈음, 남편과 걸어서 밴프 타운을 산책했다. 막 불이 켜지기 시작한 거리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이 사랑 통역이 되나요'속 장면들이 떠올랐다.
“아, 여기서 찍었구나.”
주호진과 차무희가 지난 가을 이곳을 걸었겠지 싶어 괜히 사진도 남겼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 도시의 또 록키의 아름다움을 참 잘 골라 담아낸 드라마였다.


40불짜리 반반 메뉴 봉지 안에는 족발과 순대뿐 아니라 김치, 깍두기, 감자조림, 새우젓, 마늘·고추, 쌈장, 밥까지—정말 ‘이 정도면 잔치상’이 다 들어 있었다. 집에서 챙겨 온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 함께 마주한 저녁상은, 멋진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만찬이었다.


다음 날 아침, 밴프 지역 크로스컨트리 스키 트랙 상태를 확인해 보니 오늘 가려던 Cascade Valley가 ‘Poor’로 표시되어 있었다. 따뜻한 날씨 탓에 트랙이 아이시하게 변했고, 관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었는지 grooming한 최근 날짜도 없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남편: “여기까지 왔는데… 레이크 루이스 갈까?”

나: "어 정말? 나야 무조건 오케이지. 앗싸!!!"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도착하려면 레이크 루이스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두 시간 남짓. 그래도 우리는 망설이지 않았다.


밴프 국립공원에서 꼭 가야 할 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레이크 루이스다. 빅토리아 여왕의 넷째 딸, 루이즈 공주의 이름을 딴 이곳은 세계 10대 절경으로 손꼽히는 에메랄드빛 호수다. 여름철 (5-10월)엔 주차비만 42달러, 그것도 새벽 5시 이전에 도착해야 개인 차량 주차가 가능하고, 국립공원에서 운영하는 레이크 루이스 셔틀을 통해서만 이곳에 올 수 있는데, 셔틀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다. 온라인 셔틀 예약이 열리자마자 바로 1초 안에 sold-out이다.


하지만 겨울의 레이크 루이스는 다르다.
주차는 무료, 관광객은 적고, 흑백의 풍경은 오히려 더 깊다. 그래서 이곳은 현지인들에게 겨울에 더 사랑받는 레이크 루이스다. 얼마 만에 만난 흑백의 레이크 루이스였을까. 수십 번 와봤지만 이번처럼 아름다웠던 적은 없었다. 에메랄드빛 호수는 하얀 눈에 덮여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은 우리는 차에서 스키를 꺼내 주변 숲길 트랙을 돌기 시작했다.

파우더처럼 부드러운 눈, 잘 닦인 트랙, 고요한 숲.
4-5킬로를 신나게 타고 돌아와, 이번엔 호수 위로 나갔다. 호수 끝까지 닦아 놓은 트랙을 따라 남편과 나는 레이크 루이스의 반대편 끝까지 스키를 타고 왕복했다.


레이크 루이스 방문은 이번 1박 2일 여행의 하이라이트였고, 남편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생일 선물이었다.

원래는 정오에 떠나야 했지만, 계획보다 한 시간을 더 보내고서야 레이크 루이스를 떠났다. 계획에 없던 일정 덕분에 남편은 여섯 시간의 운전을 내리 해야 했지만, 우리는 록키의 진짜 겨울에 완전히 매혹되어 있었다. 찐 겨울왕국에서 스키를 타며, 콧구멍으로 상쾌함을 들이마시는 그 기분이란.


아~
이런 즐거움은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쉽게 누리기 힘든데, 중년에 접어든 이민자인 우리가 이렇게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다.


집에 돌아와 전날 남은 곱창전골을 뚝배기에 끓여 주었더니, 햄버거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던 아들이 완전히 신났다. 여행의 여운은 그렇게 집 밥으로 이어졌다.


겨울 장거리 운전을 싫어하던 남편에게 이번 여행은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 주었고, 우리에게는 열심히 돈 벌 이유가 되었고, 추위 핑계 대고 몸관리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었고, 밤마다 지하로 내려가 체력 단련을 해야 할 이유가 되었다.


참고로, 이번 생일 여행의 가계부를 조심스럽게 열어보면 이렇다.

• 숙박: 130불
• 기름값: 대략 100불 안팎 (작년 50살 생일선물로 받은 M사의 쿠페, 연비 대박이었다)
• 식대 (곱창전골 + 순대·족발 반반): 팁포함 100불
• 기타 잡비: 소소

이렇게 해서 총액 350불 안쪽.
계산기를 두 번 눌러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돈은 참 착하게 나갔는데, 행복은 왜 이렇게 과하게 들어왔는지.
체감 만족도는 최소 200퍼센트였다.


51세 생일 주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남편이 찍어준 인생샷이다. 이곳이 레이크 루이스다.


둘이 동시에 타이밍 맞춰 뛰어오르는 순간을 담기 힘들었지만, 될 때까지~


저 빙벽 맨 위쪽에 오르는 사람이 보이시나요? 맨 오른쪽 사진 뒤로 멀리 보이는 호텔이 Fairmont Lake Louise.


아름다운 밴프 타운, 그리고 우리의 저녁을 행복하게 했던 반반족발순대...


캘거리 Busan, 곱창전골은 사랑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