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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파인 Oct 16. 2023

하우스홀릭 25   에필로그

집에 살다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자연 가까이 살며 느꼈던 소소한 즐거움을  가볍게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공연한 자랑질이 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사실 모두들 서울로 향하는 상황에 살짝 금을 긋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지역에서 오래 살아보니 살아갈수록 편안하고 좋은 점이 많은데  나라 전체는 더욱더 지역적인 불균형과  인구소멸의 기운으로  흔들리면서도 제대로 된 문제해결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나이가 들어 30년 전 처음 시작한 지역에서의 삶은 사실 처음에는 당혹스러운 점이 많았다.  시내에 나가면 정겹지만 낡은 노포들만 있고,  연구 자료를 찾으려면 아득하기만 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대학원생에게 약간의 아르바이트비를 주고 대형 도서관의 자료를 복사해서 우송하도록 부탁하기도 했다.  인터넷이 거의 안되던 그 시절 연구 자료를 제 때 구하는 것은 큰 숙제였다.  세미나도 전부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학문적 논의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왔다 갔다  했다.  아이들은  어리고 해야 할 일은 많고  힘들었다.


  그런데 7살, 2살 두 아이는 행복해 보였다. 매미를 좋아하는 큰 아이는 사방에 매미와 잠자리를 잡으러 다니고, 더운 여름 계곡에 가면 아이들은 종이컵 하나로도 송사리를 잡고 물을 담았다 부어냈다  하며 즐거웠다. 봄에  여린 진달래 꽃 잎을  따서 화전을 해주었더니 작은  아이는 한동안 꽃구이를 해달라고 졸랐다.  시간은 가고 아이들이  자연을 느끼는 만큼  우리도 지방에서의 삶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아이들과 관련해 가장 많이 들었던 걱정은 지방에서 자녀 교육이 어렵지 않으냐 하는 것이었다.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좋은 학원을 못 다녀도 아이들에게는 적절한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 같다.  한 달에 시 한 편 외우기,  주말에 좋은 영화 함께 보기, 서울에 다녀오면서 한 권의 동화책 사다주기 같이 소소한 약속들을 지켜가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름 든든한 심지를 키워가는 것 같았다.    


   기술은 빠르게 변하고 이제 이곳에서도 더 이상 정보의 부족을 느끼지 않는다. 전 세계의  정보와 연구 자료가 산골 집에서도 검색이 가능하고, 필요한 물건은  클릭 한 번으로 집에 배달되니  소비생활에도 부족함이 없다. 시간이 가고 변화가 진행되니 항상 내 옆에 있던  소소한  자연의 움직임이 전해주는 기쁨을 새삼스레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년이 지났다.   물론 이곳에 직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삶의 기반이 되는 직장이 있었으니 가능했던 것이고 그래서 다른 이에게 같은 즐거움을 나누도록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살면서 느낄 수 있었던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서울과 수도권으로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중심에 속하지 못하면 초조하거나 불안한 정서가 너무 강하다. 거리는 사람과 차로 넘쳐나고, 나의 집 한 칸을 마련하는 일은 너무 힘들고, 모두들 너무 가까이 가시거리에 살고 있으니 타인의 삶이 미치는 영향이 크고 비교가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은 예민해지거나 우울해진다. 조금 거리를 가져보면 어떨까?  최근에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지방으로 이전하는 청년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  자신의 삶에 색다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찾아오는 청년들이 보다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인프라와 일자리가 지역에 확대된다면 좋겠다.  그리고 꽃과 나무와 자연을 좋아하는 노년들이 슬쩍 서울에서 빠져나와 지역에서의 재미있는 삶을 찾을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국화와 구절초 그리고 나비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나라는 지역 어디로 가든 참 아름답다는 것이다.  어떤 나라는 사막이 많고, 어떤 나라는 너무 춥거나 덥고, 어떤 나라는 내 기준으로는 너무 넓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변화하고, 산과 바다가 어디서든 가깝고, 너무 넓지 않아 어디로든 이동이 쉽고, 아기자기하다. 지역 간의 경제적, 문화적 균형이 확대되고, 안정적인 일자리의 확대가 이루어진다면 어디서든 조금 더 여유롭고 편안하게 자신만의 삶을 가꾸어 나가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된다.   


호박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여름 내내 자란 호박은 풍성하다. 못생긴 호박 하나 골라 호박 랜턴 하나 만들어 봐야겠다.   작년에 국화 화분을 사서 한참 보다가 마당 흙으로 옮겨  놓았는데, 무슨 일을 한 건지 마당 한 구석 가득 꽃을 피우고 있다. 구절초 옆에는 나비가 날고 있다.  이렇게 집에 살고 있는 이야기는 계속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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