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에서 선택받은 하루

일상. 유머의 감성 언어

by 정하

나는

해풍을 맞고 큰

신안 도초의 생강이다.


거친 파도를 건너온 바람은

내 속살을 더 매워지게 했고,

강렬한 햇빛은

내 향에 깊은 골을 새겨 주었다.


오늘 나는

주황 흙옷을 예쁘게 입은 채

산더미같이 쌓인 친구들과 함께

시장 노상 위에 누워 있었다.


친구들은 하나둘 팔려나갔다.

저녁빛이 기울기 시작할 즈음,

바람은 매섭게 시장 바닥을 훑고 지나가며

내 온기를 훔쳐갔다.


‘오늘을 넘기면

내 향도 덜 빛나겠지…’

초조가 작은 숨처럼

내 안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그때,

“한 단에 얼마예요?”

키는 아담하지만

목소리가 곱고 사근사근한

한 아주머니가

나를 바라보았다.


“토종이라 비싸지만

품질은 참 좋아요.”

주인장의 말에,

나는 속으로

‘이분에게 가고 싶다’

눈을 반짝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이따 다시 올게요.”

말만 남기고 발길을 돌렸다.


시장에서는,

이 말은 사지 않겠다는 뜻.

나는 실망의 바닥으로

툭, 내려앉았다.


“오늘은 파장합시다.”

주인은 어두워지는 날씨를 보며

가판대 위의 채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아까 그 아주머니가

다시 나타났다.

배를 사고 돌아온 길이었다.


“아까 그 생강,

남은 거 전부 주세요.”


순간,

지려던 노을 한 줄기가

싸늘하게 식은 내 몸을 관통했다.


작두가

내 잎사귀를 날렵하게 잘라내고

단단한 알뿌리만 골라 담는 동안,

가슴에 바람이 빵빵하게 채워지는 듯했다.


끌차에 사뿐히 올라앉자

노을은 따스한 온기로 안아주고

바람은 등을 밀어 주었다.


나를 알아봐 준

따뜻한 한 사람의 시선에서

비로소 내 가치가 또렷이 빛난

장한 하루였다.



작가의 한 줄


누군가의 다정한 눈길이 닿는 순간,

사람도 생강도

비로소 제 향을 완성한다.

오늘은 그 마음을

생강의 입을 빌려

살며시 털어놓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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