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 비빔밥을 버렸을까

by 실비아

일요일 아침.

아직 깜깜한 이른 새벽, 따뜻한 옥수수차를 홀짝이며 책을 읽는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

집 안은 고요하고 이 시간만큼은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아닌 오롯이 나만의 힐링 타임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화사가 “본인의 멘탈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 장벽이 낮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봤다. 화사가 나 혼자 산다에 나왔을 때가 아마 7-8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긴 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기며 곱창집에서 화사가 너무 행복한 모습으로 맛있게 곱창을 구워 먹던 장면은 내 뇌리에 박혔었다. 그리고 몇 달 후 한국을 방문했던 나는 그 곱창집에 일부러 찾아가 “와…” 감탄사를 연발하며 먹었던 기억이 있다.


아침이 되자 남편이 부스럭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나: “여보, 나는 화사처럼 행복 장벽이 엄청 낮은 사람이야. 조그만 만족에도 엄청난 행복을 느끼는 가성비 갑 인생.”

혼자 선언하듯 말해놓고는 가족들의 특별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불고기를 양념해서 볶고,

어제 마트에서 사 온 모둠 나물을 골고루 조금씩 얹고,
계란은 반숙으로 노릇하게 부쳐 얹고,
친구가 한국에서 어렵게 들고 와준 시어머니가 챙겨 주신 귀한 참기름을 한 바퀴.
마지막으로 깨를 솔솔 뿌리니 보기에도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비빔밥이 완성됐다.


남들 다 쉬는 일요일,
학교에 가야 하는 아들을 위해 엄마가 준비한 정성이 잔뜩 들어간 아침메뉴였다.

비록 마트 모둠나물의 힘을 빌긴 했지만,

주부들은 비빔밥이 절대 간단한 음식이 아님을 알 것이다.


그런데.

내가 차려놓은 비빔밥을 힐끗 보더니
아들은 갑자기 샤워를 시작한다.
우리는 9시에 출발해야 하는데,
정확히 9시에 가방을 메고 내려온다.

비빔밥은… 그대로다.

먹지 않고 학교에 갈 계획이었다.

원래도 잘 안 먹어 삐쩍 마른 아들.
먹여보겠다고 정성 들인 비빔밥이 테이블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걸 보는 순간,
나의 분노 버튼이 눌러졌다.


나: “야— 앞으로 엄마는 너 음식 안 챙겨줘. 니가 뭘 먹고 다니든 신경 안 쓸 거야. 너 이제 대학교 4학년이야, 성인이잖아. 내가 언제까지 아침저녁 다 신경 써야 해?"

아들: “엄마, 이따 학교 다녀와서 먹을게요.”

나: “필요 없어.”


그리고 나는 그 순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빔밥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쏟아버렸다.


아들을 전철역에 내려주고, 남편과 주일 예배를 보러 가는 길.

남편이 조심스럽게 한마디 한다.

“당신은… 행복 장벽만 낮은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뒷말을 조심스레 삼킨다.


그리고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으며
아, 정말…
내가 왜 그랬을까.
비빔밥보다, 내 감정부터 잘 섞었어야 했는데.


행복 장벽은 낮지만

분노 장벽은 더 낮고

인내 장벽은 아직 공사 중이던

나의 일요일 아침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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