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빛

기억 재생 테마

by 정하


연꽃 무늬 수막새,
천 년을 물고 늘어진 곡선 위에
한 방울의 물이 맺힌다.

신라의 숨결이
오래된 기와 틈을 지나
서늘한 기운으로 내려앉아
마침내
지금 이 땅 위로
뚝— 떨어진다.

그 자리에서
오랜 기억의 비늘이 파닥이며
물빛을 일으킨다.

물이 떨어지고,
빛이 흔들리고,
바람이 스치는 사이
시간은 곡선을 따라
천 년의 세월을 뚫고
오늘에 이른다.

젖은 바람의 냄새가
세월의 골짜기를 돌고 돌아
지친 발목 앞에서 멈출 때,

나는 알았다.

이 작은 물비늘 속에
장인의 땀방울,
바람의 숨결,
햇살의 빛살이 겹겹이 새겨진
오래된 시간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늦가을 오후,
깊은 숲 속에서
풍경소리만 가볍게 흔들리며
어제와 오늘의 기억을 깨운다.

나는,
오래된 빛 한 조각에 닿아
잠시,
과거와 현재 사이에
조용히 앉는다


수막새
[건축] 수키와의 끝에 달린 부분. 빗물이 흘러내리는 면이 있어서 스며들지 않게 한다. 암막새라 불리는 내림새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다.


년의 물비늘 배경 에세이

— 시간을 건너온 한 방울을 바라보며ㅡ


연꽃 무늬의 수막새를 손에 올려놓았을 때,

나는 문득 천 년의 시간이

내 손바닥에서 빛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기와 끝에 매달려 떨어지던 작은 물방울이

얼마나 많은 세월을 뚫고

여기에 왔을까.


년 전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누군가의 시선과 숨결이

이 물비늘에 닿아 있었을까.


나는 생각했다.

“세월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모양을 바꾸어 지금으로 스며드는구나.”


늦가을 오후,

바람과 햇살이 번갈아 숲을 흔드는 순간,

나는 그 오래된 시간의 잔향을

조용히 느끼고 있는 듯했다.


이 시는

물비늘 하나에도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에서 시작되었다.


물이 떨어지고, 빛이 흔들리고, 바람이 흐르는 동안

시간은 늘 우리 곁을 지나가면서

끊어지지 않은 실처럼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실을

한 구절의 언어로 붙잡아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